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로토 May 17. 2024

정말로 가난한 사람은


정말로 가난한 사람은

돈이면 다냐고 묻지 않는다

정말로 가난했던 사람은

절대로 가난을 자랑하지 않는다

인간을 버린 적이 있느냐?

진짜로 가난하면 돈이 다다

진짜다


김용택의 시 <모독>


교회 다니는 사람은 점 보러 다니는 것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점집을 가지 않았다. 가보고도 싶었지만 신의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참았다. 내 일은 잘 풀렸지만 짝꿍의 일은 풀리지 않았다. 결혼생활은 짝꿍의 영향을 꾸준히 받았다. 나는 꾸준한 벌이로 돈이 마르지 않았지만 아이들 가르치고 생활하고 나면 끝인데 남편의 빚바라지까지 하려니 버거웠다. 중풍환자처럼 나의 반편이 메마르니 자연 나의 삶도 자유롭지 않았다. 삶이 절뚝거리니 나의 반쪽을 떼내고 싶었다.


진짜로 돈이 없을 때는 몇백 원까지 다 그러모아 몇천 원을 만들 때도 있었다. 이통장, 저 통장의 몇백 원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통장의 잔고를 0원으로 만들기를 반복할 때 가난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사이 가난은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레 몸에 베이고 표현되었다. 스스로 주눅 들어 가난을 입에 절대 올리지 않는다. 가난을 당당히 말하는 사람은 진짜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 부근에 미용실이 생겼다. 나이 드신 미용사가 철학관도 겸하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 손님들의 생을 영으로 내다보고 이야기도 곧잘 해 준단다. 힘들어도 너무 힘든 날, 머리 한다는 핑계로 미용실을 들어갔다. 주고받는 대화로 너와 나의 이야기를 섞으면서 자연스럽게 생시연월을 묻게 되고 나도 자연스레 내 것과 남편의 것을 내어준다.


몇 년 사이 두어 번 복채를 내고 앞으로의 삶이 궁금하다 하였다. 이대로 계속 이모양으로 살게 될 건지, 어떤 이벤트가 있어서 남편이 '당신 몰래 그동안 모아둔 재산이야'하며 짜잔 나타날 수도 있는 건지 궁금했다. 아니면 나이가 먹어 갈수록 돈벌이가 대박을 칠지도 몹시 궁금했다.


두어 번 복채가 놓이는 동안 당신의 남편은 언제나 지금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만 되풀이되었다. 그동안의 행적대로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이야기다. 버리느냐 마느냐 많이 여러 번 생각했다. 좀 더 살아가면서 결정했다. 그 모습 그대로일지라도 함께 걸아기기로.


종교에 반해 앞날을 점친다는 것은 마음 한편을 불편하게 했다. '여긴  철학관이야 점집은 아니야'하면서 스스로 위안 삼았다. 주변에서 '한 번도 점 본 적 없지요?'라고 단정적으로 물어오면 '으응? 그렇지. 점집은 한 번도 안 갔지'라고 뜨뜻 미지근하게 대답했다.


지나간 시절 정말로 가난해서 돈이면 다냐고 물은 적 없다. 어떻게 하면 나의 반쪽이 돈을 축내지 않고 보태는 시기가 올까요 물었다. 정말로 가난해서 절대로 가난을 자랑하지 못했다. 숨기려 했지만 숨겨지지 않는 것이 가난이었다. 지금 진짜로 가난하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인간을 버린 적은 없으니까. 


그 사람이 동전을 들고 가다 넘어지면 나는 달려가서 일으켜 세워주고 동전을 주워주고 옷에 묻은 흙을 털어준다. 

"다친 데 없어"

"응"

김용택 시인의 에세이처럼 살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가 내게로 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