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밀스, <돌보는 사람들>
최근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저 역시 챙겨보았습니다. 1년을 넘게 작품을 고사하면서까지 인물에 관해 공부하고 준비했다는 우영우 역의 박은빈 배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을 '전형적인 장애인'이라는 틀이 아닌 '우영우' 그 자체로 만드는 데 성공했죠. 우영우는 장애를 가졌지만 단지 장애만이 우영우의 전부인 것처럼 해석되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덕분에 드라마는 여러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이 드라마에 대한 호평과 우려 속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문장은 이 두 가지입니다. '현실에서는 권모술수처럼 살면서 드라마 볼 때는 자신이 최수연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장애인의 이동권 시위에 대해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친다'며 노골적인 분노의 댓글을 다는 사람들과 우영우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쓰고 보니 둘은 같은 말일지도요?) 드라마 속 사랑스러운 자폐인 우영우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더 막막한 실제의 장애인들이 많이 있죠. 그리고 우리가 사는 곳은 이상한 변호사가 사는 드라마 속이 아니라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았다니 국가적 손실'이라는 댓글이 달리는 이 사회 속입니다.
저 역시 지적 장애나 발달 장애, 정신 질환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자폐 스펙트럼만 해도 실제로 그 장애를 가진 사람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마주쳤던 지체 장애인이나 발달 장애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그마저도 일회성 만남이나 가벼운 인연으로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거의 눈에 띄지 않거나, 누구도 못 보지 않을 만큼 완전히 공개돼 버린 채로 살아갑니다(예를 들면,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큰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걸어가는 이상한 옷차림의 사람들).
신체장애와 정신 장애는 얼마나 다를까요. 남편이 한 달에 한 번씩 받았던 치매 검사에서 중증도 이상의 결과를 받았던 시간은 일 년이 넘습니다. 남편은 그 시간 동안 때로는 어린아이 같기도 했고, 때로는 심각한 치매에 걸린 노인 같기도 했습니다. 좀 전에 먹은 음식의 종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때로는 상상한 것들을 현실인 것처럼 말하기도 했죠. 평범하고 일반적인 감정도 잘 못 느낀다는 면에서는 퇴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결혼기념일이나 제 생일, 함께 갔던 신혼여행지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면에서는 낯선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 시간을 건너면서 저는 나를 '나'이게 하는 것들에 대해 오래 생각했습니다. '나'라는 건 몸도 마음도 함께 가지는 존재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큰 문제는 없다고 여길 수 있을 만큼 원만하게 작동하고 있는 몸과 마음이란 얼마나 감탄스러운 것인지를, 반대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어느 한 군데만 어긋나도 연쇄적으로 나빠져 버리는 허약한 것임을 배웠습니다. 신체장애와 정신 장애 모두 나를 '나'이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고통스러운 일임을 배웠습니다.
그 괴로움 속에서 '나'에 대한 인식을 전면적으로 재수정해야 한다는 요구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나라는 존재가 실제로 일관되고 일정한지와는 별개로,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건강한지, 얼마나 제대로 기능하는지에 맞춰 자아상이라는 걸 세웁니다. 그리고 자주 그 자아상에 기대어 하루를, 한 달을 살아가고, 더 먼 미래를 계획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아프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이 '나'라는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알던 나일 수 없고, 그러니 하루를, 한 달을, 더 먼 미래를 살 수도, 계획할 수도 없게 됩니다. 이제 나는 처음 만나는 나와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 마음이 아픈 사람과 그를 돌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아주 유명한 사람도 있고, 평범한 이웃도 있습니다. 그들이 새로운 '나'를 만나는 과정을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 정신/신경의 아픔과 관련한 책이라면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저의 리뷰를 통해 살짝 엿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closer0927/533
샘 밀스, 이승민 옮김, <돌보는 사람들 - 버지니아 울프, 젤다 피츠제럴드 그리고 나의 아버지>, 정은문고
샘 밀스는 영국의 소설가입니다. 열한 살 때부터 글을 썼다는 그녀는 조현병을 앓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간병인의 일상은 마치 지금 여기 대한민국 간병인의 모습처럼 크게 낯설지 않습니다. 덕분에 그녀의 이야기가 큰 거부감 없이 읽힙니다.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를 간호하는 경험과 버지니아 울프를 간호하던 레너드 울프의 이야기, 젤다 피츠제럴드를 간호하던 스콧 피츠제럴드의 이야기를 엮어 깊이 있는 한 편의 수기를 완성했습니다.
삼십여 년 동안 버지니아 울프를 곁에서 간호한 레너드 울프는 그녀에게 간병인의 괜찮은 선례로 읽힙니다. 하지만 스콧 피츠제럴드는 그렇지 못해요. 그녀가 아버지로부터, 아니 정확하게는 끝을 알 수 없는 간병인의 역할로부터 도망치고 싶다고 여길 때, 그런 충동과 싸울 때, 그녀는 스콧 피츠제럴드를 떠올립니다. 네, 어쩌면 스콧과 젤다는 실패한 선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픈 사람과 돌보는 사람의 이야기를 단지 더 나은 쪽과 덜 나은 쪽 내지는, 성공한 쪽과 실패한 쪽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 걸까요.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잘 돌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덜 힘들게 하면서 보살핌을 받고 싶습니다. 하지만 선례는 턱없이 부족하고, 돌봄이란 개별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영역의 끝판왕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고민할 수 밖에요.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나은 쪽과 못한 쪽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지점들을 신중하게 짚어갈 수 밖에요. 만져보고 디뎌보고 머뭇거리면서 건너갑니다.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처럼요.
조현병 환자에게 발작은 고통스러운 자기 붕괴, 즉 일상의 내러티브를 떠받치고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가상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나'의 붕괴를 수반할 수 있다. (중략) 뭔가를 성취하려는 '나'가 사라지고 나를 둘러싼 세계가 더 이상 말이 되지 않는다면 전처럼 목표를 추구할 가치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병은 사라짐을 시연하는 마술 트릭이다. 남아 있는 가족, 친구, 연인은 비탄에 잠긴다. '우리의 애도는 유형이 독특하다. 그 사람의 예전 존재의 자투리 조각을 여전히 우리 손에 붙든 채 남겨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는 조현병에 대해 언론에 보도되는 극히 일부의 사례들만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 사례 속에서 조현병 환자들은 하나같이 난폭하고, 폭력적이고, 극단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특징은 곧 병의 '증세'로 설명되었고, 그 증세는 끝내 가까운 사람들 혹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 대한 폭력 행위로 이어졌습니다. 누군가가 조현병 환자 '때문에' 죽었다는 이야기들, 무시무시한 폭력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들이 저를 겁먹게 했습니다. 그런 첫인상은 쉬이 사라지는 게 아니어서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저자가 참 용감하다고 생각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아버지가 무섭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연로하셨다고는 해도 자신도 모르게 폭력적으로 돌변하면 저자가 완력으로 방어하지 못할까봐 저 혼자 걱정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아버지가 폭력적으로 행동한다는 기록이나 사례는 책에서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는데도요) 저, 아무래도 조현병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이에요. 지금 환자분은 정말로 살아 있는 걸 원치 않아요."
이 말에 나는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버지의 우울증은 언제나 내 눈에 보이지 않게 가려져 있었다. 약물이 강도를 누그러뜨려 늘 몽롱하고 조용하게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이토록 노골적인 자포자기 상태의 아버지를 처음 보았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아버지가 살아 있기를 바랐다. 아버지가 살고 싶어 하기를, 우리 세 남매 곁에 있고 싶어 하기를 바랐다.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어떤 긍정의 불꽃이 나에게서 아버지에게로 흘러 전해질 수만 있다면.
긴장증에 빠지면 몇 개월이고 일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 아버지를, 조현병 증세를 완화해주는 약을 먹는 동안에는 거의 '없는 사람'처럼 온종일 별다른 말도 행동도 없이 그저 소파에 앉아 있거나 멍한 상태인 아버지를, 저자는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그 무료한 일상에서 아주 작은 변화라도 느껴지면 그것을 알아채서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조치하고, 무엇보다 아버지와 대화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아버지가 극도로 어렵게 느끼는 '기차 타기' 같은 미션도 수행해봅니다. 그리고 저자는 아버지가 병원이나 요양 시설에 너무 오래 계시지 않고 본인과 '함께' 지낼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한 친구는 나에게 아버지를 그곳에 보내고 '간병의 의무'를 그들에게 넘겼으니 한시름 놓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그렇게 느낀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내 하루 일상의 배경이었고, 밤마다 내 꿈에 나타났으며, 한시도 걱정을 멈출 수 없는 존재였다. 내가 아버지를 내려놨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그렇게 느낀 적이 없었다." 네, 물론입니다. 존재가 내려놔지던가요 어디.
내가 아버지에게 더 좋은 간병인이 될수록 톰에게는 더 나쁜 여자친구가 되어 갔다. 시소를 타듯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의 퇴원이 언제쯤일까? 모든 대화 뒤에는 이런 무언의 질문이 놓여 있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우리가 다시 커플답게 지낼 수 있을까, 정작 그때가 되면 너무 늦지 않을까?
저자의 연애 이야기가 저는 가장 좋았습니다. 내심 그녀의 연애가 성공(?)하기를 바라기도 했어요. 간병인이 된 한 인간의 정체성과 삶이 간병인이라는 세 글자로만 설명되지 않기를, 저는 정말 바랐습니다.
그러나 간병인이 됨으로써 내 자아가 한 차원으로 좁혀진 것도 사실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당신의 복잡함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적들은 우리를 희화화하고, 성별 인종 계급의 구속 안에 우리를 가두며, 우리에게 모순과 복잡성을 허용하길 거부한다. 톰과 함께일 때,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색조를, 특이함과 유치함, 진지함, 박식함, 아둔함, 장난스러움, 따뜻함, 청승맞음, 조용함, 시끄러움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었다. 간병인으로서의 나는 오직 한 가지 색조로 존재해야 했다. 그럼으로써 내 본성의 다른 빛깔들은 소거되었다.
정신 질환 치료시설들은 환자를 어린아이 취급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 말도 아주 틀리진 않겠지만, 환자들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은 그들의 질환 자체라는 점도 나는 말해두고 싶다. 어린아이처럼 다뤄지는 것이 우리 아버지에게는 혜택이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병이 아버지를 어린아이만큼 무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다시 독립적인 어른으로 강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보살핌을 받아야만 했다. 규칙적인 일과의 자동작용은 그 자체로 심신을 달래주는 자장가다. 건강한 사람은 다양성을 수용할 능력과 에너지가 있으니 이것이 지루하고 유치해 보이겠지만, 취약한 상태에 놓인 - 식단 짜기 같은 그날그날의 할 일이 엄청나게 크고 피곤한 일일 수 있는 - 사람에게는 이롭고 도움이 된다.
남편이 집으로 퇴원해 오자마자 코로나가 발병했고, 한두 달 사이에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사회 시설은 격리에 들어갔고, 회사들은 재택근무로 시스템을 변경했습니다. 덕분에 남편과 저는 단둘이 집에서 재활의 시간을 보내야 했죠. 우리는 그야말로 더듬더듬, 아주 사소하고 기본적인 일들부터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밥 먹는 것, 화장실에 가는 것, 집 안에서 움직이는 것 등등. 보이지 않는다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된 남편에게 익숙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간단해 보이는 일도 막상 몸이나 정신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과제일 수 있습니다. 들여다보면 새롭게 보입니다.
몇 주 내내 다모클레스의 검이 우리 머리 위에 매달린 것처럼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다 하루 스물네 시간 매일 같이 경계 태세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두려움이 서서히 물러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저 위험신호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적시에 그곳에 있기만을 바랄 뿐 - 미지의 것으로 남겨둬야 하는 '만약'이라는 가정들이 너무 많았다.
병원에서 제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이라면 '좌절'이 아니었을까요. 아픈 이를 낫게 하기 위해 실제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적은지 알게 됐을 때, 저는 절박하다는 말의 다른 얼굴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절박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단지 엄마의 병이 구사하는 복화술이 아니었다. 내 생각이 틀렸다. 분한 건 엄마 자신임을 나는 깨달았다. 엄마의 인정 많은, 친절함, 다정함 - 이런 자질들이 그저 번드르르한 겉모습은 아니었다. 엄마 본심의 진실한 투영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욕망을 송두리째 밟아 누르며 좌절감을 속으로 삼켜야 했던 세월이 일년씩, 십 년씩 겹겹이 쌓여갔다. 어렵게 몇 과목의 A레벨을 통과하고도 학위 과정을 중도 포기해야 했던 건 일과 돌봄의 요구에 지쳐 끝까지 공부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삶을 즐길 날이 찾아오려니 믿으며 기다렸는데 이제 너무 늦어버렸다. 은퇴도, 여행도, 학위도, 수십 년의 희생 끝에 누리는 휴식도 오지 않게 됐다. 인생은 정의의 저울이라는 원칙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엄마가 분개하는 것도 당연했다.
쿨하지 못한 저는 좋은 사람이 겪는 불행을 받아들이는 일에 여전히 서툽니다. 아마 내내 서툴 것입니다.
그 글에선 우선 당신 자신을 보살피라고 조언하고 있었다. 언제나 당신을 가장 우선에 두라. 어느 정도는 이 금언이 타당했다. 베풀기 위해서는 당신이 강해져야 한다. 피로는 간병인의 적이다. 하지만 좀 짜증도 났다. 전적으로 당신 자신을 우선에 둔다는 건 불가능한 발상이다 - 이 말대로 따른다면 당신은 애당초 간병인이 아닐 테니까. 돌봄은 언제나 얼마간의 자기희생을 요구할 것이고, 당신의 삶을 재편하도록 강요할 것이며 당신을 소진시키고 당신의 한계를 시험할 것이다.
나는 단 하루라도 전화 통화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아버지의 바위였다. 아버지의 안정적인 상태를 좌우하는 것은 아버지가 밤낮으로 복용하는 무지개 색 알약들만이 아니었다. 안전하다는 느낌, 사랑받는 느낌, 내가 곁에 있다는 확인, 이것 역시 필요했다.
사랑, 사랑, 사랑.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
"그게, 아버지가 조현병이에요." 내가 말했다.
"제가 간병인이고요."
남자의 맥주가 허공에 멈췄다.
"그거 유전인데, 그렇죠?"
그의 반응에 비위가 상해서 나는 딱딱하고 과학적인 어조로 유전자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후생유전학적 문제도 있다고, 다시 말해서 환경적 요인에 따라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기도 꺼지기도 한다고 대답했다. 생활 방식, 가정교육, 치료 계획 등등이 모두 관련이 있다고.
침묵. 남자가 맥주를 내려놓았다.
"그만 가야겠어요."
나는 쏘인 듯 얼얼했다. 모욕당한 심정으로 밖으로 나와 런던 거리를 걸었다.
병원 로비로 나와 진료비를 계산하러 갔다. 문득 접수계 직원이 아버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러지? 아버지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고 긴장증 증상도 전혀 없었다. 그러다 나는 시점을 바꿔서 그 직원의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낯선 사람의 시선으로 어딘지 살짝 이상해 보이는 남자, 약간 몸을 떨고 씰룩거림이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나에게는 이런 특징들이 정상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의식하지 않았다. 직원에게 언짢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직원은 계속 아버지를 재단했고, 나는 다시는 그 동물병원에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남편과 동행하다 보면 전에 알던 사람들에게서도 전혀 새로운 얼굴을 마주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남편의 상황과 상태에 대해 더 정확하게 더 자세히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아주 작은 오해나 거리감도 받아들이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그건 생각보다도 훨씬 괴로운 일입니다.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은 상상 이상으로, 필요 이상으로 견고해서 저와 남편을 알지도 못하면서 이미 자기만의 결론을 가지고 저희를 대하기도 하니까요.
저는 제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 견고한 편견의 벽을 허물고 남편의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고, 그런 사람들은 저에게 설명하라, 는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저 역시 그런 사람 앞에서는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을 거의 느끼지 않아요. 그리고 그건 인간관계의 친분 정도와도 크게 상관이 없더군요. 어떤 편견은 일상에서 설명하고 해명하는 것만으로 바뀔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그 편견을 알아채고,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만드는 새로운 시선에 힘을 보태는 게 나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또 설명하려는 노력 속에서 깨달은 바도 있습니다. 존재에 대한 설명은 자주 그 존재를 엇나간다는 것을요. 말하면 할수록 제가 느꼈던 존재에서 멀어지는 느낌. 겪지 않고는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 이 원리는 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저 역시 타인에 대해 완전한 이해를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받아들입니다. 어떤 불일치와 거리감은 필연적이고, 그건 그거대로 놔두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이 불일치와 거리감을 이용해 오해를 불러일으키려고 시도하는 이들도 있지만, 네, 그런 사람들은 그냥 둡시다.
쉽게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요즘은 오해하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네, 그냥 둡니다. 남편과 저의 신변에 관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면 굳이 추가로 설명하거나 해명하지 않아요. 제가 그랬듯, 그 오해의 당사자가 원한다면 다시 보고, 그대로 보려고 할 테고, 그런 과정에서라면 우리는 결국 만나게 될 테니까요. 그를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제가 제 눈 앞에 있는 상황을, 사람을 다시 보려고 노력하는 일이, 있는 그대로 보려고 애쓰는 일이 더 의미 있을 겁니다. 우리가 만날 확률도 더 높아질 테고요.
3주 동안 '아픈 사람, 돌보는 사람 특집'을 진행해보았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바도 아니지만, 특집 이후에 오히려 더 많은 호기심과 의문, 읽어야 할 책과 읽고 싶은 책들의 목록이 늘어나고 말았네요. 알려고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들'이 늘어나 버리는 신비한 원리.
특집을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무더운 여름도 한풀 꺾이고, 이제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가을 날씨가 엿보이네요. 가을은 제가 또 제일 좋아하는 계절입니다. 좋은 계절에 좋은 일들이 많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