존 버거,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나는 잘 넘어지는 아이였다. 그건 아마 내 키에 비해 작은 발 사이즈 때문이거나 나의 에너지 때문이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은 뛰어놀기를 좋아하니까.
나의 넘어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그저 '넘어짐'으로 부르기에는 만만치 않은 규모의 넘어짐도 꽤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넘어짐이 주는 물리적인 고통을 회상해본다. 그래서 역시, 오늘도, 존 버거의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를 만나기 전에 나는 넘어짐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한다.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초여름이었고, 씻고 자려다가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의기투합한 오빠와 나는 누가 슈퍼에 다녀올건지로 가위바위보를 했고, (당연히) 내가 졌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골목 끝의 가게로 뛰어가다가 (당연히) 한국 시리즈 우승을 코앞에 둔 만루주자가 홈베이스로 달려들듯, 그토록 절박한 자세로 슬라이딩하며 넘어졌다. 집 앞 골목은 야구장이 아니라 시멘트 바닥이 아닌가. 나는 꽤 많이 다쳤고, 팔과 다리 거의 전부가 상처로 뒤덮여서 그 후로 한 달 가까이 체육 수업을 못 받았다. 시멘트 바닥에 갈린(?) 상처에서는 고름이 흘렀고, 메디폼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딱지가 최대한 오래 버티다가 떨어지도록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기다려야 했다. 그러니 다른 수업을 들을 때도 팔과 다리에 가득한 상처가 구부러져서 다시 또 피가 날까봐 두 다리를 약간 벌리고 쭉 뻗은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어야 했다.
넘어져서 얼마나 크게 다칠 수 있는지 알게 되니 넘어지는 일이 약간 무서워지기도 했지만, (실제로 어린 아이일수록 '넘어진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공포가 학습되지 않아서 긴장하지 않고, 그래서 어른보다 아이가 덜 다친다고) 나는 이때의 넘어짐으로 퍽 많은 것을 배웠다는 걸 살면서 천천히 확인하곤 한다. 우선 사람이 너무 놀라고 아프면 창피하다는 감정은 안중에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오히려 간절히 바라게 된다. 누가 절 좀 도와주세요.) 세게 넘어지면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럴 때는 천천히 우선 앉거나, 엎드려 있었다면 돌아 눕는 것도 좋다. 그래서 우선 얼마나 다쳤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다. 일어나는 건 그 다음이다.
또, 나를 집으로 데려다 준 슈퍼 아저씨의 얼굴과 (내가 슈퍼를 향해 맹렬히 달려오는 걸 슈퍼 앞 평상에서 흐뭇하게 바라보시다가 넘어진 나보다 더 놀라심) 나를 씻기고, 소독약을 바르고, (병원에 가야하는지 고민하며) 내 몸 여기저기를 부르고 만지며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아픈지, 걸을 수 있는지 물어보던 엄마의 얼굴을 기억한다. 엄마는 아파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내게 아프면 울어도 된다고, 울어 울어, 괜찮아, 그렇게 말해주었는데, 나는 저 말을 지금까지도 내 마음의 안식처로 삼고 있다. "아프면 울어도 돼, 울어 울어, 괜찮아." 왠지 겁이 나서 울지도 못하던 나는 엄마의 울어, 울어, 라는 말이 무슨 허락이라도 되는 듯 엉엉 울기 시작했고,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그래, 잘 우네, 더 울어도 돼, 많이 아프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의자나 스탠드에 다리를 뻗치고 앉아서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이 뛰어노는 얼굴을 바라보던 그 한 달여의 시간. 나는 내가 속한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걸 느꼈다. 처음 한 두 번은 신이 났다. (혼자 조퇴할 때의 그런 기분) 그 다음부터는 운동장을 뛰다가 내곁에 쉬러 온 친구의 거칠어진 숨소리와 땀냄새와 흙냄새, 선생님이 얼마나 자주 웃었는지, 호루라기 소리가 얼마나 경쾌하고 예쁜지, 축구하는 친구들을 보다 슛을 하려는 찰나에 나도 모르게 내 발이 움찔하는 걸 느끼던 순간들이 천천히 나를 지나쳐갔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힘들어진 나를 친구들은 서로 도와주겠다고 부축해주었고, 선생님들은 책상 다리 밖으로 삐죽이 나온 버릇 없는 내 다리를 가여워 했다. 아이들은 내가 다치고 한참이 지난 다음에도 쉬는 시간이면 내 자리로 와서 내가 넘어졌던 그 날에 대해 또 이야기해 달라고 했고, 나는 슈퍼맨이 지구를 구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점점 이야기에 살을 붙여 그 순간을 설명했다. 어쩌면 그건, 약자가 돼버린 내가 받은 사랑의 경험이자 수용의 경험이었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나는 새로운 이야기가 씌여지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불편했지만 학교에 가는 일이 싫지 않았다. 나는 골칫덩이가 아니라 용감한 영웅이었으니까. 친구들은 내 당번을 대신 서주었고,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들어주었다.
넘어지지 않았다면 몰랐을 그 순간들을, 그 얼굴들을, 오래 잊고 있었네.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긴장하며 사느라, 혹은 삶이 너무 세게 넘어져버려서 무릎이 까지는 것 쯤은 별일 아닌 줄 알게 됐었나. 하지만 무릎을 지키는 일이나 삶을 지키는 일은 둘 다 아주 간단한 원리가 아닌가. 넘어졌으면, 일어나는 것. 필요하다면, 도움을 청하는 것.
나는 다시 공손한 자세로 앉을 수 있게 되었고, 체육 시간이면 운동장을 가로질러 신나게 달렸고, 부분 부분 꽤 깊었던 상처들까지 모두 아물었다. 그때쯤 가을이 되었다고 기억한다. 더는 나 혼자 특별할 수 없다는 게 조금은 아쉽던, 더는 내가 넘어지던 그 날의 이야기를 아이들이 궁금해하지 않던 그때의 가을을. 내 상처가 나아서 다행이었고, 달라진 삶이 좀 못마땅했고, 그래서 좋은지 싫은지 대답할 수 없다고 느꼈던.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던. 그렇게 좋지도 싫지도 않은 채로 다시 학교에 다니던, 그때 그 시간은 어쩌면, 존 버거의 말처럼 "넘어질 때마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일어나고, 그건 같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인 어떤 사람"이 되는 경험이었던 걸까.
하지만 넘어져 본 사람은 알 거다. 서 있던 사람이 누우면 시야가 순간적으로 달라지고, 때로는 그 넘어지는 찰나가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런 감각 때문인지 걸어갈 때와 넘어질 때의 세상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존 버거의 문장에 (감히) 덧붙이자면, 우리는 넘어졌다 일어설 때도 다른 사람이 되지만, 때로는 넘어질 때,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있는 건지 모른다.
어른이 되고 물리적으로 덜 넘어지게 되면서, 혹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면서, 우리는 세상이 고꾸라지고, 빙빙 돌고, 뒤집히는 걸 경험할 수 없게 되고, 그 답답함으로 뒤늦은 방황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자연히 '일어나는 방법'도 잊어가는 건 아닐까. 넘어짐은 그 자체로 세상의 전복이니까. 넘어질 때 나의 하늘은 땅이 되고, 땅은 일어서서 나를 맞이한다. 하늘은 빙빙 돌고, 주저 앉은 그 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는데도, 그러니까 그 자리가 대체 어디인지 한참 동안 되찾으려 애써야 하는 순간의 낯섦, 그 생경함이 필요한 건 아닐까.
그래서 어른은 여행을 술을 책과 음악을 영화와 그림을 필요로 한다. 예술은 어른들의 놀이, 어른들의 넘어짐. 어른은 정글짐도 그네도 시소도 타기 쑥스러워하니까. 대신 여행을 떠나고 술을 마시고 책을 읽는다. 영화 속에서 그림 속에서 논다. 거기서 무릎과 팔꿈치와 머리가 안전한 채로 마음껏 넘어진다. '(하고 싶지만) 하면 안 되는 것'들 속에 살면서 '(하면 안 되지만) 하고 싶은 것'들을 끊임 없이 꿈꾸는 어른들. 그 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법을 연습해야 하는 어쩐지 조금은 서글픈 우리들.
존 버거의 글은 꼭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글이 위로가 되는 건, 비싼 잔디와 최신의 놀이기구로 가득한 놀이터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오래 된 모래와 한참 만지며 놀고 나면 손에서 피 냄새가 나는 칠이 다 벗겨진 순박한 놀이기구들 뿐인 놀이터여서다. 그의 놀이터에서 우리는 맘껏 넘어진다. 어떻게 넘어져도 괜찮다. 그러다보면 내가 어릴 때 어떻게 놀았었는지 기억해낸다. 내 몸이 기억한다. 내 마음이 기억한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나면 해가 지고, "아무개야 밥먹어!" 소리지르며 부르는 엄마도 없는 집으로 돌아오는 "고아들끼리의 공모"가 완성된다.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고아들끼리의 공모를 제안한다. 우리는 서로 윙크를 나누고, 위계를 거부한다. 모든 위계를,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세계를 무시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당돌하다. 우주의 별들 중 절반 이상이 그 어떤 성운에도 속하지 않는 외톨이별이다. 모든 성운을 다 합친 것보다 그 별들이 내는 빛이 더 많은 셈이다."
그는 그래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추억하는 사람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것은 무언가가 말해질 필요가 있다는 직감이었다.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들." 그가 쓰려는 것들은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면서 동시에 말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므로, 그것들은 비로소 그가 글로 옮김으로써 '현재'가 된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그는 언제나 현재를 추억한다. 그가 말하는 모든 것들은 - 그것이 사람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춤이든 - 과거의 것이면서 현재의 것이다. 그것들은 이미 결정된 것이어서 우리가 함께하는 게 무의미한 정답들이 아니라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아서 우리가 함께하는 만큼 의미가 되는 것들이다. 현재의 것이면서 미래의 것인 셈이다.
그래서 그가 세자리아 에보라(Cesaria Evora)에 대해 말하는 이 구절은 유난히 아름답다. "그녀는 가난했다. 그녀의 얼굴은 가슴처럼 둥글궁글했다. 그녀는 미소를 자주 지었는데, 그 미소는 비극을 받아들인 사람의 미소였다. 부자들도 그녀의 노래에 귀 기울였고, 가난한 이들은 노래에 매달려,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삶에는 쓴맛과 단맛이 섞여 있는 거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이해 불가능한 삶을 노래해 준다."
나는 음원 사이트에 '세자리아 에보라'를 검색하고 낯선 언어의 제목들을 클릭해 재생한다. 그의 표현처럼 둥글궁글한 그녀의 얼굴이 웃는다. 슬프고 진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500년이나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까보베르데에서 나고 자란 그녀. 가난과 이산을 상징하는 고향의 역사를 닮은 모르나(Morna)라는 장르는 차라리 그녀의 상징이 되었다. 그녀의 목소리로 Maria Elena를 듣는다. 콘트랄토(Contralto, 여성의 최저 음역)로 부르는 부드럽고 애틋한 선율.
Mi vida da la embellece una esperanza azul
파란 희망은 나의 삶에 아름다움을 줍니다.
Mi vida tiene un cielo que le diste tu
내 삶은 당신이 준 천국입니다.
그의 말처럼, 2011년에 타개한 아프리카의 어느 작은 나라의 가수는 2021년 아시아의 어느 작은 나라의 내게로 다가왔다. 그녀가 살았던 과거는 그녀의 음악이 되고, 그것은 미래의 나에게로 와서 그녀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전한다. 나는 그녀를 본 적이 없고, 우리는 만날 수 없는 시대와 장소를 살았지만, 지금 우리는 만났다. 존 버거가 마련한 오래된 놀이터 위에서, 정글짐일 수도, 시소일 수도 있는 자리에서, 우리는 만났다.
그의 놀이터는 때로 아주 거칠고 위험하기도 하다. 그는 "모든 것을 '계량화'하고 본질, 혹은 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 언어들 속에서 우리는 "일종의 기억상실에 빠져들도록 부추겨지고 " 있으며, "경험이 지워지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니 "오늘날 살아 있음, 혹은 무언가가 되어 가고 있음을 산문으로 표현하거나 정리하는 일은 어렵다"고. 그는 이것을 "과거와 미래라는 지평선마저 희미해져"가는 "일시적이지만, 역사적이기도 한 상실"이라고 표현한다. 빙그르르, 놀이 기구에서 내린 우리는 이제 머리를 맞대고 역할 놀이에 빠져들 차례다.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을, 우리가 보고 배운 세상을 우리의 역할 놀이 안에서 전복시킬 차례다.
그의 글이 현재를 추억하고 있다고 느껴졌던 또다른 이유는 그가 시간의 연속성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 '지금, 네가, 잘, 살아야 해. 뒤 돌아보지 마. 멀리 보지마. 그러다 늦어.' 그렇게 "망각의 상태로 축소된" 우리에게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주고 싶어한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왔고 미래를 향해 가고 있음을, 우리의 삶은 선적인 시간이 아니라 순환적인 시간임을, "우리를 둘러싼 원에는 석기시대 이후로 선조들이 우리들을 위해 남겨 둔 증언들이 있고, 꼭 우리를 향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텍스트들이 있다. 자연과 우주의 텍스트. 그 안에 대칭적인 것과 혼란스러운 것이 공존할 수 있음을, 가혹한 운명을 극복하는 기발한 방법들이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그렇게 그의 글은 과거의 것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아닌, 굳이 표현하자면 그가 말하려는 그것이 가장 아름다워질 그 시간을 기다리는 글이다. 그렇다면 그건 과거를 살고 현재를 추억하며 미래를 기억하는 방식이려나.
"삶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는 이름이 없는데, 이는 우리의 어휘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을 큰 소리로 전하는 것은, 이야기꾼이 그렇게 이야기를 전하는 행위를 통해 이름 없는 어떤 사건을 익숙하고 친숙한 것으로 바꾸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중략) 하지만 현실에서는 완전히 낯선 사람들이 서로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상태에서도 친밀함을 공유할 수 있다. 주고받는 눈빛에 담긴 친밀함, 끄덕이는 고개, 미소, 어깨를 으쓱하는 행동에 담긴 친밀함. 몇 분 동안 노래 한 곡이 불리고, 거기에 함께 귀를 기울이는 시간 동안 지속되는 가까움. 삶에 대한 어떤 합의. 아무런 조건도 없는 합의. 노래 주위에서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 사이에 자발적으로 공유되는 어떤 결론."
그의 놀이터에서 우리는 고아가 되어, 서로를 만나고, 잊혀지지 않아야 하는 어떤 것들을 끊임 없이 이야기로 공유하고, 우리가 과거를 살며, 현재를 추억하고,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니, 우리의 시간은 영원히 계속될 테니까 "우리가 아는 그 모든 언어로 칭찬하고, 욕하고, 저주하는 일을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 모든 위계에 저항하면서, 나를 계량화하는 세상에 저항하면서, 내가 넘어질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는 사람임을 기억하면서, 그때의 나는 같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임에 미소지으면서, 우리의 연대 안에서 기다리면서 말이다.
아아, 다시 하늘이 돈다, 나의 하늘은 땅이 되고, 나의 땅은 내 머리를 향해 치솟는다. 여기가 어디지? 글을 읽고 쓰는 동안 나는 내 책상을 떠난 적이 없는데도,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나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나는 넘어지는 중이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는 정글짐 맨 꼭대기 였다가, 내가 사랑하는 그네 위였다가, 나는 발을 힘차게 자꾸 자꾸 구르며 하늘을 향해 나아가고, 그러다 풀쩍, 모래 밭으로 뛰어내린다. 내 손에서는 낡은 놀이기구에서 밴 피 냄새가 난다. 나는 오늘 여러 번 넘어졌고, 다시 일어섰으며, 즐겁게 놀았다. 그의 책 속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