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내가 생각해 본 나의 다음 생에 대한 이야기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그곳에서도 난 너와 함께 하고 싶다.
너가 다음 생에서 그 어떤 형상이든,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난 그런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 너의 곁에서 여전히 함께 하고 싶다.
나는 삶이 주어졌다는 게 축복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복에 겨운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삶을 살아간다는 건 속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전생에 지은 죄를 속죄하는 과정.
그렇기에 나는 더욱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착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이왕 이 세상에 태어난 거, 다른 사람한테 상처 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고 행복과 따스함만 전달해주고 싶다.
너무 따사로운 햇빛에 눈을 찌푸리게 하는 밝은 태양열을 내뿜는 햇빛 같은 사람이 아닌, 은은한 따스함을 전해주며 그 따사로움에 자연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이 생을, 이 삶을 살아간다.
그것은 내가 선한 사람인 것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에 철없이 누군가에게 말로 상처를 줬던 그 경험이 내 안에서 강력히 남아 배출되지 않은 덩어리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말로 상처를 줬던 경험은 뾰족한 칼날이 되어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고, 내가 철없는 말을 뱉으려고 할 때마다 자꾸만 그 칼날은 자꾸 나를 겨눈다. 말은 엎질러진 물처럼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으니 고심해서 말을 하라고 나에게 머릿속의 누군가가 명령한다.
더하여, 삶이란 속죄하는 과정이라는 나의 생각도 그런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한몫을 한다. 당연히 삶을 살아가면서 행복한 일도 있고 황홀한 일도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치열하게 버티고 경쟁하고 살아가는 삶, 하루하루 견뎌내는 삶. 그것이 인생을 살아간다는 걸 뜻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난 영생을 살고 싶지 않다. 열심히 나의 생을 산 뒤에,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더 이상 생이라는 걸 새롭게 시작하고 싶지 않다.
내게 삶이란 속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에, 내가 죄를 짓지 않으면, 착한 사람이 되면 나의 윤회는 끝이 날 것이고, 나에게 다음 생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때론 끝이 존재하기에 더욱 소중한 순간들이 있다. 끝이 있기에 시작이 있는 것이고, 끝이 존재하기에 더욱 그 순간들이 소중한 것도 있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언제 끝이 날진 한낱 인간인 나는 가늠할 수 없지만 분명 끝이 존재하기에 , 주어진 이 하루가 더욱 소중하고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그 순간들이 더욱 소중하다.
분명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언제부터인가 다음 생이 있어도 괜찮겠다 생각하기 시작했다.
너를 만난 뒤부터였다. 깊은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처럼, 난 너를 만나고 난 뒤부터 너라는 바다에 깊이 빠져버렸다. 그러면서 다음 생이란 나에게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서, 다음 생이 있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널 만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너는 나라는 사람을 너의 색깔로 잔뜩 물들여놨다. 나라는 도화지는 너의 도화지에 있는 색깔로 잔뜩 물들어버렸다. 너의 색깔로 가득히 덧입혀져 내가 기존에 그려놨던 스케치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고, 그것이 존재했었는지조차 모두가 알지 못한다. 단 한 사람, 그걸 그려놨던 나만 어렴풋이 그 형체를 기억할 뿐이다.
나라는 도화지를 어떤 색깔로 색칠해 가는지가 무척이나 중요했던 나는, 너를 만나고 나서부턴 그런 거 따위 상관없게 되었다. 그저 난 네가 좋아하는 색깔이면 나도 좋았고, 너라는 사람과 너의 삶에 칠해진 색깔과 동일하게 나를 칠하고 싶어졌다. 그 결과로 나는 너의 색깔과 유사해졌고, 나는 나를 잃었다.
우리의 유사한 색깔은, 서로 어깨를 붙이고 있는 색들처럼 우리의 관계 또한 서로 어깨를 붙이고 있을 수 있게 만들어줬고 유사색이 색조합자체의 안정감을 주듯이, 우리의 관계 또한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다.
뭐든지 선택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이 존재한다는 걸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나의 색깔을 너의 색으로 잔뜩 칠해놓은 나의 선택으로 우린 안정감을 가졌고 우리의 관계도 어깨를 붙이고 있을 수 있었다.
그 결과,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다채롭고 통통 튀던 생기발랄했던 색깔은 밋밋하고 진부한 색으로 변했다. 의상도 깔맞춤 해서 입으면 밋밋하고 진부한 탓에 깔맞춤 해서 입지 않는데, 사람이라고 다를쏘냐. 그러나 그때의 난 그걸 몰랐고 그냥 너와 내가 같은 색깔을 갖고 있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너와 나의 교집합이 이토록 크다는 것이 황홀하리만큼 좋았고, 결국엔 너와 나의 교집합이 합집합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몇 번을 다시 태어난대도, 그곳이 세상 그 어느 곳이라도 난 너와 함께 하고 싶다.
네가 다음 생에서 그 어떤 형상이든,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난 그런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 너의 곁에서 여전히 함께 하고 싶다.
엇갈린 시간을 헤맬지라도 너에게 닿을 수만 있다면, 아득한 우주에 던져져서 한참 동안 혼자 허공을 떠다녀야 한대도 나는 그냥 괜찮을 것 같다. 무수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네가 내 곁에 오고 너와 함께 시간을 나눠가질 수 있으니깐 말이다.
다음 생에 너가 꽃으로 태어난다면, 나는 바람으로 불어와 네 주변에 스치듯 머물다가 향기처럼 흩어질 테다. 내가 꽃으로 태어난다면, 너가 바람으로 불어와 스치듯 머물다가 흩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우리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 어떤 것으로 네가 태어나든, 나는 그에 걸맞은 것으로 다시 태어나 너에게 우연 같은 필연으로 또다시 다가갈 테다.
수 천 번 다시 살아도 너를 찾아가 우린 처음 사랑하듯 사무치게 끌어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되면서 꿈꾸게 된 다음 생이다. 너가 없었다면 생각해보지 않았을 다음 생에 대한 스토리이다. 이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 다음 생에 대한 나의 기억 속 이야기이다.
네가 사랑한다고 말해왔던 계절이 오면,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너가 사랑하던 그 계절을 느껴본다.
따뜻한데 잔잔하고, 살랑살랑 내 마음을 간지럽히는 바람이 내 온몸을 감싼다.
가을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에 잠긴다.
내가 바라보는 이 하늘이, 네가 바라보고 있던 하늘이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 바라보고 있었던 하늘이지 않았을까.
나는 너와 똑같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제 너는 내 세상에, 내 곁에 없다.
생각의 파도의 끝에 다 달아서 손을 들어 하늘에다가 한자 한 글자를 그려본다.
하나에 회상, 둘에 서운함을, 셋엔 미움을, 넷에 서러움을, 다섯에 미련을, 여섯엔 기대를
마지막 획자인 일곱에, 보기 좋게 꺾인 고개를.
인연의 마지막 페이지에 그려왔던 획은 일곱이다. 完
침묵하는 마음들은 가끔 그때를 잊곤 한다. 시간을 엎질러 그때를 주울 수 있다면 미래의 나는 오늘의 선택을 후회할까?
우연 같은 필연을 바라왔지만, 너와 난 인연이라고 되뇌어왔지만 결국 끝은 이별이다.
안녕?으로 시작해 안녕으로 끝난다. 안녕과 안녕, 만남과 이별의 동음이의어.
안녕. 이별로 완성된 우리의 사랑은 마침내 완전해졌네.
*完(완전할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