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by 이상희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은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더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들이었다.”


내가 굉장히 사소한 인간이라는 것을 처음 깨닫던 날이 있었다. 사소하다 못해 쪼잔뱅이처럼 느껴지는 자신을 한심한 듯 며칠째 바라보는 중이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울기도 웃기도 했고, 사소한 것들에 정이 들어 걸음을 머뭇거렸고, 사소한 마음에 지느라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커다란 대의명분도, 이데올로기도, 강직함도 없었다. 그보다는 태풍에 옆집 화분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순간에도 출근해야 하는 엄마의 뒷모습이나 낡아버린 간판이나 아주 오래된 창피한 순간의 기억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내가 그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는 데 아주 실망하고 있었다.


내가 그런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고 소리내 말할 수 있게 된 건 서른이 넘어서였다. 그 말을 자조 섞인 농담처럼 내뱉던 날, 나는 술을 마셨던가. 아, 나는 크게 되기는 글렀구나, 그런 터무니없는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크게 되고 싶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크게 되기는 글렀다는 사실에 서글펐다니. 아무튼 참 이상한 시절이었다. 누구의 주문인지도 모르면서 끊임없이 나를 향한 주문을 외우다가, 그 주문이 나와는 영 맞지 않는다는 걸 어렵게 인정하고도 여전히 출처 없는 주문을 그리워하던 시간. 지금의 나는 너무 뻔뻔해질까 봐 두려울 정도지. 어이구 하루하루 사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 줄 아느냐며, 사소한 것에 잔뜩 마음을 쓰고 실컷 사소해진다. 그렇게 사소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내가 너무나 큰 일을 해낸 것 같아서 스스로가 대견하다. 우습긴 한데, 마음은 편하다.


시대적 배경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내 짧은 상상력으로는 이 소설 안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등장하겠구나 싶었다. 시대를 이끄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세상을 짊어지는 ‘크게 된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소설이 다 끝나도록 ‘대체 크게 된 사람은 언제 나오나’ 남은 페이지를 가늠해 봤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나 좀 촌스러운 건가. 소설에는 그런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아니, 누구도 크게 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빠짐없이 읽은 지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그게 참 좋았다는 걸 느낀다. 그들이 그 모진 시절을 살아냈다는 것, 자신의 삶을 살아냈다는 것, 누구는 자신의 의지를 통해, 누구는 자신의 사랑을 통해, 누구는 자신의 재주를 통해 험난한 세월을 건넜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배운다. 그 시절을 통과할 수 있었던 건 역시 소수의 ‘크게 된 사람’ 덕분이 아니라, 그를 포함하는 모두의 삶 덕분이라는 걸 확인한다.


“나이를 조금 더 먹고 나니,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시대의 풍파 속에서 자신의 삶을,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지켜낸 사람들. 어떤 투철한 의식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삶이기에 기꺼이 살아낸 사람들. 그 시곗바늘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는 건지, 그 끝에 뭐가 있는 건지 끝내 모른 채로 그저 순간을 살아간 사람들. 그게 좋아서. 읽을 때보다도 훨씬 더 오래 여운을 머금을 수 있었다.


“지칠 때면 물어귀로 가 다른 여자들과 담소를 나누는 대신 바다에 머물며 그저 물 위를 둥둥 떠다녔다. 물속에서, 나는 과거의 ‘나’들의 무게가 깊은 해저로 가라앉는 걸 느꼈다. 나는 그 모든 고통과 후회를 겪었던 그 사람이 더는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제나, 이 모든 사소하고 사소한 ’나‘의 겹겹이 쌓인 무게를 내려놓고 둥둥 떠 있는 순간을 그린다. 그리워한다. 기다린다. 그때까지는 역시 사소하게 살아갈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침내 내뱉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