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어떤 나무들은 - 아이오와 일기>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쓰기 전에 우선 나는 나의 '팬심의 역사'에 대해 써야한다. 팬심. 우리 세대 사람들에게 팬심은 어쩌면 남다른 의미를 가지는 말일테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 1세대 아이돌인 HOT가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전사의 후예'라는, 조금은 과격하고 문학적인 단어가 들어간 제목의 노래에 맞춰 다섯 명의 멤버가 칼 군무를 췄다. 그 장면은 그 자체로 충격. 우리들은 열광했다. 나는 특히 'We Are The Future'라는 노래와 그 노래의 안무를 좋아했다. 특히 간주 부분의 파워풀한 춤은 내 몸을 들썩이게 했었지.
그렇구나, 너도 1세대 아이돌에 푹 빠져 팬클럽에 가입하고 공개방송에 가고 잡지를 사 모으고 사서함에 남아 있는 '오빠'들의 메시지를 몇 번이고 듣는, 연말이 되면 아이돌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대다수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수퍼 콘서트'에 가기 위해 엄마에게 봄부터 내내 조르던 빠순이였구나 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다. 그렇다. 나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게 참 여러 가지 면에서 곤란한 지점이기도 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니 정말이지 내 주변에 HOT나 젝스키스를 안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 시절에 나 혼자만 그들에게 '푹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되려 이상할 정도였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그들을 '싫어'하거나 그런 노래를 뭐하러 듣느냐고 생각하는 쪽도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노래를 들었고, 그들이 나오는 방송을 보았고(안 나오는 데가 있어야지, 틀면 나오는데), 아이들이 사 온 잡지도 함께 보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거기까지. 나는 일면식도 없는 '오빠'들에게 그 이상의 관심도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쉽게 말해서 나에게는 그 흔한 '팬심'이 없었다는 말이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노래라면 대부분 좋아하고, 내 마음은 갈대 같이 흔들렸으니까. HOT의 노래와 춤에 덩실거리다가도, 핑클과 SES의 노래에 푹 빠졌고, 양파나 에즈원의 간절한 목소리에도 내 심장은 반응했다. 녹색지대나 김경호, 김현정도 있었고, 김광석도 유재하도 김현식도 있었다. 어쩌란 말인가. 다 좋은 걸. 하지만 '오빠'들에게 모든 걸 건 사랑꾼들에게 내가 가진 갈대의 마음이란 결국 지조없는 변명에 불과한 것. 그녀들의 우주는 이미 오빠들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으니.
부모의 절대적인 사랑 없이도 '살 수(는) 있음'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하는 청소년기는 어쩌면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처음 빠져들어보는 시기일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바라보고 보살피는 감정을 통해 아이들은 자라났다.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줄 알던 세상에서 사랑을 줄 수도 있는 세상으로 옮아갔다.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나는 무언가를 그토록 간절하게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잘 보지 못했다. 친구들은 오빠들의 말 한마디에 그야말로 울고 웃었다. 그 맹목적인 사랑이 때로는 경이로웠다.
중학교 2학년 때 호주로 이민을 간 친구 한 명은 HOT의 멤버인 토니 안을 정말 열렬히 사랑해서 토니 안을 절대 토니 안이라고 부르지 않고, 친한 사람들만 부른다는 그의 본명 '안승호'로 부르고, 드러내놓고 '승호 부인'이라느니, '토니 부인'이라느니 하는 애칭도 쓰지 않았다. 오빠가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무엇보다 그런 거 유치하다고. 승호와 자신은 영혼으로 연결돼 있다고. 이민 간 후로도 그 친구는 간간히 우리집으로 전화를 걸어와서는 어제 밤 꿈에 승호 오빠가 나왔는데 그게 꿈이 아니라 현실처럼 생생했고, 자기는 이제 오빠와 너무 먼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눈물이 '실제로' 흘러서 베개를 적셨다는 이야기를 무려 '국제 전화'로 들려주곤 했다. 내 대답은 한결같이 "그렇구나"였는데, 그 친구는 나의 그런 시큰둥한 반응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그 친구는 내가 '누구에게도 팬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진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인데, 그 친구는 나의 그런 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부럽다 상희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너무 괴로운데. . .(너는 안 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으니)"
참 나. 나도 사랑한다고!
청소년기의 여자 아이들은(여중/여고를 나와서 남자 아이들이 어떤지 잘 모르므로, 여기서는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내 주변의 여자 아이들에 국한해서 설명하겠다) 때때로 폭군에 가깝다. 누가 자신과 똑같은 옷이나 심지어 똑같은 지우개를 가진 것도 싫어하면서 굳이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본인들처럼 팬심을 가져야 한다고 종용한다. 그것도 솜털이 하늘하늘한, 해사한 얼굴로. 나는 감히 HOT나 젝스키스처럼 거대 팬덤을, 그것도 열렬히 활동하며 본인들의 애정을 감추지 않는 팬심을 흉내낼 자신도 열정도 없었으므로, 얼굴 없는 가수 '조성모'라는 차선을 택했다. 초반에 장우혁을 좋아한다고 했다가 수많은 잡지 구매의 책임과 의무, 음악 방송 녹화의 책임과 의무, 젝스키스 팬들과 언쟁을 벌일 책임과 의무 등을 강요당하는데 지쳐서 배신자 소리를 감수하고 갈아탔다. (이 글을 읽고 계실 '마리아' 팬클럽 회원 분들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 사족을 덧붙이자면, 나는 조성모의 노래를 참 좋아했고, 출발 드림팀에서 뜀틀 잘 뛰는 것도(?) 좋아했다. 조성모 만세, 와우!)
그러므로 지금도 여전히 나의 팬심은 쓰지 않은 새 것이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심장이 좀 두근거리고 참 멋있네 하는 생각이 드는 배우가 있어도, 이내 잊는다. 나도 내 이런 마음을 참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정 없는 냉혈한은 아닌데(가 아닌가?). 아마 나에게는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는 어떤 사람에게 완전히 푹 빠져서 좋아하는 기능 자체가 탑재되어 있지 않은가보다. 대신 나는 많은 이들을 두루 좋아하는걸! (변명아님) 요즘은 코드 쿤스트가 좋아서 노래도 찾아서 들어보고 '나 혼자 산다'도 오랜만에 몇 편 찾아보았다. 이 사람 참 유쾌하다. 상대도 공감하고 웃을 만큼의, 하지만 핵심이 분명한 농담을 던진다. 음, 좋군.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마저도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는 걸. 어느 날 아무 이유도 계기도 없이 그에 대해 잊어버리고 말거다(소름). 알고 보면 나 지나치게 현실적인 냉정한 여자인건가.
그런데 나, 이 책이 좋다. 그냥 좋다. 이미 여러 번 읽어서 굳이 다시 펼쳐 읽지 않을 법한데도 가까이 두고 아무데나 펼쳐서 읽는다. 책상을 정리하면서 다 본 책들을 책꽂이에 꽂아두느라 이 책 역시 책꽂이에 꽂아 둔 적이 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노트북 앞에 앉아서 뭔가를 계속 찾다가 그게 이 책이었다는 걸 깨닫고 이제는 치우지 않는다. 그냥 옆에 둔다.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책의 표지를 본다. '어떤 나무들은'이라고 적인 흰 글씨도 좋고, 뭔가를 마시느라 컵을 들고 있는 최승자 시인의 얼굴도 좋고, 부연 하늘색과 나무를 닮은 갈색의 세련된 조화도 좋다. 표지를 한 장 넘기면 날짜만 빼곡히 적힌 목차도 좋고,
"밤 여덟시에 로버트 크릴리 리딩에 가려는데 전화가 왔다. 말레이시아 여성 작가 카디자였다. 자기와 같이 가자는 거였다. 이 여자는 내가 자길 얼마나 싫어하는지 모르나, 정말로? 거길 가는데 왜 자기 혼자 가질 못하고 꼭 남하고 같이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중략) 나는 이 여자가 너무나 애기처럼 재재거리고 무슨 투정하는 것처럼 말하고 항상 남에게 뭘 해달라고 하기 때문에 싫다. 슈퍼마켓에 가서도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하고."
이런 부분은 특히 좋다. 나도 저런 사람 싫어하니까, 정도의 이유가 아니라 이걸 쓰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서 좋다. 옆에 있었다면 "카디자, 저도 싫어요" 했을거야, 그런 마음으로 좋다.
아이오와라는 한가하고 조용한 도시로 3개월간 연수를 떠났을 때의 일기를 엮은 이 책에서 나는 (당연한 얘기지만) 최승자 시인을 만난다. 시인의 목소리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이 일기들은 1994년 8월부터 1995년 1월 사이에 쓰였다) 바로 곁에 있는 느낌이다. 시인이 내 곁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기분이다. 나는 시인을 직접 만나본 적도 없는데, 표지의 사진 한 장으로 자꾸 시인의 걸음 걸이, 말투, 목소리, 때로는 사진 속의 손가락이 어떻게 움직일 것 같다는 상상이 (거의 저절로) 된다. 최승자 시인은 지금 내 마음 속에서 어쩌면 현실의 최승자 시인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만들어지는 중이다. 이건 2D도 아닌 4D다. 곧 체취도 부여될 예정.
"원로 여성 시인이 무슨 상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추천을 위해서 김혜순과 내 시집을 어렵사리 구해 읽었는데, 김혜순의 시집을 펼쳐보니 첫 페이지부터 이놈 저놈 소리가 나오고 최승자의 시집을 펼쳐보니 첫 페이지부터 웬 배설물(그 시인은 차마 똥이라는 말도 발음하지 못하고 배설물이라는 단어로 대치했다) 타령이 나오는가, 그래서 자기 낯이 뜨거워져서 추천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나누면서 김혜순과 나는 낄낄거리며 웃었더랬다."
이런 구절을 읽으면 나는 시인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다. (당연히 들어본 적 없음) 그러면서 내 마음 속인지 머리 속인지에서는 '낄낄거리며 웃는 거, 그거 나도 참 좋아하는데. 하하도 아니고 히히도 아니고 킬킬도 아니다. 낄낄거리는 특유의 감정이 있다. 시답잖은 농담, 그 속에서 내가 얼마나 우스운 사람인지, 때로는 얼마나 별로인지 들켜서 차라리 속이 좀 시원하기도 하고, 동시에 '너는 안 그러냐? 장담하지 마라'고 퉁박을 주는 것도 같고, 그러면서 한켠으로는 내가 얼마나 우스워지기 싫어하는 사람이고 별로이기를 싫어하는 사람인지 맹렬히 깨닫는 순간, 그럴 때 나는 낄낄거리며 웃는다.'라는 말이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르고 재생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최승자 시인은 나의 뮤즈인가. 난리났다. (친구들아 너희들의 마음을 이제 나도 조금은 알게 됐어!)
그런데 이상하지. 열다섯 살에도 꺼내 쓰지 않은 새것인 나의 '팬심'을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꺼내놓고도 나는 내 마음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실은 망설인다. 자존심 같은 걸까? 아니면 오래 묵혀온 팬심이 아깝나? 나는 나에게 묻는다. 어쩌면 나는 팬심이라는 말에 딸린 듯 당연히 뭔가를 요구하는 어떤 시선들이 불편했나보다. '최승자 시인의 대표작이 뭔데?' '최승자 시인 몇 년에 등단했냐?' '팬이면 그 정도는 알아야지' 나는 어쩌면 저런 질문들에 영원히 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최승자 시인에 대해 뭘 잘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제부터 아주 오래 최승자 시인의 팬이라 해도 나는 저 질문에는 계속해서 대답할 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최승자 시인이 좋다. 1994년 8월부터 1995년 1월 사이의 매일의 그녀가 좋다. 그녀가 좋다고 하는 사람은 나도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녀가 싫다고 하는 사람은 나도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괴로워하는 어떤 지점에서 나 역시 함께 괴로워하고, 그녀가 배꼽을 잡는 지점에서 나 역시 허리가 꺾어지게 웃는다. 그녀의 책이 곁에 있어 든든하고, 그녀의 책이 눈에 띄지 않으면 미묘하게 허전하다. 그렇다. 이건 분명 팬심이다. 좋아하는 마음이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도 있다. 슬쩍 데운 우유처럼, 미지근한 찜질팩처럼, 전혀 극적이지도 맹렬하지도 않은 마음도 있다. 이러다 문득 이유도 까닭도 없이 마치 스쳐간 바람처럼 그녀를 잊어버리게 될지라도, 지금 나는 그녀가 좋다. 이유 없이 그냥 좋다. 그냥 좋아서 더 좋다.
무림 어딘가에 팬심의 전문가가 있어, 내 마음 정도는 '팬심'이라고 불러줄 수 없다고 한다면, 나는 두말없이 수긍하고 '그럼 수고하십시오' 할테지만, 나는 내가 뭔가를 좋아하는 방식이 좋다. 내 감정을 꼭 팬심이라 부르지 않는대도 상관없다. 이름이 대수랴. 그런데도 그 고수가 지지 않고, 좋아하면 궁금해서 찾아보고 쫓아다니게 되는 거 아니냐고 재차 묻는다면, 아 그럼 제가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닌가보네요, 하고 내 갈 길을 가겠지만, 나는 내 마음 속에서 그녀를 충분히 궁금해하고 쫓아다닌다. 이 정도면 충분해. 오늘도 덕질 성공.
문득 소식이 와서 묻혀 있던 책이
지금 살아나고 있다.
그것을 나는 지금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것으로 끝이다.
아이오와는
좋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