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배운 대로 살지 못했다
늦어도 한참 늦지만,
지내놓고 나서야
그것은 이랬어야 했음을 알았다.
나는 모르는 것이 많다
다음 발길이 닿을
그곳을 어찌 알겠는가.
그래도 한걸음 딛고
한걸음 나아가 낯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신호를 기다리며
이렇게 건널목에
서 있다
김용택의 시 <건널목>
4월 즈음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의 혈당이 식후에 널뛰기한다는 것을. 이것을 혈당 스파이크라고 명명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15년 이상 운동을 꾸준히 해 오고 식사 이외에 주전부리도 별로 안 하였다. 몸에 좋은 것도 많이 찾아 먹지는 않았지만 안 좋다고 생각하는 라면, 과자, 액상과당, 통닭 등 인스턴트식품도 별로 먹지 않았는데 충격이었다.
혈당스파이크가 있다는 걸 이야기하면 다들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운동도 그렇게 하는데요?" "건강관리를 그렇게 철저히 하는데요?". 의료인이면서 비만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 더욱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보인다.
공부를 시작했다.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당뇨인들의 식생활에 대해, 왜 혈당스파이크가 심한지 조사했다. 식사 후 꾸준히 혈당체크를 실시하였다. 차이점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특히 점심 식사 후 혈당이 200을 넘어갔는데 과식을 하는 것이 문제였다. 아침 식사를 안 한 지 40여 년. 키도 작지만 비례해서도 살이 언제나 잘 안 찌는 체질이라 한 번 먹을 때 과식을 하는 스타일이다. 직장에서 점심 식사할 때 식사량이 남들의 1.5배였다고 생각한다.
밥양도 1.5배는 먹어야 만족스러웠다. 목 밑에까지 포만감이 찬 상태로 배를 두드리며 업무를 시작하면 식곤증이 몰려온다. 그러면 의자에 앉아 10여분 졸고 나면 더 만족스러웠다. 이런 현상은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당뇨에 대해 공부하면서 보니 식곤증은 혈당이 많이 올랐을 때 따라오는 현상이라고 한다. 남들도 모두 있었던 현상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혈당체크를 지속하면서 식생활 개선을 하였다. 아침식사를 시작하였다. 직장에서 점심 식사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저녁 식사는 시간을 조정하여 운동 가기 전 6시경에 식사를 마쳤다.
아침 식사는 스트링치즈, 구운 달걀, 양배추 채 썬 것, CCA주스, 당이 없는 요플레. 탄수화물을 뺀 야채와 단백질 위주의 식사였다. 저녁에는 언제나 운동 끝난 후 9시경에 먹었던 늦은 식사를 운동 전으로 앞당겼다. 운동 후에는 물 이외에 아무것도 안 먹었다. 살 빼는 목적은 아니지만 철저히 다이어트 식단과 비슷해져 갔다.
24시간 혈당측정기를 구매하여 몸에 부착하였다. 마침 가정의 달 5월이 되면서 연속혈당측정기가 1+1 행사를 하였다. 밥도 완전현미밥을 먹고 야채식을 철저히 하며 연속혈당측정기를 달고 생활하니 남편이 당뇨에 어지간히 충격을 받았나 보다고 한다. 그랬다. 건강에 대해 이런 적신호가 온다는 것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건강은 누구나 자신할 수 없다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속혈당측정기를 달고 생활해 보니 불편하지 않았고 전혀 의식되지 않아 좋았다. 하루에 한 번 보정하기 위해 혈당 체크를 하는 것은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측정결과를 보니 직장에서의 점심 식사 후가 문제였다. 집에서 하는 아침이나 저녁식사는 야채식 먼저 하고 단백질을 보충하는 식으로 식사방법도 바꾸고 현미잡곡밥에 야채식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전혀 혈당이 정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제점이 발생했다. 원하지 않는 다이어트식을 하다 보니 어지럽기 시작했다. 체중도 약간 빠졌지만 얼굴살이 많이 빠졌다. 남들이 안 돼 보인다고 자꾸 말한다. 이렇게 계속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 탄수화물을 줄여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밥을 할 때 현미, 콩, 잡곡류에 백미를 절반 섞기 시작했다. 식사량도 약간 늘렸다. 밥 먹는 방법도 꼭 야채식을 먼저 하는 것을 고집하지 않고 상추에 밥 싸 먹는다든지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집에서 식사 후 한 시간 이내에 달리거나 빠르게 걷거나 운동을 시작했다. 포만감 있게 식사를 하고 나서 운동을 하면 바로 혈당 곡선이 꺾였다. 가장 큰 걸림돌인 직장에서 점심 식사 후의 혈당 스파이크를 없애는 방법도 찾았다. 굳이 달리지 않아도 허벅지나 종아리 근육을 많이 쓰면 혈당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신생아를 안고 소파에 앉아서 분유를 먹일 때는 복부호흡과 함께 엉덩이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병행했다. 컴퓨터 업무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요가로 다져진 우짜이호흡을 하면서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을 단련하였다. 걸어야 할 때는 발뒤꿈치를 들고 걸었다. 유레카다. 혈당관리가 되었다. 식사량을 줄이지 않아도, 야채식을 고집하지 않아도 혈당 스파이크를 없애는 방법을 찾았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혈당 스파이크 관리 한 달 만에 거둔 성과다.
지금은 아침 식사에 탄수화물을 먹는다. 빵이나 밀가루 종류를 좋아하지 않으니 밥을 조금 먹는다. 점심 식사는 예전처럼 과식을 하지는 않지만 부담 없이 먹는다. 저녁은 운동 전에 식사하고 운동 후에 두유에 단백질 파우더를 섞어 먹는다든지 CCA주스를 마신다든지 해서 10시간 이상의 공복을 만들지 않는다. 여기에 식후 1시간 이내에 15분 정도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 부위의 운동이 가미되었을 뿐이다.
나는 모르는 것이 많다. 살다 보니 당뇨 전단계인 혈당 스파이크를 경험하게 되었다. 내 문제를 공부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낯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신호를 기다리며 이렇게 건널목에 서 있다. 건널목도 만나며 함께 걸어가는 이 길들이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