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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별 Feb 11. 2017

죽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마음산책

추천 대상 : 시크하고 유머스러운 할머니가 말하는 죽음에 대한 감상이 궁금한 사람. 보수적인 사람을 싫어하는 분에게는 추천하지 않음

추천 정도 :  ★ ★ ★ ★ ★

메모 : 요새 너무 비문학만 읽은 것 같아서 좋아하는 작가인 사노 요코의 다른 책을 사보았는데 역시나 대만족. 어떻게 이렇게 관조적이면서도 유머스럽고 솔직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다. 뛰어난 글은 읽는 사람을 경탄시키고 세계를 보는 관점을 추가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도 그렇다. 나는 나의 정치 성향이 보수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보수적인 면을 갖고 있는 사노 요코라는 할머니를 좋아하게 되었다. 할머니의 그런 면은 어쩔 수 없지 뭐,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발췌


게다가 정신에 관련된 병은 차별을 당한다. 주변에 사람들이 점점 없어진다.


그날 이후 나는 모든 사상을 믿지 않기로 했다. 직접 본 것, 만진 것만이 확실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볼 때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보도라면 그게 무엇이든 조심했다.


“활자를 믿지 마라. 인간은 활자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더 신용하니까”


몇십 년이나 두근거린 적이 없는데도 아무렇지 않았다. 나뭇잎이나 조그만 꽃을 보고 가슴이 뛰어서, 나이 든다는 건 청아한 일이라고 스스로 감동하곤 했다. 생활에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주기 싫은 내 마음. 전염되는 쩨쩨함.


나는 종일 소파에 드러누워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를 볼 때 행복하다. 그러는 게 너무나도 좋아서, 아무도 없는 집에서 〈파트너〉 같은 드라마를 한창 보던 중 문득 그 행복을 느끼면 깔깔 웃음이 터질 정도다. 아아, 이러니 혼자 사는 걸 도무지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깔깔대며 웃는 와중에도 스스로가 게으름뱅이처럼 느껴져 왠지 껄끄럽다.


나는 죽을 때까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럴 때 나는 갑자기 깨닫는다. 타인의 죽음은 한 시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요컨대 쉰다섯 이후로는 개인차가 굉장히 크게 벌어집니다. 생활 습관에 따라 상태가 좋은 사람은 건강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점점 나빠져요. 쉰 살까지는 유전자가 생존·생식 모드로 프로그래밍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등하게 건강히 일을 할 수 있는 거죠. 사노 맞아요. 노인의 개인차는 정말로 크죠. 히라이 진짜 커요. 그래서 쉰다섯 살 이후 종족 보존이 끝나면 사회적으로는 세상을 위해서, 또 남들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일지언정 생물학적으로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됩니다.


“일반 병원에서는 반드시 프로답게 굴어야 해요. 환자분이 돌아가셔도 절대로 울지 않도록 교육받죠.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우고요. 하지만 여러 환자분이 계시잖아요. 그중에는 마음이 무척 잘 통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 분이 돌아가실 때면 정말로 슬퍼요. 그래도 울어서는 안 되죠. 전 여기서도 처음에는 참았어요. 전에 있던 병원에서처럼요. 그러자 수간호사님이 울어도 된다,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도 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울었더니 정말로 기분이 좋았죠. 울면 편해지잖아요. 그게 가장 기뻐요.” 나는 몰랐다. 그런가. “어떤 환자라도 죽으면 울어요? “아뇨, 눈물이 전혀 안 나는 환자도 있답니다.”


아무리 냉정하고 침착한 사람이라도, 생각의 가장 안쪽과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는 본인조차 알 수 없다. 막상 부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부인도 의사도 모른다. 환자의 언어 건너편에 있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누구도 부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성이나 언어는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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