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링거는 남편이 입원해 있을 때였다. 병원 가는 것도 약 먹는 것도 싫어하는 나에게 한 시간이 넘게 주삿바늘을 꼽고 누워 있는 일이 맘에 들 리 없었다. 재활병원으로 옮긴 남편이 매일 좋아진다며(그렇지 않았다) 자기 최면을 잔뜩 걸고 있던 때라 몸살에 드러누운 나도 못마땅하긴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병원에 나갈 수가 없었다. 몸을 일으킬 힘이 없어서 누워 있다가 문득 링거를 맞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링거의 효과를 믿었다기보다는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함으로써 보상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미신적인 마음이었다.
지루하고 지루한 시간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팔뚝의 혈관을 몇 번 찾아보지도 않고 손등에 바늘을 꽂아버렸고, 주사약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금세 혈관 통증이 찾아왔다. 손등이 욱신욱신했다. 집에 돌아오는 잠깐 사이에 손등에는 퍼런 멍이 들기 시작했다. 후회는 진작에 시작되었지만, 분노는 나의 힘, 성의 없는 선생님에 대한 화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첫 번째 링거는 푸른 멍처럼 내 안에 오래 남았다.
그리고 어제 두 번째 링거가 갱신되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자발적이었다. 미신적이라기보다는 이성적이었다. 최근에 겪은 두 번의 병치레가 떠올랐다. 아픈 동안 한 달이 훌쩍 지나있었고 그간 밥을 잘 못 먹었던 것이 결정적이었을 거다. 그 병치레와 함께 전시 준비를 진행하면서 무리가 됐겠지. 근데 왜 살은 안 빠지지? 입맛 없을 때 빵을 먹어서 그런가? 투덜거리면서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선생님께 사정 설명을 하고 링거 종류를 선택했다. 다행히 수액실에 아무도 없어서 남편과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은 신중하게 팔뚝의 혈관을 잡아주었고, 주사약이 들어갈 때 생기는 근육통을 완화하기 위해 작은 찜질팩도 건네주었다. 평화로운 한 시간 반. 남편과 속닥속닥 이야기하며 - 이야기의 내용은 제법 거창했으나 - 주사약이 똑똑 떨어지는 걸 바라보았다.
문득 지난 링거 때는 많이 외로웠구나,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남편이 아픈 동안 참 많이 외로웠다. 어떤 때는 두려울 만큼. 혼자라는 감각이 새삼스러울 만큼. 철저하게 혼자라는 느낌이었다. 하루 종일 병원의 그 많은 사람들과 함께인데도 그랬다. 자주 전화를 받고 다양한 일을 마주하면서도 그랬다. 다정한 사람들이 분명히 곁에 있어줬는데도 그랬다. 아니 그럴수록 외로웠다. 오랫동안 그 이상한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게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음을 아직 다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홀로 외롭다는 생각이 들곤 하니까. 그럴 때 깜짝 놀란다. 어떤 마음은 습관처럼 익숙하다. 달라진 상황과 관계가 곧장 마음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이 가까운 마음이 될 때까지는 또 시간이 필요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주삿바늘 자리에 붙여준 동그란 밴드를 떼어낸다. 멍은 들지 않았다. 다시 산책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