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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별 May 06. 2017

나의 개인주의

나의 개인주의 외 -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훈 옮김/책세상


추천 대상 : 소세키 덕후

추천 정도 : 3

메모 : 소세키 덕후로서 나의 개인주의 정도는 읽어줘야 한다 생각해서 읽었다. 이 책은 소세키가 했던 강연을 기록해서 묶은 것인데 에세이보다는 재미가 없었지만 맘에 드는 부분도 몇몇 있었다. 강연이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면 자신의 탓이니 집에 찾아와서 물어보라든가 곳곳의 유머는 소세키에 대한 호감을 더 크게 만들었다. 다만 소세키는 군국주의에 대해서는 경계하면서 한국의 식민지 상황에 대해서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는 정말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발췌


<내용과 형식>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2)와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3)를 초등학생이 동경하는 인물의 예로 거리낌 없이 제시하기도 하고 <문예와 도덕>에서는 ‘러일 전쟁’이나 ‘천하 국가’를 어떠한 문제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언급하는 등, 일본 군국주의 혹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소세키의 의식은 대단히 안이한 양상을 비친다. 당대의 교수,작가, 지식인, 사상가로서 서양과 일본의 논리만을 앞세웠을 뿐 일본의 동북아 침략 행위에 대한 참회 섞인 일말의 변도 없었다는 점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에는 유쾌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서예로 표현하거나 문장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유쾌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기분 좋은 상태가 되고 싶어 붓을 들고 그림이나 문장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무엇을 하면 좋을지 조금도 어림잡을 수 없었습니다. 흡사 안개 속에 갇힌 고독한 인간처럼 꼼짝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서 어디에서 한 줄기 빛이 비치지 않을까 기대하며 희망을 품기보다는 내 쪽에서 탐조등을 사용해서 오직 한 줄기 빛이라도 좋으니 끝까지 밝게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어느 쪽을 쳐다보아도 희미했습니다. 어렴풋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자루 속에 갇혀서 나올 수 없는 인간과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내 손에 단 한 자루의 송곳만 있으면 어딘가 한 군데 뚫어 보여주고 싶은데’ 하며 조바심쳤지만 공교롭게 그 송곳은 남이 전해주지도 않았고 또 자신이 발견할 수도 없어서 그저 마음속으로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까?’라고 생각하며 사람들 몰래 우울한 날을 보냈습니다.  


혹시 내가 말한 의미에 불명확한 곳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나의 표현이 부족했거나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내가 말한 것에 애매한 점이 있었다면 적당하게 단정하지 말고 우리 집을 방문해주세요. 가능한 한 언제라도 설명할 생각이니까요. 더욱이 그러한 수고를 하지 않고서도 나의 본 뜻이 충분히 납득되었다면 나는 이보다 더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너무 시간이 길어지니 이것으로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몸이 가루가 되도록 일하고 살아서는 수지가 맞지 않아. 바보 취급하지 마! 농담이 아냐!”라고 하는 데서 분발한 결과가 괴물처럼 뛰어난 기계의 힘으로 변모한 것이라고 보면 큰 지장은 없을 것입니다.  


다카하라 씨는 계속해서 청중 여러분을 향해 싫증나면 사양 말고 도중에 돌아가라고 말한 듯합니다만 나는 싫증이 나더라도 꼭 들어달라고 할 것이며 대신 다카하라 씨 정도로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렇게 더운데 그렇게 길게 강연하면 어쩐지 뇌빈혈이라도 일어날 것 같아 위험하니 되도록 압축해서 재빠르게 정리할 것이므로 그동안은 돌아가지 말고 더워도 참았다가 끝났을 때 박수갈채를 하며 반갑게 폐회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대체로 정치가나 문학가 혹은 실업가 등을 비교할 경우 누구보다 누가 훌륭하다거나 월등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일률적으로 상하를 구별하는 것은 대개 그 길에 어두운 비전문가나 하는 짓입니다. 전문 지식이 풍부하고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으면 그렇게 간략하게 정리한 비평을 머릿속에 저장해둔 채 안심할 필요도 없으며, 또한 비평을 하려고 하면 복잡한 관계가 머리에 명료하게 나타날 것이니 좀처럼 “갑보다 을이 훌륭하다” 따위의 간결한 형식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일 윤리적 요소가 독자를 윤리적으로 자극하기 위해서, 또한 그것이 전혀 다른 방면으로 해석될 수 없는 상태로 작품 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다면, 도덕과 문예라는 것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또 정월이 왔다. 되돌아보면 과거가 마치 꿈처럼 여겨진다. 어느 사이에 이처럼 나이를 먹은 것인지 이상할 정도다. 이 느낌을 조금 더 강조하면 과거는 꿈으로조차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완전히 무(無)가 되어버린다. 실제로 요즘 나는 때때로 그냥 무로 내 과거를 깨달을 때가 자주 있다  


이를 좀더 까다로운 철학적인 언어로 말하면 ‘결국 과거는 하나의 가상에 불과하다’는 뜻도 된다. 《금강경(金剛經)》에 있는 ‘과거의 마음은 불가사의하다’라는 의미와도 통할지도 모르겠다.78) 더욱이 미래의 찰나는 모두 순간의 현재에서 곧장 과거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므로 또한 순간의 현재에서 아무런 단절 없이 미래를 창출해내는 것이므로 과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일은 현재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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