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간별문

유기체의 굴레에서

by 강한별


얼마 전에 건강검진을 했다. 병원 시스템이 너무 체계적으로 잘 되어 있어서 나는 지칠 줄 모르고 여기저기로 튀는 핀볼이 된 기분이었다. 내시경을 할 때는 입을 고정하는 기구에 혀가 끼어서 겁을 먹었다. 그 상태로 수면 상태에 접어들면 위험할 것 같아서 우우 하고 짐승처럼 소리를 질렀다. 간호사분이 혀 위치를 기구 아래로 두라고 해서 혀를 움직였더니 아프지 않았다.


이제 정신을 잃어도 위험하지 않겠다, 하고 생각했을 때 약물을 맞았다. 정말 순식간에 의식이 꺼져버렸다. 이 순간의 느낌을 기억해두려고 긴장하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우주에서 제일 부드러운 것이 된 것마냥 의식은 속절없이 내 손 밖을 빠져나갔다. 의식이 꺼지고 있다는 것도 실감하지 못할 속도였다. 검사가 끝나고 간호사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비몽사몽한 채로 친구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남편에게 헛소리를 적어 보냈다. 계속 누워 있으니 조금씩 의식이 투명해졌다. 이윽고 천천히 두려움이 찾아왔다. 약물에 의해 꺼지고 켜지는 내 신체가 두려웠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필연적으로, 절대적으로 나는 유기체로서의 바운더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낙인이 찍힌 것 같아서 무서웠다.


불현듯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죽음을 떠올릴 때는 행복한 순간 혹은 아주 일상적인 시간을 보낼 때이다. 지금 이렇게 행복하지만-혹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언젠가 나도 나이가 점점 들어서 할머니가 되고 결국엔 이 세계에서 소멸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백퍼센트 실현될 명제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우주의 섭리에 나 같은 먼지 알갱이는 영향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빛이나 말없는 비난이 두려워질 때마다 지금보다 훨씬 제멋대로 살아도 무방하다고 여러 번 되뇌었다. 어차피 인생에 있어서 내가 움직이거나 흔들 수 있는 영역은 한정되어 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무척 안도되면서도 조금은 서글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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