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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토 May 14. 2024

인간은 처음 인연에 매몰된 만큼 성장한다

공장의 기계처럼 날마다 똑같은 일상 속에서 똑같은 시간에 일어난다. 병원으로 출근하여 신생아를 돌보는 직장인의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소명의식으로 시작했고 나와 아이들의 입을 채우기 위해 지속했다. 나의 허기를 메워주는 이 일이 감사할 때도 있었지만 지겨울 때도 있었다.


이십 대의  첫 열정이 불을 지폈고 삼십 대의 숙련미가 지평을 넓혀갔다. 사십 대의 원숙미가 꽃을 피웠다면 오십 대는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가. 세상이라는 대지 속에서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로 여전히 밥벌이만 하고 있다는 의식이 휘젓는다. 나의 쓸모가 2년 전부터 궁금해졌고 더 나은 쓸모를 찾으려 여기저기 기웃거려 본다. 


첫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밤근무를 하면서 함께 일하기도 했다. 6개월 된 둘째 아이를 놀이방에 아침 일찍 맡기며 직장에서는 일에 매몰되어 아이들 생각이 끼어들 여유도 없었다. 아이가 수두 걸린 것 같다고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와도 '그대로 두라'라고 말하며 일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20대 그때는 그랬다. 아이들입에 밥 넣어주기 위해 노동을 함으로써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도 없었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주어진일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삶은 지겨움이 따른다. 삼십 대가 되니 슬슬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명제가 내 옆으로 왔다. 서서히 아이들보다 나 자신 살아가는 모습이 풍선처럼 부풀어 속을 들여다보는 날이 많아졌다. 나를 어떻게 계발시키고 가공하여 나아갈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 안에는 교육하는 모습이 있었고 산모와 직원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넣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국제모유수유전문가 자격을 통해 직장에서도 쓸모 있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성취감 또한 나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진리는 여전한가. 대학 공부로 10여 년을 직장 생활하면서 한계를 맞았듯이 국제모유수유전문가로 산지 10여 년이 되니 앎에 대한 한계가 느껴졌다. 정체된 삶을 깨울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여전히 나는 생산자이면서 교육자라는 정체감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 일에서 벗어나보려고도 해 봤다.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배우는 것보다 내가 잘하는 곳이 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장 일에서의 능숙함을 발판으로 교육대상자를 조금 넓혀보았다. 병원과 산모라는 한정된 곳에서 학교라는 곳으로 공간이동을 시작했다. 간호대학에서 새로운 지식을 배워나가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나의 현장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서 나의 쓸모를 찾았다. 


지금은 어느 위치에 와 있는가. 산모와 직원에서 학생에 이르기까지 지식을 전파하는 일을 하는 지금. 이대로 머물 것인가. 변화의 시점인가. 지식뿐만 아니라 인생의 지혜를 스스로 쌓아가는 삶을 살았는가. 이 양식을 전파할 능력과 내용이 충분한가. 인간은 처음 인연에 매몰된 만큼 성장한다. 나의 인연은 간호학이었고 교육학이었다. 무대는 병원이었고 학교였다. 앞으로의 무대는 어디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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