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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Dec 09. 2021

좋아하는 책을 소개합니다 1.

메리 올리버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과 삶을 노래하는 시인은 많다. 자연을 노래하며 동시에 삶을 노래하는 시인도 많다. 그럴 때 시인은 자연을 통해 인간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인간의 삶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노래한다.


하지만 메리 올리버의 시와 산문은 뭐랄까. 자연과 인간의 삶 사이에 어떤 경계도 두지 않는다는 느낌이랄까. 굳이 자연에서 배우자고도, 인간도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야 함을 잊지 말자고도 하지 않고 그저 자연을 둘러보고,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그 너른 시선 안에서 자연도, 인간의 삶도 저절로 제 모습을 드러낸다. 보지 않으려고 할 때는 볼 수 없었던, 모를 때는 보이지 않았던 모습들. 좀처럼 어려운 단어나 이론을 들먹거리지 않는 그녀의 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아주 우아하고 아름답다.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묘사하는, 나아가 살펴본대로 진솔하게 적는 단어들은 그래서 하나같이 살아 있다.


얼마전 그녀의 시집 <기러기> 출간되었다. 또한 시간은 흘러 한해를 마무리 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  시점에, 내가 아직 소개하지 못한,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하고 싶은 작가가 누구일까 생각하다가 (당연하다는듯) 그녀가 떠올랐다. 나는 그녀의 시집  권과 산문  , 그러니까  다섯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데(<개를 위한 노래(미디어창비)>말고는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전부인듯), 그걸 보며  놀랐다. '내가 메리 올리버를 이렇게 좋아했었나?' 싶었기 때문.


누군가를 좋아하는 애정의 표현 방식 역시 좋아하는 그 대상의 성향을 따르는 건지.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은 이렇게 분명한데도 나는 어쩐지 그걸 겉으로 드러내어 큰 소리로 말하지는 않고 있었네. 자박자박, 그저 책을 따라 읽으면서, 그녀가 자신의 시를 낭독하는 영상을 찾아보면서, '이 언니 참, 잘 생겼었구나!' 하면서 말이다. 마치 다정한 누군가의 곁에서 함께 걷는 그런 느낌으로.




(산문 3부작)

제목: 긴 호흡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기 위하여)

옮긴이: 민승남

출판사: 마음산책


"오늘 나에게는 야망이 전혀 없다. 어디서 이런 지혜를 얻은 걸까?"

"곧 이 필연적인 어둠에서 빛이 솟을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표현을 쓰자면 변덕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진지하게, 일을 시작한다. 내게 일이라 함은 걷고, 사물들을 보고, 귀 기울여 듣고, 작은 공책에 말들을 적는 것이다."


<긴 호흡>을 처음 읽던 날의 충격이 떠오른다. 거실 소파에서 이 책을 무심코 펼쳐서 읽던 나는 앉은 그 자리에서 단숨에 책을 다 읽어버렸는데, 내가 뱉을 수 있는 말은 그저, "아. . . "하는 감탄사 뿐. 시를 쓰는 내면에 대해, "나는 멍하고, 무모하고, 사회적 의무 같은 것들에 소홀하다. 꼭 그래야만 하는 상태다."라고 말하는 그녀를 나는 좋아하게 되었다.







제목: 완벽한 날들 (시인이 세상에 바치는 찬사)

옮긴이: 민승남

출판사: 마음산책


"우주가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너 또한 네 헌신들에 의해 새로이 조각된다."


그녀는 삶의 순간 순간이 '완벽한' 날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건 "세상의 수수께끼를 푼 기분을 느낀 건 결코 아니었고 오히려 혼란 속에서 행복"한 것임을. "행복의 바다에서 익사하는 것이라기보단 그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에 가까"움을. 그녀는 무턱대고 '괜찮다'고 말하는 법이 없지만, 삶이 힘들다고 느낄 때, 그녀의 글을 읽고 나면 나의 내면 어딘가가 '괜찮아지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여기, "내가 세상에 주어야 할 선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라고 묻는다는 것.






제목: 휘파람 부는 사람 (모든 존재를 향한 높고 우아한 너그러움)

옮긴이: 민승남

출판사: 마음산책


"조금은 어수선하지만 자연스럽고, 기꺼이 미완성인."

"지금 이 순간은 아니지만 곧 우리는 새끼 양이고 나뭇잎이고 별이고 신비하게 반짝이는 연못물이다."


그녀는 또한 늙어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그녀를 아주  안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했어. 팔꿈치며 발목이며. 기분이며 욕망이며. 고통이며 장난기며. 분노까지도. 헌신까지도.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기 시작하긴  걸까? 내가 30년간 함께 살아온  사람은 누굴까?" 하지만  늙어감은 단지 초라하고 낡은 것이 아니다. 마치 이제  세상으로 나온 아이처럼, 그녀의 눈은 익숙한  속에서 새로운 것을 본다.







(시집 2권)

제목: 천 개의 아침

옮긴이: 민승남

출판사: 마음산책


"잎이 난 다음엔 꽃이 폈어.

어떤 것들에겐

철이 아닌 때가 없지.

나도 그렇게 되기를 꿈꾸고 있어."

"어쩌면 당신도 이해할 거야

하늘이 아닌

무언가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그것에 대해 말하거나 노래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작년 겨울, 이 아름다운 책을 읽으며 나는 또 여러 번 위로를 받았다. 그녀를 단 한 가지 계절과 연결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마음 산책의 출판 시기 덕분에(?) 어쩌면 나는 이제 겨울마다 그녀의 시집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 이 시구도 한 몫한다고 말하련다.

"그리고 모든 서늘한 날들에

우리 쾌활하게 살아가야지."





제목: 기러기

옮긴이: 민승남

출판사: 마음산책


"그대는 이 세상을 사랑하는가?

     그대의 소박하고 비단결 같은 삶을 소중히 여기는가?

         공포를 딛고 선 초록 풀을 숭배하는가?"


"당신이 여전히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이 달래지지 않은 채로

마침내 관에 누웠으리라 나는 믿어.

오, 산비탈에 피어난 거칠고 부도덕하며 무모하고 평화로운 꽃들 아래 묻힌

차갑고 꿈 없는 당신."


                                                                                        "세상을 구원하는 건 그들이지. 이 누추함 너머

                                                                                           원점에 이를 때까지 야위기로 결심한 그들."



그리고 여기, 이 아름다운 시집이 내 앞에 도착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결심하게 만든 주인공. 그녀의 책을 처음 읽은지 벌써 수년이 흘렀으니 그 사이에 내가 좀 달라진 건지, 아니면 그녀의 시가 새삼 더 좋아진 건지(아마 전자이겠지. 그녀의 시는 이미 오래 전에 쓰인 것들이니까)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시집이 퍽 좋다. 그 덕분에 다시금 그녀의 책들을 펼쳤고, 이렇게 그녀의 글을 소개하자고 마음 먹게 되었다.


책의 맨 첫 장에 쓰여 있는 말,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세 가지를 할 수 있어야만 하지.

유한한 생명을 사랑하기.

자신의 삶이 그것에 달려 있음을

알고 그걸 끌어안기.

그리고 놓아줄 때가 되면

놓아주기."


옮긴이 민승남의 말처럼, "날마다 똑같은 풍경 속을 걸으며 숲과 들판, 바다를 접하면서도 끊임없이 경탄의 대상을 발견"하는 그녀는 생의 유한함을, 자신의 삶이 그것에 달려 있음을, 놓아줄 때가 되면 (그게 무엇이든) 놓아줘야 함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녀의 경탄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인 이의 너그러움으로 우리 주변에 널린 사소함 속에서 발견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추천사를 쓴 김소연 시인의 말처럼 "가까이에서 지켜본 것들에 대한 그녀의 정성은 놀랍고 신비하다." 그녀가 보았던 것들을, 우리도 볼 수 있음을 깨달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어떨 때는 타이름 같고, 어떨 때는 경고처럼 다가온다." 그녀가 자신의 시 '그리고 밥 딜런도'에서 말했듯이, 다시 옮긴이 민승남이 '옮긴이의 말'에서 말했듯이, 나 역시, 이 말을 돌려주고 싶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덧. '번역'에 대해 언제나 감사와 감탄을 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번역가) 누구의 버전'이라고 칭할 만큼, 과연 누구의 감각으로 해석해내느냐에 따라 읽는 이에게는 전혀 다른 글이 될 수도 있음을 늘 기억하며 책을 읽는다. 메리 올리버의 글은 모두 민승남 선생님의 번역으로 만났으니 나는 (감히) '민승남 버전의 메리 올리버를 읽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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