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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토 May 23. 2024

같이 산딸기를 먹었다

닭들이 장태로 들어가면 나는 닭을 세고 장태 문을 닫았다.

우리들은 마당을 쓸어놓고 아버지가 들어오실 때까지 놀았다.

아버지는 지게 위에서 칡잎에 싼 산딸기를 뚤방에 내려놓으며

땀에 젖은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아버지를 본 소가 여물을 먹다가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강에서는 물고기들이 개밥바라기별을 향해 별빛 속으로 뛰어들고

우리는 마루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어떤 날은 거지가 우리 밥상에 앉아 같이 밥을 먹었다.


김용택의 시 <산문>



오랜만에 참새들의 합창소리에 잠을 깼다. 김유신 장군의 사당이 있는 장열사의 은행나무속에 꼭꼭 숨어서 참새떼들이 합창을 하는 새벽. 도시에서야 새벽 5시라고 부르지만 시골에서는 아침 해가 더 빨리 떠오른다. 느낌일까? 아침 햇살이 더 따갑게 들이친다. 논에 나갔다 돌아오신 아버지는 얼른 일어나라고 재촉하셨는데 지금은 안 계신다.


김용택 시인의 시 '산문'을 읽다 보니 어린 시절 소를 둘러싼 추억이 생각난다. 봄에 할아버지가 망태 메고 소깔을 베어다 주면 소들은 왕방울 눈을 껌벅거리며 좋아했었다. 아침 이슬을 한껏 먹은 보드라운 풀을 먹을 때 소들도 행복하다고 "음머~"한마디 한다.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주인을 알아본다. 맑디 맑은 눈으로 지긋이 주인을 쳐다볼 때면 이야기가 통할 것 같은, 다 알아들을 것 같은 표정이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왕방울 눈을 가진 소 한 마리씩을 몰고 친구들과 뒷산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들과 저수지를 지난다. 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부터 산딸기를 따 먹으며 올라간다. 어느 날은 산딸기 천연주스를 만들어먹기도 했다. 환타병에 산딸기를 넣고 껍질 벗긴 긴 나뭇가지로 찧으면 산딸기 주스가 된다. 나뭇가지 끝에 묻은 산딸기 즙을 빨어먹으면 그렇게 달고 맛있었다. 달디 단 추억의 맛이 혀끝에서 다시 살아난다.


산길을 올라가다 보면 뱀이 재빠르게 지나간다. 저도 놀래고 나도 놀래고. 뱀이 늦었던지 내가 한 발자국만 빨랐다면 분명 발밑에서 해우했을 상황. 서로가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도시락도 없이 올라간 산속은 천연 과일들을 숨겨놓은 뷔페식당이었다. 우리들은 알았다. 어디를 가면 어떤 과일이 흐드러지게 있는지를. 자갈이 수북한 곳으로 가면 넝쿨진 으름나무가 있었다. 작은 바나나 같은 으름나무의 열매가 다 익으면 까만 씨가 박힌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유혹을 한다. 한입에 쏙 넣고 하얀 단물만 빨아먹고 검은 씨는 아무 데나 퉤 뱉어내고 또 한입. 여유로운 식사를 한다.


빨갛게 익은 보리수의 보리똥 열매. 알알이 붙어서 보드라운 살을 자랑하고 있다. 작고 보드라운 먹음직한 보리똥 열매를 따서 한 움큼 입속에 밀어 넣는다. 먹는 것도 지겨우면 초피나무의 제피를 딴다. 겨울이면 엄마가 김치에 넣어 김장 담그는 것을 알고 있다. 


칡은 어린 시절 내가 캐기에는 너무 질긴 뿌리였다. 오빠들이 캐주면 흙 묻은 겉껍질을 벗겨내고 질긴 칡의 하얀 속살을 앞니로 물어뜯어 질겅질겅 씹으면 향긋한 단맛이 온 입안에 가득하다. 너무 오래 씹으면 나무 냄새가 나니 적당히 단맛을 즐기고 나면 뱉어버린다. 흔하디 흔한 자연식품들의 향연이다.


산속 우리들의 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소는 저들끼리 풀 뜯으라고 자연 속에 풀어놓고 놀기에 더 여념이 없었다.  자연식품으로 배도 채우고 산속 맑은 샘의 물로 갈증도 해결한다. 그러다 보면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맘껏 놀고 맘껏 배를 채웠으니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 시계는 없었어도 해의 길이로 초등학생이지만 모두들 퇴장 시간을 알고 있었다.


각자의 소를 찾을 시간. 다들 자신들의 소를 찾아 고삐를 쥐고 모인다. 내 소가 보이지 않는다. 한 친구가 "네 소 아까 저쪽 산 등성이로 넘어가더라" 나는 친구가 가리키는 쪽으로 간다. 날은 어둑해지는데 마음이 급해진다. 산 깊이 들어가면 살짝 두려워진다.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면 무섭기도 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리니 기운 내서 내 소를 찾는다. 등성이 두 개 넘어간 내 소를 드디어  찾았다.  날이 어두워져도 소와 함께 있으면 두려움도 사라진다.


그때 산딸기를 함께 먹었던 친구들이 지금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일을 하며 산다. 시를 쓰는 친구, 소방관이 된 친구, 철도청에서 일하는 친구, 사업가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친구, 보험 하는 친구, 장학사가 된 친구, 침구사가 된 친구, 학교 행정직에서 일하는 친구, 시골에 터 잡고 사는 친구. 그 친구들과 함께 어린 시절 산딸기뿐만 아니라 으름, 보리똥, 칡도 함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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