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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토 May 27. 2024

시인을 보내며 시인을 만났다

당신을 만난 지금 이 순간이

당신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인 줄 알지 못하고


당신을 포옹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당신의 심장과 나의 심장이 포개져 힘차게

봄비처럼 부드럽게 뛰는

마지막 순간인 줄 알지 못하고


당신이 건네는 맑은 미소와

내 손을 잡고 건네는 따스한 감사와 평안이

백매화로 피어나는 지금 이 순간이

당신과 나의 마지막 순간인 줄 알지 못하고


해가 저물어도 내일 다시 해가 뜨듯이

내일 다시 당신을 만나리라 굳게 믿었던

내일은 사라지고


당신의 장례식장을 찾아가 꽃을 바친다

그때가 당신을 만날 수 있었던

밥을 먹고 차를 나누며 사랑할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이었다고


정호승의 시 <마지막 순간> 전문




신경림 시인이 작고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름만 알았지 시인의 시집 한 권 산적이 없다. 큰 별이 졌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끼고 늦게나마 신경림 시인의 시집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서점을 통해 조회를 해 보던 중 '시인을 찾아서'란 책 1권과 2권이 보였다. 시인이 돌아가신 날 신청한 책 두 권은 대한민국 문인장을 치르는 중에 받았다.


책을 받은 날, 개봉하기 전에 책의 무게에 살짝 긴장되었다. 시집인 줄 알고 시켰는데 두꺼웠다. 유명한 시인들을 소개하고 시 읽는 법을 알려주는 글이었다. 신경림 시인을 알고자 고인의 시집인 줄 알고 주문했는데 시 평론집이었다. 살짝 읽어볼까 하여 책상도 아닌 식탁에 비스듬히 앉아 첫 장을 펼쳤다.


정지용에서 천상병까지 시인을 찾아 소개하고 유명한 시를 평론해 주는 글이 어쩌면 이렇게도 흥미로운지 반권을 앉은자리에서 읽었다. 다음날 마저 다 읽고 '시인을 찾아서 2권'을 읽고 있을 때 발인했다. 그동안 시인들은 시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의 무지가 한 꺼풀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신경림 시인의 시를 대하는 자세와 시를 해석하는 방법을 읽으면서 시인들의 태어나고 자람이, 고향이, 환경이, 사회현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토양에서 어떤 자양분을 받고 자랐느냐가 시의 색깔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고전문학을 읽을 때 서머싯 몸, 제인 오스틴의 생활배경과 일대를 아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크게 작용했던 것처럼 시도 마찬가지임을 알게 되었다.


학생 때 읽었던 시들은 시험을 보기 위한 것으로 시를 시답게 대하지 못했다. 시의 단어 하나하나를 뜯고 닭모이 헤치듯 흩어놓으니 시가 시답지 않았다. 신경림시인이 마지막 가는 순간에 나에게 던져준 메시지는 시를 시답게 대하는 법을 알려준 것이다. 시의 내용을 깊이 있게 음미하며 읽게 했고 시를 인용하여 글을 쓰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싯구를 읖조리게 만들었고 시의 깊은 뜻을 찾아보게 만들었다.


시를 생활속에 받아들인 계기는 은유 작가의 '올드걸의 시집'이라는 산문을 통해서다. 작가는 삶이 버겁고 어려울 때마다 시집을 열어 읽었다고 했다. 힘든 삶을 받쳐준 것이 시였다고 하며 자신이 글에 시를 더하여 깊이와 울림을 준 책이었다. 인용한 시가 사람 살림살이 깊이 침투하고 박히는 것을 보면서 시가 관념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짧은 시, 시, 산문 같은 시들을 보면서 시의 매력에 빠졌다.


시집 한 권을 사서 읽을 때 느꼈던 점은 시인의 어깨 한쪽만 만져본 느낌이었다. 시인이 자신의 시집으로 옷을 입고 있을 텐데 나는 시집 한 권을 읽고 '나 이 시인을 안다'라고 하지는 않는지 우려스러웠다. 


신경림 시인을 보내면서 책을 통해 만나는 순간 시인의 심장과 나의 심장이 포개져 함께 뛰었다. 시인의 맑은 미소를 보고 따뜻한 손길이 느껴지는 평론을 읽으며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장례식장에서 꽃을 헌화하지는 못했지만 시인을 보내드리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해가 저물어도 내일 해가 뜨듯이 다시 시를 통해 시인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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