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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토 May 22. 2024

한번 그래 보았다

아침이다.

눈을 떴다.

귀뚜라미가 운다.

팔을 베고 모로 누워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그러다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떠 보았다.

한번 그래 보았다.


김용택의 시 <한번>



한번 달리기를 해 보았다. 생전에 해 보지 않았던 달리기를 오십이 넘은 나이에 해 보았다. 거부감은 없었다. 팔십되신 할머니가 몸짱 대회에 나온 것도 보았고 구십 할머니가 30년 동안 헬스장을 다니는 것도 보았기 때문이다. 나도 저분들처럼 할머니가 되어서도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요가를 시작할 때 들었던 생각처럼. 나이 들어 다리 힘이 빠져 어기적어기적 다리 보폭도 짧게 걷지 않아야지 했던 것처럼.


눈을 뜬 어느 날 내가 당뇨 전단계의 신호를 보였고 운동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유산소 운동을 전혀 해보지 않았기에 호기심도 생겼다. '나도 달려볼까'하는 마음에 그냥 한번 달려보았다. 숨이 턱밑까지 치 올랐다. 무작정 달리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였다.


함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리더의 닉네임 옆에 붙은 문구 하나가 생각났다. '주 3회 달리기'. 처음에는 무심코 보았던 것이 자주 눈에 띄니 생각을 하게 되고 뛰었다는 말을 들으니 나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신뢰가 가는 사람이 하는 것에 나의 믿음이 더해진 결과일까.  방법을 찾다가 글쓰기 모임의 한 회원이 달리기 크루를 결성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작에 리더가 운영하는 커뮤니티에 공지가 올라온 것을 보았지만 그때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 지금은 들리고 보였다. 


달리기 온라인 모임에 가입하여 어플을 깔고 안내에 따라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걷고 뛰기를 반복하는 인터벌 트레이닝이었다. 5분 걷기를 통해 웜업을 시작으로 1분 뛰고 2분 걷기를 5번 반복 후 5분 마무리 걷기로 쿨다운까지 마무리했다. 첫날 1분 달리기 쉽지 않았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느낌은 밥을 목밑까지 억지로 밀어 넣은 느낌이었다.


격일로 걷기와 달리기를 하였다. 주 3회 달리기 프로그램에 맞춰 달리는 시간을 점차 늘려나갔다. 온라인 동호회 채팅방에서 사진 인증을 하며 달렸다. 어느 날은 제주도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결성하여 용두암에서 도두봉 인근까지 5킬로미터 달리기도 하였다. 평소 페이스는 7분대였는데 동호회에서 함께 달리니 페이스가 6분대로 나왔다. 욕심부리지 않았지만 앞서 나가는 사람들의 등을 보고 달리다 보니 자극이 되어 힘들이지 않고 목표에 도달하였다. 달리기 크루 리더의 코치를 받으며 달리니 훨씬 능력향상이 되었다.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인지 몸소 경험하였다. 전문가에게 일대일 코치를 받을 수 있다는 행운도 거머쥐었다. 


달리기를 하는 중에 어느 날은 다리가 한없이 무겁기도 하다. 전날보다 1분 늘리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도 경험한다. 새로운 곳을 개척하고 시간을 늘려간다는 것에 큰 저항을 느낀다. 하지만 속도를 늦출지언정 결코 멈추지 않았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또 달리기의 시간이 늘면 늘수록 힘들거라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5분여를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호흡과 심박동이 평온해지는 느낌이 온다. 산에 오를 때는 숨이 가쁘지만 정상에 도달하면 안정화된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이것이 러너스하이의 일부분인가' 하는 느낌이 살짝 들었다.


지금은 달리기 8주 차에 접어들었다. 1분 달리기에서 이제는 연속 15분 달리기까지 왔다. 달리며 바람을 가를 때의 느낌을 알게 되고 햇빛과 나무와 꽃밭이 바뀌어가는 모습도 보게 되었다. 자연을 만끽하며 땀이 등허리를 타고 흐를 때의 느낌도 선연하다. 


시계꽃이 피고 지는 것을 바라보며 뛴다. 행복과 행운을 잡으려고 시계꽃밭에 엎드린 사람들의 모습도 정겹다. 꽃망울을 머금었다가 터트리고 꽃잎을 살짝이 떨어뜨려 주는 나무도 아름답다. 언제나 그 시간에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도 반갑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나의 모습도 변화한다. 한번 그래 보았던 것이 삶의 중심에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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