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간별문

울타리 안으로 걸어들어온 행복

by 강한별
나란히 낮잠을 자는 세 남매. 왼쪽에서부터 검정 고양이가 막내, 중앙이 둘째, 가장 오른쪽이 첫째이다.


매우 간절하게 바라왔던 것을 이루게 되면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질 때가 있다. 고양이를 처음 기르게 되었을 때가 그랬다. 남편은 신혼 여행 후에 데려오자고 했지만 내가 우겨서 신혼집 이사 날에 고양이를 입양했다. 얼마 전만 해도 범백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고양이었다. 유기묘 센터에서는 고양이가 살아남으면 나에게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다행히 고양이는 전력을 다해서 범백을 이겨냈다.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고 남편도 기대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고양이가 우리집에 온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 고양이에게 범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작은 호랑이처럼 생겼고 범백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범이는 호기심 어린 몸짓으로 우리집을 돌아다녔다. 짧은 탐색을 마치자마자 범이는 남편 품에 안겼다. 나는 범이가 우리집에 있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범이는 처음부터 성격이 매우 좋았다. 낯도 전혀 가리지 않아 우리집에 온 첫날부터 몸을 부비고 사람을 졸졸 따라다녔다. 올 때부터 낯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우리와 범이의 사이가 이미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는 범이가 더 좋아졌고 범이도 우리를 더 좋아한다.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범이가 가볍게 침대 위로 뛰어오른다. 그리고 가르랑거리며 몸 전체를 부비고, 내 손바닥을 찾아 머리를 자꾸 문댄다. 자기가 만족할 만큼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옆에 누워서 새까매진 동공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럴 때 범이가 나를 '자신을 절대 해하지 않을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범이는 나를 완전히 믿고 있다. 백퍼센트 이상의 신뢰.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 범이는 작은 머리로 용케도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물론 범이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나도 고양이 말을 할 수 없다. 우리는 평생 서로 대화를 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점점 범이가 고양이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범이는 범이지 내게 고양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사랑할 때 그 사람을 고유의 개체로 인식하지 결코 인간이라든지 인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처음에 범이를 기르게 되었을 때는 나도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의식했다. 그러나 그 느낌은 조금씩 희박해지고 나에게는 오직 범이만 남게 되었다. 내가 남편과 투닥거리면 울면서 뛰어오는 범이, 사람이 다친 것 같으면 뛰어와서 괜찮냐고 우는 범이, 고구마를 좋아하는 범이, 브로콜리도 잘 먹는 범이, 하지만 먹고 있는 걸 뺏어 먹지는 않는 범이. 다양한 모습이 내 안에서 범이라는 개체를 구성한다.


같이 사는 고양이(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어서 아쉽다)가 두 마리, 세 마리로 늘어나면서 이런 생각은 더더욱 강해졌다. 둘째인 단이는 인간 음식은 절대 먹지 않고 나보다 남편을 더 좋아한다. 남편이 깨어나면 귀여운 비명을 지르며 '당신이 깨어나서 너무 기뻐요'라는 메세지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막내인 랑이는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고 싶어하고 우리를 매일 보면서도 퇴근한 우리를 보면서 약간 어리둥절해한다. 그러다가도 퍼뜩 누구인지 깨달은 것처럼 가까이 와서 장난감을 갖다준다. 휘둘러달라는 것이다. 세 마리 모두 개성이 있고 각자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며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 나는 그들을 같이 사는 생명체로서 존중하고 싶어졌다. 같이 살아가는 데에는 고양이냐 인간이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속성이었다.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는 그토록 어려운데 이들이 나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밥과 사랑, 청결한 환경뿐이다.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평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 아직까지도 신기할 때가 있다. 물론 나도 나이가 들고 범이도, 단이도 랑이도 나이가 들 것이다. 육체가 노화하기 시작하면 완전히 뒤바뀌어 힘들어지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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