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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별 Jun 28. 2017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박준 지음/난다

추천 대상 : 감상적인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 사실 난 취향이 아니어서 딱히 추천할 대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추천 정도 : ★ ★

메모 : 나는 페이스북에서 출판사 페이지를 많이 팔로우 하고 있다.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알고 있는 시이기도 했고, 출판사에서 만든 홍보 게시물 중에 나오는 문장들이 인상적이어서 예약 구매를 했다. 오늘 다 읽었는데 생각보다 내 취향이 아니었다. 좋은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나는 감상적인 문장을 좀체 받아들이지 못하는 체질이라. 뭐랄까. 거의 모든 글의 마무리가 현재는 존재 하지 않는 연인에게로 회귀하는데 그 점이 나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치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덧붙인 것 같았다. 그리고 모국어 문학에서 좀처럼 취향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퍼졌다. 나는 사노 요코나 나쓰메 소세키의 에세이는 정말 좋아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올해 읽은 에세이 중 이랑의 에세이도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아주 슬퍼할 일만은 아닌 듯 하다.



발췌


이제 나는 그들을 만나지 않을 것이고 혹 거리에서 스친다고 하더라도 아마 짧은 눈빛으로 인사 정도를 하며 멀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 말들 역시 그들의 유언이 된 셈이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 남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 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은 사람들이 좋다. 죽은 사람들이 괜히 좋아지는 것도 병이라면 병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의 수보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수가 더 많으니 이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찌되었던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과 모두 함께 다시 태어나고 싶다. 대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죽고 싶다. 내가 먼저 죽어서 그들 때문에 슬퍼했던 마음들을 되갚아 주고 싶다.


이 미병의 시기는 치료가 수월한 반면 스스로 잘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나는 이것이 꼭 우리가 맺고 있는 타인과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보다는 사소한 마음의 결이 어긋난 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것을 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넘기고 만다.


나는 이 사실에서도 다시 사람의 인연을 생각한다. 관계가 원만할 때는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생각하고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한 사람이 부족하면 남은 한 사람이 채우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가 끝나고 나면 그간 서로 나누었던 마음의 크기와 온도 같은 것을 가늠해보게 된다. 이때 우리는 서운함이나 후회 같은 감정을 앓는다. 특히  서로의 의미와 상관 없이 인연의 끝을 맞이한 것이라면 그때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후회될 만큼 커다란 마음의 통증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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