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미>

by 이상희

<러브 미>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대강의 내용을 알게 되고 도저히 볼 수 없을 것 같아 미루었다가 계속 미루는 것이 더 신경이 쓰이게 하는 지경이 되어 결단을 내렸다. 막상 본 드라마는 나의 예상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목과도 풍문으로 들은 약간의 줄거리와도 다른.


평범하다면 평범한 한 가족이 있다. 다정한 부부와 그의 딸과 아들. 어느 날 엄마는 불의의 사고로 다리 한쪽을 잃는다. 그러는 사이에 가족들은 뭔가 달라져버렸다. 아빠는 7년째 일과 간병을 동시에 감당하느라 지쳐있다.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나. 내가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깊이 환멸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신 때문에 엄마가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딸은 엄마 곁을 지키는 것이 곧 자신을 책망하는 일임을 견딜 수 없어 도망쳤다. 아니, 살기 위해 엄마와 조금 떨어져 있기를 선택했다. 아들은 자신을 무한히 믿고 응원해 주던 엄마가 부재하자 실패가 뻔한 사랑에 목을 맨다. 아들이 하는 일이라곤 서둘러 전화를 끊으려는 애인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가까스로 내뱉는 것. 애인이 그 말을 들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첫 회의 마지막쯤, 온 가족이 엄마 아빠의 서른다섯 번째 결혼기념일과 아버지의 조금 이른 퇴직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엄마는 아빠가 골라준, 오래된 원피스를 겨우 입었다. 누워만 있는 동안 몸이 불어 옷이 턱없이 작아졌는데도 부부는 낑낑거리며 그 옷을 입었다. 아빠는 무려 함박스테이크를 구웠다. 엄마와 멀리 있고 싶었던 딸도, 이뤄지기 힘든 사랑에 목을 매는 아들도 오늘만은, 오늘 하루만은 버텨보겠다며 식탁에 마주 앉았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이 드라마를 볼 수 있겠다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 안에 불편하고 불안한 공기가 아주 노골적으로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좋았다. 불편하고 불안한 것. 누군가가 지나치게 버티고, 누군가는 그 버티는 얼굴에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다가 우울해져 버리고, 누군가는 이 모든 상황을 제 탓이라 여기고, 누군가는 슬퍼하느라 화를 내는. 진짜 싫은데, 진짜인.


그날 엄마는 죽는다. 딸과 싸우고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고 그 덕분에 아들과 딸은 서로를 탓하며 언성을 높인 그날. 서로가 서로의 하루를 대차게 망가뜨린 그날, 엄마는 세상을 떠난다.


그렇다. 드라마는 엄마가 죽기까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엄마가 죽은 후의 이야기다. 엄마가 다리를 잃고 달라졌던 가족들은 엄마가 죽은 후에 또 달라진다. ‘엄마가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아내가 그렇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하면서도 그들은 삶을 산다. 살아있는 시간을 살아낸다. 그럼 어쩌겠는가.


그 이야기가 대단하다거나 심오하지 않아서 또 좋았다. 드라마는 누군가를 애도하는 데 얼마큼의 시간이 필요한지, 애도는 어떻게,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묻기도 하지만, 그런 질문과는 별개로 반드시 흘러가고 말, 살아지고 말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치 그 거창한 질문들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인터넷에서 본 여러 후기에서 ‘아내가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새로운 사랑을. 좀 보기 불편했다’라거나 ‘엄마 돌아가시고도 철이 안 드는 발암 아들’ ‘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딸’ 같은 자극적인 표현을 여러 번 마주쳤었다. 드라마보다 저 말들에 먼저 찔리고 상처받은 셈이다. 우리가 끝내는 소중한 누군가를 잃게 되리라는 진실과 그 진실을 마주하는 저마다의 방식이 다른 건 당연한 건데 나는 여전히 저런 말들이 아프다. 어쩌면 겁이 나서 더 크게 소리치는 걸 텐데도 괴로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죽음과 삶은 너무나 달라서. 살아 있음이 살아 있음 그 자체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듯, 죽음 역시 죽음 그 자체로밖에는 말할 수 없으니. 살아 있는 동안은 죽음을 살 수 없고, 죽은 후에는 살아 있음을 살 수 없는 우리는. 그저 이 드라마 속 사람들처럼 조금만 더 다정해지려고 애써보는 수밖에. 우리는 모두 외롭고, 그래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별을 너무 겁내지 말자고. 이별까지의 고통도 미리 두려워하지는 말자고. 외로움이 서로를 함께이게 하도록. 서로를 해치는 핑계가 되지 않도록.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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