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초반의 나는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주제에 심취해 있었다. 매일 매일 인간이 선한가 악한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십대의 나는 얄팍했고(지금보다 훨씬 단순한 자의식을 갖고 있었다) 친구들도 고만고만한 십대였기 때문에 다양한 인간 군상을 체험할 수 없었다. 아니면 상황을 받아들이는 신경 자체가 평면적이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훨씬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나는 당혹스러워졌다.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토록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내가 예상하지 못한 면을 가진 사람을 볼 때마다 감탄했다. 선한 사람을 만난 날에는 인간이 선하다고 생각했고 악한 사람을 만나면 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사람은 상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신비한 생물이라는 것을. 사람은 그냥 다양한 층위를 갖고 있으며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것이었다. 나 따위가 선하다, 악하다 판단해봤자 의미가 없음을 알고 나니 개운해졌다. 앞으로는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자고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이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것은 취업을 하고 나서부터였다. 직장에서의 사람은 더 버라이어티한 폭으로 나타났다. 상대에 따라 보이는 면이 다르기 때문에라고 하기엔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나에게 친절하기도 했다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동일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에게 상담했다.
그리고 끝에는 나쁜 사람은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하고 말했다. 남편은 어이 없는 얼굴로 "그게 나쁜 사람인 거야" 라고 말했다.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사람이라는 건 크로아상 같이 얇은 층위들이 합진 형태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무한한 차원으로 펼쳐져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인간이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나는 남편을 이해하기 어렵고 남편은 나를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친구를 이해하기 어렵고 친구는 나를 이해하기 어렵고 직장 동료는 나를 이해하기 어렵고 나는 직장 동료를 이해하기 어렵고.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내가 있는 곳이 기준점이 되는 차원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정해진 게 아니라 그저 특성에 따라 사람을 줄지어 보면 누군가는 누군가보다 더 왼쪽에 있고 하지만 또 다른 사람보다는 오른쪽에 있는 줄줄이 나열된 상태에 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걸 멀리서 바라보자면 복잡하고 사람이, 세상이 아름답고 기괴한 구조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내부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회로로 되어 있다. 마치 에셔의 그림이나 클라인 병 같다. 나는 알 수 없는 차원을 둥둥 떠다니면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갓 서른 해 살았는데도 인생을 알 듯 말 듯 하다. 이러다 죽기 직전에 아, 일 년만 더 살면 알 것 같은데 하고 죽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