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로토 May 06. 2024

이 틈이 좋아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물건을 선택하면서도 여러번 고민하고 결정하는데 하물며 사람과의 관계를 결정하는데는 더 고민을 하게 된다. 내가 좋아해서 선택했거늘 15년 전 나는 그와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렇게 고민에 고민을 더한다는 것은 그가 보통의 남들과는 다른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와의 사이에는 인연의 끈을 쉽게 결정할 수 없게끔 아이들이라는 긴동아줄이 두개나 연결되어 있었다. 


대학시절부터 시작하여 6년이라는 연애기간을 보내면서 그를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읽은 책들에는 현모양처가 여성들의 삶의 미덕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어서였을까. 비판의식 한톨도 없이 남편에게 순종하고 아이들에게는 어진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의식이 스며들어 있었다. 의심의 여지도 없이 셋방살이 하면서 눈물의 빵이 아닌 밥을 먹으면서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20대에 첫아이를 낳는 날 그는 잠시 서울에 다녀온다고 하였다. 젊은 나이에 무모하게 시작한 사업이 넘어졌으니 머리도 식힐겸 새로운 사업구상도 할겸 얼마든지 다녀오라는 마음이었다. 제왕절개를 통해 아들을 낳는 날 우리는 짧은 동거기간을 청산하고 길고 긴 주말부부와 월말부부를 넘나드는 사이가 되었다. 


어쩌다  한 번 들러 만나는 사이에 둘째도 생기고 그를 닮은 아이가 태어난 것에 흡족했다. 시어머니의 힘든 살림에 더부살이 하다가 시누이의 셋방에 얹혀살아도 육체적으로 힘들지언정 정신적으로는 믿음의 동지인 그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 셋방살이를 전전하면서도 언제나 아빠의 자리와 남편의 자리를 오롯이 모셔두었다. 언제나 그가 돌아와 그의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마음의 자리도 함께.


나이도 정확한 40에 그가 이미 자신만의 자리에서 우리들의 자리로 이동할 생각이 없음을 알게되었다. 나의 도덕적인 잣대와 그의 의식과는 큰 괴리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믿음이 컸던만큼 배신감도 컸고 그 아픔의 값은 오로지 더 사랑한 자의 몫이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속에서 40대를 마무리해 갔다. 미움과 사랑사이에서 헤매며 여전히 관계의 끈을 이어갔다. 마음속으로만 무지막지한 욕을 퍼부으며 마지못해 살다가도 또 그도 살기위해 어쩔 수 없었을거라는 착한여자 코스프레의 반복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것도 이유를 만들어 이해하려 한 것도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음을.


10여년간 회색빛 마음의 터널을 발견한 것도 그곳으로 들어간것도 빠져나온것도 오로지 혼자였다. 그곳에 같이 들어간사람은 없었다. 어떠한 모습이든 나의 결정이었고 나의 몫이었다. 그에게 같이 들어가자고 하지도 않았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한발짝 멀리 있었던 그는 나의 요동치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무나 밉고 야속했다. 나에게 상처를 안겨준 그를 증오했다.


아픔을 준 자는 누구인가. 내가 그를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판단한 것 뿐이다. 아픔을 준 자는 없었다. 한발짝 내 안으로 스며들지 않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때는 야속했던 틈이 지금은 편안하다. 그를 내 생의 가운데 두고 내가 인생의 한바퀴를 돌았을 뿐이다.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전을 읽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