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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토 May 10. 2024

늙음과 엄마의 다슬기

'늙음'. 그 존재의 무너짐을 '삶의 과제'로 의연히 받아들이고 싶다. 내가 늙은 부모를 부양하든 내가 늙어 자식에게 의탁하든, 비참하고 비루한 생이 지겨워 눈물바람 할 테고 태어난 걸 후회하다가도 또 어떤 날은 살 만해서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겠지. - 올드걸의 시집(은유)



한정식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음식 기다리는 중에 다슬기가 나왔다. 다슬기를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는 전형적인 옛날분이셨다. 자식 많이 낳고 아들 많이 낳으면 어깨에 힘들어가는 시대의 분이다. 시대를 거스르지 않고 그 시대가 원하는 대로 살다 가셨다.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치기 위해 농사일에 엎어져 지냈고 이도 여의치 않아 다슬기를 잡으로 온 동네의 시냇가는 모두 눈으로 훑고 다니셨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 어린 시절에는 엄마가 다슬기를 잡으러 나감으로써 집안에 먹을 것이 마련되어 있지 않는 것이 못마땅했다. 어린 나도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은데 내 손으로 밥 지어먹는 것이 못내 불만이었다. 오랜 노동으로 엄마의 한쪽눈이 잘 안 보인다고 했을 때도 불편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엄마의 고통보다 앞섰다. 밭의 작물을 밤새 작업하여 새벽에 일어나 버스 타고 장사하러 나갈 때도 저녁에 잠 못 자고 새벽에 또 일어나 일을 거들어야 하는 나의 가난이 더 싫었다. 아버지의 '내가 빨리 죽어야지'하는 이야기도 듣기 싫었다. 노인들의 죽고 싶다는 말은 죽고 싶지 않다는 반어법으로 들렸다. 


그랬던 나는 아이들 키우면서, 남편의 사업 실패로 독박육아를 담당했을 때는 삶이 너무 힘들어 생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다.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볼 때도 누군가 생을 되돌려준다고 할까 봐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는 덮어둔다. 내가 힘든 시절에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때는 반어법이 아니었다. 부모가 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반어법으로 들리고 이야기는 진실되다 생각했을까.


자식 공부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엄마. 자식을 위해 엄마처럼 실명이 되도록까지 뭔가를 노력해 본 적이 있는가. '내가 너 대학공부시키려고 안 가본 동네가 없을 정도고 차가운 물에서도 다슬기를 잡았다'라고 말하시며 효도를 은근 종용했을 때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레퍼토리가 듣기 싫어 듣는 둥 마는 둥 언제나 시큰둥이 었다.


반면교사로 나는 자식에게 내 생의 무게를 얹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야 엄마의 그 이야기가 부모자식 간에 부양에 대한 의무를 지우려는 말이 아니라 관계형성을 위한 하나의 도구였음을 알게 된다. 좀 더 자주 자식을 만나고 싶은 엄마의 바람이었을 텐데 무던히도 무감각한 딸이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내 아이들과도 오손도손 이야기하고 따뜻한 밥 해 먹이고 학교 갈 때 준비물 잘 챙겨주는 엄마로 살고 싶었다. 독박육아로 삶이 녹록지 않으니 아이들보다 내 안위가 우선 되었고 아이들이 사랑을 갈구할 때도 어느 때는 귀찮기도 했다. 다른 시대에 같은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언제나 아쉬웠다. 생각처럼 부모노릇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까운 친지의 부고장이 엄마를 소환한다. 엄마는 91세에 돌아가셨다. 살면 살수록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해져 조금만 더 살다 가고 싶다고 하셨지만 그 조금만이 어느 때까지 인지는 몰랐다. 매년 조금만 더라고 하셨으니까. 돌아가시면서도 더 살지 못함을 아쉬워하셨으니까. 자식을 위해 인내하고 일부 포기도 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자식들이 자신들의 삶을 위해 떠나간 것이 못내 서운했을 엄마. 내 삶이 버거워 엄마의 외로움을 돌아보지 않았다.


나도 독박육아하고 남편 사업이 기울어 경제적으로 힘들 때는 죽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죽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이들 다 독립하고 어떠한 모습이든 앞가림하기 시작하니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홀가분하다. 그럴수록 더 살고 싶어 진다. 내가 그동안에 못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새롭게 발견한 것들 모두 해보고 가고 싶다.


결국은 내 부모가 죽고 싶다고 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더 살고 싶다고 말한 것도 사실인 것처럼 내 인생도 죽고 싶었던 때도 있었고 내가 인생을 충분히 즐기다 가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확고하지만 어쩌면 의지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힘들면 푸념도 하고 조상을 탓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누구나 늙고 아프고 죽는다는 명제를 생각한다. 앞으로도 힘들면 여러 생각을 할 테고 삶이 비루해지면 울기도 할 테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면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도 하겠지. 살아가면서 삶의 고비가 찾아오겠지만 내가 선택한 자유를 향해 성큼성큼 발을 내디뎌본다. 살아온 것처럼 봉우리를 만나고 골짜기를 지나겠지만 그 과정에서 탄탄한 근육과 힘을 길렀듯이 문제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보련다. 내가 만난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관계형성도 새롭게 하면서 궁극적인 자유를 향해 나아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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