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신

내 운명을 고르자면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

by 밍봄


꿈에 대한 고민은 학창 시절에 마침표를 찍을 줄 알았다. 대학만 가면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생기고 공부도 더 이상 안 해도 되고 꽃길만 펼쳐진다면서, 대학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주는 것처럼 말하며 대학 가서 놀라고 말하던 어른들의 말을 듣고 살아온 K학생으로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대학 가면 모든 게 다 해결이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대학만을 목표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랬는데, 그렇게 어른들의 말처럼 대학만 가면 정말 다 해결이 되는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어보니 연애도, 미래도 모든 게 막막한 것 투성이었다. 대학만 간다고 저절로 애인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고, 친구들이 곧바로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수많은 노력과 시행착오들이 동반되어야 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연애와 친구들에 대한 고민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도 해결되지 않았던 건 미래고민이었다.


대학에서 고학년의 위치로 올라갔을무렵, 전 세계를 전염병이 강타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COVID 19, 일명 코로나 19는 전 세계를 휩쓸고 우리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많은 것들을 멈춰 세웠고, 전반적인 영역에서 대대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나 또한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코로나가 멈춰 세운 것 중에 하나는 나의 전공이자, 미래의 나의 업이었다.

수많은 혼란함 속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호텔관광경영이던 나의 전공이자 미래의 나의 업은 코로나 직격탄을 맞고 이미 사망한 뒤였다.

대학교 3학년, 전공이었던 업계가 멈춰버렸다. 내 업의 시계가 멈춰버렸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난 뭐 해 먹고살지?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가 두둥실 떠올랐다.

황무지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나침반도 움직이지 않는, 길조차 찾을 수 없는 휑한 사막에 나 홀로.

‘북쪽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남쪽으로? 아니 근데 저기가 남쪽이 맞긴 한가? 난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지? ’

어디가 남쪽인지 북쪽인지도 알지 못했다. 길은커녕 사람 발자국의 흔적조차 없는 그곳에서 나는 홀로 나만의 길을 개척해야 했다. 어디가 어디인지 모른 채로.

그 어떤 정보도 없었기에 섣불리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한참 동안 나는 그 황무지에 서서 갈 길을 모르고 헤매었다.

남들은 다 본인만의 길을 잘 달려 나가고 있는데, 본인만의 삶의 레이스를 잘 펼치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홀로 멈추어있다는 사실과 난 나만의 길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들이 나를 자꾸만 작아지게 만들었다. 내일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없게만 만들었다.

그렇게, 내가 살았던 20대 초중반의 나의 세상은 아이스처럼 시리도록 차갑게 얼어붙은 세상이었다.


공허하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몰랐는데 공허하다는 단어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매일을 친구들과 놀면서도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공허함을 느꼈다.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다.

스스로가 미운 적이 없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던 입시에 스스로가 미워졌다. 게다가, 이젠 전공과 내 미래의 업계까지 멈춰버리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왜 다들 대학과 취업에 어려움 없이 진입하는데, 나에게는 모두가 다 가는 사회의 관문이라고 하는 이것들이 이렇게 힘든지. 입시가 그렇게 힘들었으면 취업은 좀 쉬워야 할 거 아니냐고, 셧다운이 뭐냐고 대체. 나에게 이렇게 시련만 가득 주는 세상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세상을 미워하다가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나는 나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이상에 다다르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꿈도 욕심도 많은 사람이었어서, 그 꿈과 욕심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나의 모자란 능력이 서글펐고, 운까지 따라주지 않았던 상황들이 겹치며 그 모든 화살들을 다 나를 향해 날려 보내고 있었다. 모든 푸념과 질책, 한스러움과 혹시나 하는 음이 뒤섞여 만들어진 예리한 화살촉들은 어느새 나를 향해 있었고, 나의 폐부를 깊숙하게 찔러 숨을 쉬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꿈과 욕심이 많았던 아이에서, 모든 게 다 지겹고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그럴 의욕과 의지조차 나지 않는 번아웃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


‘해야 하는 걸 아는데, 할 힘이 안 나’

친구와 대화를 할 때면 항상 했던 말이었다. 이런 상태로 번아웃을 계속해서 20대 초중반동안 가지고 있다가 도저히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그때부터 모든 약속을 다 취소했다. 모든 약속을 다 취소한 뒤, 밖으로 향하던 에너지를 내 안으로 다 모았다. 번아웃으로 인해 에너지가 얼마 없다면 그 에너지를 밖으로 쏟아내면 안 되고 내 안으로 쏟아야 했다. 그걸 깨달았기에 나는 약속을 다 취소하며 얼마 되지 않는, 밖으로 향하던 에너지들을 죄다 안으로 모아 나를 위해 썼다. 나의 취향을 수집하고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준비물은 종이와 펜, 시간. 이것이면 충분했다.

처음엔 나를 지탱해 주는 것들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다음으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써나갔고, 나의 취향들을 적어나가며 나를 아카이빙 했다.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페이지를 써나갔다. 그렇게 꾸준히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며 나에 대한 기록들을 해나갔다. 그러고 나니 절망감과 바닥을 치던 에너지가 조금은 사그라든 것 같았다. 내가 나를 이렇게나 잘 아는데, 뭐가 걱정이야?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번아웃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적다 보니 뭔가를 많이 했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편입하고 싶어서 오전에는 토익학원을 다녔고, 토익학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학교로 가서 오후수업을 들었다. 그동안은 단 한순간도, 토익학원도, 학교도 빠진 적이 없었다. 시험기간이어도 밤새서 시험공부를 한 뒤 토익학원을 갔다가 가는 길에 공부하며 학교에 가서 시험을 봤고, 머리를 말리며 LC의 연음을 따라 하며 토익공부를 하고 시간을 쪼개서 썼었다는 걸, 그런 과거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토익 성적도 남았고, 영어성적과 더불어 학교성적인 학점도 남았다. 그것도 꽤나 높은 성적으로.

그걸 깨닫고 나니, 내 과거가 헛되었던 시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충만감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나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살았던 내가 대견해지며 나에 대한 미움도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


삶이란 계획이 불필요할 정도로 예측하기 어렵다. 소망이 불편할 만큼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럴수록 하루하루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마음이 중요하다. 너무도 힘든 순간에, 자꾸만 물 밑으로 가라앉아 나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 나를 구해냈던 건 나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마음이었다.


나에 대한 미움이 조금씩 가시고, 나를 조금이라도 대견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나를 감싸고 있던 번아웃은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힘이 났고, 희망이 보였다.

이후엔, 버킷리스트를 쓰기 시작했다. 작고 사소한 것부터, 정말 이루고 싶은 것들까지 모조리 모아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이는 나의 희망이 되었고, 나는 희망을 가지고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이뤄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번아웃은 형체를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언젠가, 죽기 전에는 이룰 수 있을까? 싶었던 유럽여행의 버킷리스트를 현실로 이뤄내면서 번아웃과 더불어 내가 가지고 있던 어둡고 길던 터널에서 비로소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내 삶은 밝은 빛으로 가득 찼고, 새로운 세상에서 발견한 다채로운 아름다운 색깔들로 가득 찼다. 그렇게 내 삶은 스스로가 밉고, 공허한 삶에서 충만하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아주 보통의 하루로 변모했다.

내가 내 삶의 모양을 변화시키는 동안, 전례 없는 전염병으로 인해 셧다운 됐던 나의 전공이자 업계의 시계도 똑딱 거리며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업계의 시계가 멈춰있던 동안, 난 나만의 이야기를 적어나가며 나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고, 그 덕에 황무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정형화되지 않은 나만의 꿈을 갖게 되었다.

나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나만의 꿈을 맞춤제작하여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나침반도 알려줄 수 없던 그 황무지는, 오히려 무수한 갈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던 길이었고,

그 무수한 갈래의 가능성중에, 난 내가 맞다고 생각되는 길을 골라 걷고 있다.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입시는, 내가 버리려고 했던 나의 전공은, 오히려 나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지지대가 되어 나를 뒤에서 받쳐주고 나를 한층 더 올려주는 디딤돌이 되었고,

셧다운 돼서 힘들었던 시간 덕분에, 난 나한테 더 알맞은 길이 어디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얼마 전, 크루즈 통역을 갔다 왔다. 나의 꿈의 갈래로 이어지는 이 길에서, 나는 다시 한번 이 길이 맞는 길임을, 나에게 맞는 옷임을 느꼈다.

누군가에겐 돈 줘도 못할 일이, 나에겐 돈을 안 받고도 하고 싶고, 재밌는 일이었다. 나는 너무 재밌다를 남발하며 정말 즐기면서 일을 했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다. 아 이 길은 내게 맞는 길이구나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나만 이 길이 맞는다고 느꼈던 건 아니었는지, 같은 통역사 선생님이

“ 내가 보기에 이 일에 맞는 사람은, 여기 밍봄쌤밖에 없어. 일단 본인이 이 일을 너무 즐기고 재밌어하잖아 회복탄력성도 좋고. 어디에 어떤 상황이던지, 누구에게든지 물 흐르듯이 잘 어울리고 말이야. 밍봄쌤은 이 일이 천직이야. 쌤한텐 이 일이 맞는 옷인 거야.”라고 모두가 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꺼내셨다.


무수한 길을 돌고 돌아 이곳에 왔다. 길이라곤 도통 보이지 않던 아무도 없는 황무지에 홀로 서있기도 했고, 이 길이 아닌 것 같아 유턴을 고민하며 찔끔찔끔 뒤로 가보기도 했다. 남들이 가는 길들을 바라보다, 내 끊어진 길을 멍하니 보고 있기도 했다.

왜 나는 맞지 않는 옷들만 고를까, 내가 고른 길들은 왜 죄다 엉망일까 고민했던 적도 있는데, 실은 알고 보면 길이 엉망이었던 적은 없는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은 다 경험이었고, 그 경험들은 줄지어 점을 이뤄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지금의 나에게로 왔다. 맞는 옷을 얻기 위해선, 그 모든 경험들이 다 필요했고, 유의미했다.

난 나만의 길을 걷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나만의 길을 나만의 속도로 걷고 있었다.

빠른 속도가 아니었고, 정석적인 루트가 아니라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내겐 절망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절망이란 말은 맞지 않다. 내 삶에는 희망이 존재했었고, 존재하니까.

삶에 희망이 있다는 말은,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눈을 감고도 맞는 길을 골라왔으니, 앞으로도 맞는 길을 고를 테다.


“길을 잃었다, 어딜 가야 할까

열두 개로 갈린 조각나 골목길

어딜 가면 너를 다시 만날까

운명으로 친다면, 내 운명을 고르자면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


아이유-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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