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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별 Jul 04. 2017

82년생 김지영

추천 대상 : 대한민국 사람들

추천 정도 : ★ ★ ★ ★

메모 : 최근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사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는 전혀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집은 세 자매이기 때문에 남녀 차별을 받을 일이 없었고, 여성이기 때문에 당한 위협은 2번 정도뿐이다. 2번 위위협당한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세 자매 집이어서 남녀 차별은 당하지 않았지만 막내가 태어날 때 외할머니가 우시기도 했다. 그때만 기분이 나빴을 뿐 내 인생에 여자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우울한 일은 많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남편을 만나면서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은 나보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 여성 중 나는 행복한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직장 내 성희롱도 몇 번 당하지 않았다. 비록 같이 일하던 남자 직원에게 "이곳 여직원들 얼굴은 다 빻았다" 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많지 않았다. 현재의 직장은 너무나도 합리적인 곳이고 육아 복지도 잘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부조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직장 동료의 얼굴을 평가하고 싶지도 않고, 여성은 얼굴을 잘 가꿔야 한다는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이 소설은 김지영이라는 대한민국 여성의 페르소나를 통해 대한민국에서의 여성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다룬 소설이다. 여성도 읽어보았으면 좋겠고 남성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현실을 잘 몰랐던 여자에게도, 여성이 아니기 때문에 잘 이해할 수 없었던 남성에게도 이해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적 성과에 대해서는 아직 거친 작품이라 말하고 싶지만 사회적 의미에 있어 후일 분명히 언급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별점 4개를 줬다.



발췌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게 꽃이니 홍일점이니 하면서 떠받드는 듯 말하곤 했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여학생에게는 짐도 들지 못하게 했고, 점심 메뉴도, 뒷풀이 장소도 여학생들이 편한 곳으로 정하라고 했고, 엠티를 가면 단 한 명뿐이라도 여학생에게 더 크고 좋은 방을 배정했다. 그래 놓고는 역시 무던하고, 힘 잘 쓰고, 같이 편하게 뒹굴 수 있는 남자들 덕분에 동아리가 굴러간다고 자기들끼리 으쌰으쌰했다. 회장도, 부회장도, 총무도 다 남자들이 했고, 여대와 조인트 행사를 열기도 했고, 알고 보니 남자들만의 졸업생 모임도 따로 있었다. 차승연 씨는 항상 특별 대우 같은 건 필요 없으니 여학생들도 똑같이 일 시키고 기회도 똑같이 달라고, 점심 메뉴 선택 같은 것 말고 회장을 시켜 달라고 말했다. 


"그래도 지영아,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게 되는 걸 생각해봐.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일이야. 그리고 정말 애 맡길 데가 없어서, 최악의 경우에, 네가 회사 그만두게 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 너보고 돈 벌어 오라고 안 해."

"그래서 오빠가 잃는 건 뭔데?"

"응?"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라며.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

(중략)

"그렇겠네.  오빠도 힘들겠다. 근데 나 오빠가 돈 벌어 오라고 해서 회사 다니는 건 아니야. 재밌고 좋아서 다녀. 일도, 돈 버는 것도."

안 그러려고 했는데 억울하고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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