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1,2차 세계 대전이나 한국 전쟁에 대해 수업하기 전에 늘 했던 고민은 어떻게 하면 '평화'를 제 입으로 먼저 발음하지 않고도 학생들이 '평화'를 떠올릴 수 있을까 였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는 평화는 지겹고 뻔한 것이 될 수도 있지만, 학생들 스스로 떠올리고 바라는 평화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테니까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러시아의 침략 전쟁에 대해 글을 쓴다면, 그건 물론 평화에 대한 것이겠죠. 하지만 그 당연해 보이는 시도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제 글 솜씨로는 당연하지 않은 평화를, 잊혀지지 않을 평화를 말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새삼 다시 생각해봅니다. 우리에게 평화가 당연한 것이던가요? 평범하고 흔한 것이던가요?
아래의 사진들은 올가 그레벤니크의 <전쟁일기>와 대릴 커닝엄의 <푸틴의 러시아>, KBS에서 최근에 방영된 다큐멘터리를 편집하여 재구성했습니다. (다큐멘터리 2부의 나레이션을 해주신 김소진 배우님께서는 출연료 전부를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기부하기도 하셨죠.)
두 권의 책과 두 편의 다큐멘터리 모두 지금의 상황을 공부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더없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작고 평범한 저는 이런 용기 있는 분들의 걸음 앞에 늘 겸허한 마음이 됩니다. 감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글의 맨 아래에 링크를 걸어두겠습니다.
사진들을 편집하는 내내 자꾸만 달고 싶은 사족들을 꾹 참았습니다. 제 말이 '평화' 앞에서 어떤 방해가 되는 것도 싫었기 때문입니다.
글의 제목처럼, 우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인 이 '침략 전쟁'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에게 몇 마디 할 때가 온 것 같다. 당신은 내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당신은 이 침묵에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당신의 격렬한 비판자들이 말했던 것처럼 당신은 당신이 무자비한 야만인이라는 사실을 몸소 증명했다. 당신은 인간의 목숨과 자유, 문명의 가치들을 전혀 존중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친구: 전쟁이 끝나면 핸드폰부터 살 거야?
베라: 넌 어떻게 생각해? 전쟁중에도 내 새닐(생일)은 있을까?
베라의 생일은 7월 19일이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나는 정기적으로 적십자에 옷을 기부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후원을 받고 있다.
가장 급한 것은 난민숙소에서 함께 지내는 아기를 위한 유모차.
그리고 강아지를 태울 비행기용 케이지.
모든 물건은 무료이지만, 도움을 받아야만, 구걸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난민 신분이 되었다는 것이 서글프다.
그들은 그저 평범한 우리의 이웃,
하지만 그들은,
피난 조차 가지 못하는 노인들을 위해 물을 길러 갑니다. 그러다 눈 앞에서 포격을 맞습니다. 땅바닥에 엎드려 포격이 더는 가까이 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남자.
취재에 나섰던 PD는 말합니다. 그가 물을 길러 가기를 포기했을 줄 알았다고. 하지만 그는 근처 건물에 숨어 포격이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끝내 물을 길러 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끝끝내, 말합니다.
류시화 시인이 우크라이나에 바치는 시 한편을 여기에 옮겨둡니다.
- 꽃은 무릎 꿇지 않는다
내가 꽃에게서 배운 것
한 가지는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무릎 꿇지 않는다는 것
타의에 의해
무릎 꿇어야만 할 때에도
고개를 꼿꼿이 쳐든다는 것
그래서 꽃이라는 것
생명이라는 것
야만적인 침략 전쟁의 중지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빕니다.
올가 그레벤니크, 정소은 옮김, <전쟁 일기>, 이야기장수
대릴 커닝엄, 장선하 옮김, <푸틴의 러시아>, 어크로스
KBS 다큐멘터리 '세계는 지금', <우크라이나 침공 100일의 기록 - 1부 포화 속으로>
KBS 다큐멘터리 '세계는 지금', <우크라이나 침공 100일의 기록 - 2부 테티아나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