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을 이제야 보았고,
윌리엄 포크너를 꺼내 읽는다.
그러다 청춘에 대해 생각한다.
흔들리는 그 시간에 틈입한 어떤 이에 대해서도.
그는 어디에도 발 딛지 않고 모든 것들 위를 유유히 흐르려 하지.
하지만 청춘은 관조하는 게 아니라 겁내는 것이고,
흘려버리는 게 아니라 놓치는 것인고,
그러다 결국 어리둥절해하는 것.
그 얼굴마저도 구경하려는,
자기 발밑에 비단을 깔아두려는 그 얼굴,
누군가의 생을 구경하다 하품하는 그 얼굴.
청춘의 얼굴은 구겨지고 붉어지고 우는 얼굴이지.
두려워하고 난처해하는 얼굴이지.
구경하지 마, 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지.
해미였고 종수였을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거나
그곳을 떠나 결국 갈 곳을 잃어버린.
사라져버린 이,
사라져버린 이의 공간에 기거하는 이.
스스로 모든 이유가 되기로 하거나
모든 것을 이유로 삼기로 하거나.
발밑에 비단을 깔지 못해도 걸어야만 하는
모두를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