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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Feb 24. 2022

이상한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장면 1>

치료사와 환자, 휠체어와 보행기, 간병사와 보호자가 뒤섞여 발 디딜 틈 없이 복작거리는 중앙 치료실 앞 대기장. 엘리베이터에 타려는 사람과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 다음 치료 시간에 늦었다며 서로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 재활 병원의 하루는 조용할 날이 없다. 그리고 여기, 딱 한 마디로 이 모든 혼란의 중심에 서는 이가 있었으니, 일명 "안녕하세요"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작고 마른 체구에 눈처럼 흰 머리칼을 가졌다. 뇌출혈 이후로 잘 걷지 못해서 이동은 늘 휠체어를 이용해야 한다. 할아버지의 눈은 동그랗고 늘 약간 젖은 듯 촉촉한데, 나는 가끔 할아버지가 울고 계신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하곤 한다. 겉으로 보기에 할아버지는 깔끔하고, 콧줄(L 튜브)도 없어서 이제 걷기만 하면 퇴원하시겠구나, 선무당처럼 짐작해볼 만한 모습이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입을 여는 순간, 그런 짐작은 한순간에 철회다.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안녕하세요" 뿐이니까.


할아버지는 안녕하세요, 만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마치 마블 영화에 등장하는 '그루트'처럼. 할아버지는 불편한 상황에서도 기분 좋은 상황에서도, 요구 사항을 말하거나 울상을 지을 때도 모두 '안녕하세요'만 외친다. 어떤 안녕하세요는 작고 보드랍고 어떤 안녕하세요는 거칠다. 가끔 안녕하세요를 여러 번 반복적으로 외치기 시작하면 담당 간병사나 치료사는 올 게 왔다는 듯 모든 치료를 중단하고 우선 할아버지를 침대로 모셔간다.


대부분의 환자와 보호자는 치료사와 간병사를 자주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환자와 간병사 사이에 라포가 형성되기를 기대하고, 간병사가 환자를 좀 더 이해하고 돌봐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마 안녕하세요 할아버지의 보호자도 마찬가지 마음일 터. 할아버지의 간병사는 할아버지의 '안녕하세요'를 그래도 제법 구분해서 알아듣는 눈치다. 어떤 안녕하세요를 듣고는 자세를 고쳐주고, 어떤 안녕하세요에는 웃으며 화답하고 어떤 안녕하세요에는 등을 두드리며 위로하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겪는 상황과 사건, 사람을 종합해서 내리는 어떤 판단일 테다. 우리는 바로 그런 장면을 간절히 기다리는 거다. 누군가 할아버지의 안녕하세요를 해석해주기를.


할아버지가 치료실에 나타나지 않으면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했다. 어르신들의 병세란 하루를 짐작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내내 괜찮아 보였던 할머니가 하룻 밤사이에 폐렴으로 전원을 하러 가기도 하고, 병원에 감기라도 유행하면 어르신들부터 차곡차곡 운동을 취소하고 침대에서 요양에 들어가곤 했으니까. 그렇게 며칠을 괜히 두리번거리며 보내던 어느 날, 저 멀리서 "안녕하세요!"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오늘 안녕하세요 소리가 아주 밝고 크다, 할아버지는 아직 괜찮으시구나.



<장면 2>

초등학교 6학년이라는 그 여자아이는 옆으로 걸었다. 꽃게처럼. 정확히 말하자면 걸음 한 번에, 앞으로 20%, 옆으로 80%를 진행한달까. 복도 왼쪽 끝에서 시작한 걷기는 금세 오른쪽 끝에 부딪히며 끝나곤 했다. 뇌종양이라고 했다. 3년 전에 발병해서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뇌의 특정 부분이 손상되면서 평형감각이 잘 유지되지 않는다고. 걸음을 교정하기 위해 재활 병원에 입원한 것이었다.


아이의 걷기는 쉽게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게 의사들의 중론이었다. 종양을 제거할 때 뇌세포의 손실이 있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자라는 중이니까. 아이의 뇌 역시 재생되고, 새로 만들어질 테니까. 의사 선생님들은 포기하지 말자고 말씀하셨다는 게 아이어머니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은 아이에게 남은 후유증이 단지 평형감각의 상실만은 아니라는 데 모두 동의하고 있었다. 아이는 대부분의 경우에 '충동적'으로 행동했다. 먹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해서 아무한테나 음식을 좀 달라고 했고, 말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해서 "우리 엄마가 선생님 못생겼대요" 같은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걷는 것만 문제라던 아이 엄마의 설명은 자신의 아이에게 겨눠질 손가락질들을 막아보려는 마지막 안간힘이었을까. 아니면 오랜 병간호로 지친 엄마의 자기방어이자 현실 부정이었을까.


아이가 삐뚤게 걷는 것, 충동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간호사나 치료사, 다른 보호자나 때로는 다른 환자들에게서 증언될 때마다, 엄마는 침대 커튼을 사납게 닫고 아이를 혼냈다. 아이의 우는 소리, 엄마가 내지르는 비명이 온 병실을 가득 채웠다.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커튼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저기, 애기 엄마, 애들은 클 때 다 그래요. 그만 혼내요. 아파서 그러는 거잖아요." 그러면 커튼 너머에서 앙칼진 대답이 나왔다. "아뇨. 이번에야말로 아주 혼쭐을 내서 버릇을 고쳐놓을 겁니다."


아이 엄마의 폭력적인 태도는 점점 심해졌고 병원에서는 이렇게 계속해서 아이를 거칠게 혼내거나 다른 사람들과 자주 싸우면 (실제로 아이 엄마는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과 자주 싸웠다) 더는 병원에 계실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 말을 들은 아이 엄마는 수간호사가 병실을 나가자마자 "사람을 차별한다"며 분노했다. 아이는 그런 엄마를 텅 빈 눈으로 바라봤다. 그 후로도 아이 엄마는 치료실에서도 복도에서도 사람들과 싸웠고, 아이는 옆으로 걸었고, 사람들의 음식을 훔쳤다. 병원은 결국 강제 퇴원을 결정했다. 병원에서 그들을 위해(?) 한 일은 전원이 가능한 병원을 알아봐 주는 것이 전부였다. 아이와 엄마는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쌀쌀하던 어느 봄날 병원을 떠났다.




남편이 일 년 조금 넘게 입원해 있었던 재활 병원에서 내가 본 일들이다. 그 병원의 환자들은 대부분 뇌출혈이나 뇌경색, 혹은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손상된 뇌와 신체 기능의 회복을 기대하며 치료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올리버 색스의 대표작이자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사랑 받는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으면서 나는 몇 년 전에 만났던 저 사람들을 떠올렸다.


올리버 색스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인간이라는 주체 즉 고뇌하고 고통받고 병과 맞서 싸우는 주체를 중심에 놓기 위해서는 병력을 한 단계 더 파고들어 하나의 서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나 역시 그의 말을 따라 '안녕하세요 할아버지'와 '옆으로 걷는 소녀'를 인간이라는 주체로 그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 적었다. 그저 그들이 보이는 어떤 '증상'만을 기억할 뿐이었다.


환자를 한 명의 주체로 대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가. 남편이 뇌를 다쳐 말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한 채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그가 '아이 취급' 당하는 걸 셀 수 없이 목격했다. 그리고 그런 장면에서 내가 불쾌할 때마다 나는, 무심결에 누군가를 그렇게 대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했다. 그때 나도 (남편을 아이처럼 대하는) 그 사람들처럼, 상대를 안쓰럽게 생각하거나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거나, 상대가 어차피 대답하지 못하리라는 걸 짐작해서 그렇게 행동했고, 당시에는 그게 충분한 이유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막상 남편을 곁에서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깨달은 건, 제대로 말하거나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표면적인 행위 이면에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남편의 '존재'였다.


남편은 주기적으로 '치매 판정'을 위한 검사를 받았었다. 당시에 남편의 나이는 29세였는데, 치매 정도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지남력(날짜나 장소처럼 '현실'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를 기억하는지의 여부)이 특히 부족했고(앞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이유였을 터), 연산이나 단어 암기력도 좋지 않았다. 그런 결과지를 받아들고 남편의 휠체어를 밀 때 나는 그가 '비존재'처럼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 눈앞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나를 기억하지도 못하고, 방금 밥을 먹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럴 때 사람은 과연 '존재'하는 걸까, 라는 의문. 남편과 나는 더는 어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우리가 공통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누군지에 관한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것. 나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살이 난 내가 병원에 가지 못한 적이 있었다. 기침까지 너무 심해서 마스크를 써도 다른 환자분들께 민폐일 상황이었다. 감기약을 먹고 몸조리를 해서 기침이 가라앉은 후에 다시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내가 본 남편의 표정.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려 애쓰던 얼굴에서 나는 알았다. 남편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그는 지금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지만, 그는 분명 나를 기억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나는 남편의 증상들 아래 감춰져 있던 '남편의 존재'와 마주쳤다. 그 경험 덕분에 표면적인 증상들 때문에 느껴지던 남편의 비존재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도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지금 남편은 내게 고맙다고 말하지만, 나 역시,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이유. 그는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순간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병이란 결코 상실이나 과잉만이 아니다. 병에 걸린 생명체, 다시 말해서 개인은 항상 반발하고 다시 일어서고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하고 주체성을 지키려고 한다. 혹은 잃어버린 주체성을 되찾으려고 하고 아주 기묘한 수단을 동원하면서까지 반드시 반응한다."


신경학과 의사인 저자가 거의 평생에 걸쳐 만난 환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코르사코프증후군으로 자신에 관한, 자신을 둘러싼 이 모든 세상에 대한 기억이 끊임없이 삭제되고 그 빈 곳을 허구로 채우거나 채우지 못해서 불안해하는 사람들. 뚜렛 증후군으로 자신(I)과 충동적인 그것(It) 사이에서 두려움에 떨며 방황해야 하는 사람들. 그들은 감각이 모두 사라지거나 감각이 지나치게 증폭되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자신의 멀쩡한 다리가 사라졌다고 믿는 사람, 자기의 손을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고, 심지어 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 충동적인 감정을 제어할 수 없어서 과할 만큼 익살을 떠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모자라 자신이 '볼 수 없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사람들.


저자는 그 환자들을 면담하고 치료하는 과정을 기록하며, 자신에게 끊임 없이 묻는다. 그들을 '그들 자신'이게 하는 내면의 힘에 어떻게 닿을 수 있을까. 그들 자신과 이렇게 멀어져 버린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나아가 어떻게 하면 환자 자신에게 당신은 당신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이 질문의 답은 훌륭한 치료 과정이나 획기적인 약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이미 환자의 내면에 그러한 의지와 용기가 있음을 매번 확인한다.


"살아가는 힘,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 '개체'다운 존재로서 살고 싶다는 의지력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떠한 충동이나 병보다도 강하다. 건강, 싸움을 겁내지 않는 용맹스런 건강이야말로 항상 승리를 거머쥐는 승리자인 것이다."


그는 훌륭한 의사가 늘 그렇듯이 환자를 단순하고 납작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환자를 대한다. 환자를 단지 증상으로 '판별'하려는 게 아니라 그가 그 증상을 어떻게 느끼는지, 그는 어떻게 증상에 맞서고 있는지, 나아가 그가 원하는 삶은 어떤 건지 궁금해한다. 그는 치료의 방향과 목표에 대해서도 열려 있는데, 때로는 증세를 아예 사라지게 만드는 게 아니라 증세와 함께 살아가는 걸 선택하기도 한다. 환자 자신이 그 증세로부터 뭔가를 얻고, 그것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였다면 굳이 '문제를 뿌리 뽑아 정상의 세계로 끌고 가는 일'은 무의미하며 오히려 폭력적으로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환자는 이렇게 말한다. "발작이 일어나서 행복했습니다. 일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행복했던 경험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읽는 내 안의 뭔가가 뒤집히고 다시 세워진다. 아픔은 나쁜 것, 괴로운 것이라는 내 생각은 얼마나 맞는 것이고 얼마나 틀린 것일까?


오랜 치료 과정에 지친 환자가 "이제 나는 끝난 것 같다"고 말할 때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그런 시선과 노력은 신경증 내지는 정신병적 증상들에 대해 '거북하고 불편하다'고 막연히 생각해왔던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어떤 울림과 깨달음을 준다. 그건 단지 '그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피상적인 관념이기보다는 '내가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다면?'이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는 것에 가깝다. 그가 보여준 환자와 질병에 대한 애정이 거리를 좁혀준 결과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저 질문에 답하고 싶다. 내가 저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다면, 사회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리라고.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 사람들에게는 손 내밀어 줄 타인의 존재와 시스템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안녕하세요 할아버지'와 '옆으로 걷는 소녀'에게도 그들을 외면하고 불편해하는 시선 대신, 기다려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늘 필요했다. 그들이 '다르다'는 걸 알지만 그것만으로 그들 전부를 안다고 말하지 않을 사람들이 필요했다.


옆으로 걷는 소녀의 어머니는 고향을 떠나 몇 년째 타지에서 홀로 아픈 딸을 돌보며 지내는 삶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사람들은 틈만 나면 '왜 애 아빠는 찾아오지 않나?' '저 성질을 누가 받아주나?' 같은 이야기를 수군댔지만 정작 그녀가 왜 침상의 커튼을 늘 맨 끝까지 치고 있는지, (당시에는 감염병이 있지 않았음에도) 왜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지, 사람들과 정서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는 소녀의 어머니와 딱 한 번 단둘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녀는 아주 거친 말투로 자신이 필요한 정보에 관해 물었는데, 그때 나와 아주 잠깐 눈이 마주쳤고, 나는 그녀가 어쩌면 '겁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뿐, 나 역시 그녀를 위해 좀 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동안 눈빛을 나눈 것만으로도 나는 그녀가 전보다는 덜 불편하게 느껴졌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의 경우, 할아버지를 돌보던 간병사가 바뀔 때마다 '딱한' 할아버지를 왜 좀 오래 돌봐주지 않는지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지만, 정작 할아버지와 간병사가 잘 맞지 않았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간병사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간병사를 거절했을 수도 있다는 것. 할아버지는 언어를 상실했을 뿐, 감각과 사고는 거의 유실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할아버지에게 정말 필요한 병간호는 우리의 생각보다도 훨씬 구체적이고 세심한 것이었을 테고, 그런 병간호가 가능한 사람을 만나기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한쪽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건 할아버지의 경우는 물론이고, 사실 어떤 환자에게도 옳지 않은 접근이다. 그들은 아픈 것이지, 무감각한 것이 아니니까. 때로는 무감각 자체도 하나의 증상일 뿐, 실제의 그들을 증상으로 치환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럴 때 돌봄은 더는 획일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


좁은 병원에서 사람들은 물리적으로는 아주 가까웠지만,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는 아주 멀리 있었다. 어쩌면 물리적으로 지나치게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히려 좀 더 방어적으로 서로를 경계했다. 더구나 병원에서 환자는 개체로서 존재하기보다는 하나의 증상이나 병명으로 구분되고 또 그 증상이나 병명을 가진 사람들과 한 데 묶여 '관리'된다. 그런 현실적인 분류 역시 필요에 의한 것임을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좀 더 하나의 개인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가진 개체로 대하려고 노력해야만 환자는 자신과 멀어진 거리를 조금씩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건 어쩌면 앞으로의 우리 사회가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무려 20대의 뇌졸중 환자부터 80대의 치매 환자까지 거의 전 연령대가 '아픔'을 통해 '이상한 세계'로 떨어진 것을 보며 나는 우리 사회가 '돌봄'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매일 느꼈다. 이 모든 결과는 결국 우리가 살아온 방식의 총합일 터. 다시 말해, 그들은 조금 먼저 그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 것일 뿐, 끝내 우리는 모두 그 이상한 세계를 거치게 될거라는 생각.


그러니 아픈 곳을 돌보는 일은 지금 내가 아프지 않더라도 언제나 '나'를 위한 일이다. 어딘가가, 누군가가 돌봐진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곳을 보듬고 있다는 뜻이므로, 그건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 전체가 조금 더 건강해진다는 의미다. '그'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인 것. 이런 돌봄의 선순환을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런 말들을 쓰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내가 너무 작고 부족하게 느껴져서다. 그 부끄러움들 속에서 나는 겨우, 남편의 비존재적인 모든 증상을 넘어 그의 존재를 알아챌 수 있었던 행운이, 부디 많은 이들에게도 찾아오기를 빈다. 그가 끝내 얼마큼 회복되든, 회복되지 않든,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그저 그의 증상으로서의 비존재와 서글프게 부딪히는 날들로만 기억되지 않기를. 며칠이나 몇 개월에 한 번이라도 그의 존재와 눈 마주치는 날이 찾아오기를. 그런 순간들을 위해 사회와 타인의 배려가 늘 함께하기를. '안녕하세요 할아버지'와 '옆으로 걷는 소녀'의 안녕을 빈다. 그게 어떤 안녕이든, 그저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괜찮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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