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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토 May 20. 2024

나는 귓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그리운 게 

없어서

노루귀꽃은 앞니가

시려


바라는 게 

없어서

나는 귓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내소사 뒷산에

핑계도 없이

와서


이마에 손을 얹는

먼 물소리


안도현의 시 <우수>


선생님을 만난 건 내게 행운이었다. 존재감 없던 나의 이마에 손을 얹어 주신 분.

엊그제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선생님께 전화드렸다. 매번 전화드려도 선생님은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응, 송박사. 전화까지 주고 고맙네" 언제나 나를 송박사라고 일컬어주신다. 인연을 맺은 지 어언 반백년 가까이 되어간다.


내가 살던 동네 초입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30대 초반의 선생님이 학교 옆으로 이사를 오셔 5학년으로 올라가는 날 처음 만났다. 방과 후에 선생님 댁에 놀러 가면 사모님이 맛있는 부침개를 해 주셨다. 그때는 눈치가 없었던 것인지 선생님이 편해서였는지 두 셋이서 놀러 가 단칸방을 차지하고 놀았었다. 바라는 게없어서 그저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에 대한 추억이 사람마다 다르다. 초등학교 남자 동문에게 선생님과의 만남을 이야기했더니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여학생들 사이에서만 인기가 있었나 싶은 느낌이었다. 공부도 곧잘 가르치셨다. 아니 공부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춰 주셨다. 그 시절 초등학교는 선생님의 재량이 학생들의 학습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학원이나 방과 후 학습 같은 보충수업이 전무했으니까. 은사님과 공부를 시작하면서 학습능력이 향상되었고 졸업할 때는 사전과 함께 우수상을 받았다. 


교무실 청소를 담당하게 했다. 나의 존재감을 알려주셨다. 어떤 어른이 나를 예뻐해 주시는지 알 수 있었다. 단체 기압을 받아도 재밌었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음이 넘쳤던 시절이었다. 들로 산으로 천방지축 돌아다녔다. 어느 날은 동네 친구와 모의를 하여 학교에 가지 말자고 하였다. 집 앞 밀밭에 숨어있다가 어른들 일하러 나가시고 어른들을 안 만나겠다 싶은 시간에 고개를 내밀어 살핀 후 둘이 쏜살같이 저수지밑으로 놀이장소를 옮겼다. 단순하게 아무도 모를 거라는 생각으로. 하루종일 물장구치고 놀다 집에 들어오니 아버지의 불호령을 맞았다. '선생님이 그새 연락하셨네'라는 단순한 생각과 함께.


그리운 게 있어서 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전근 가신 선생님을 찾아 떠났다. 이번에는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공부해야 할 학생이 시간도 모자랄 텐데 이 멀리까지 왔느냐'며 야단을 치셨다. 단순하게 선생님이 보고 싶어 갔는데 야단을 맞으니 서운했다.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해수욕장이 펼쳐진 마을에 꽃잔디와 어우러진 선생님댁이 있었다. 언제나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꽃밭이었다.


스승의 날 즈음에 많이 나오는 과일은 참외다. 참외 한 박스 사갔다. 선생님은 소화가 잘 안 되어 힘들어하고 계셨다. 내게 꿀 한 박스를 내어주셨다. 어느 해에는 농사를 지으셨다며 쌀 한 포대를 주셨다. 젊어서는 초등학생들을 가르치시고 퇴직 후에는 지킴이를 하시면서 평생을 어린아이들을 위해 봉사하신다. 위엄이나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셨고 어린아이들 눈높이 가까이 계셔서 그리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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