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간별문

서울과 나

by 강한별


다음 주면 서울을 떠난다. 어렸을 때는 서울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모여라 꿈동산에 편지를 보내는 곳으로만 생각했다. 만화영화가 끝나고 나면 멀끔한 아저씨가 나와서(신동엽이었던 것 같다) 서울특별시 여의도동으로 엽서를 보내달라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와 닿지 않았다. 그 당시 나에게는 서울이 프랑스나 이탈리아만큼이나 가상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존재하기는 한다는데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언제 갈지도 모르는. 열 살도 채 되지 않았던 때의 이야기라 이것도 추측일 뿐 실제로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초등학생 육 학년 때 서울로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다. 관광버스를 타고 63 빌딩을 스쳐 지나갔다. 굉장히 멋있는 곳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촌스러운 금색 빌딩이었다. 그 이후에 당시 살던 지역 출신의 국회의원과 단체 사진도 찍었다.


다시 서울에 올라온 것은 고등학교 삼 학년 때이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온 가족이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나는 사회과부도를 펼치고 서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았다. 이사하게 된 지역은 강서구였는데, 인기가요를 촬영하는 SBS가 목동에 있어서 신기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곳 근처에 살게 된 것이다. 이삿짐은 트럭에 실어 보내고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차를 타고 경상도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잠을 자도 자도 서울은 너무 멀었다. 거의 밤이 다 되어서 도착했다. 어두웠는데도 도로에 차가 매우 많았다. 시야가 닿는 도로까지 전부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점점이 박혀 커다란 빛의 조류처럼 보였다. 나는 그 무리에 휩쓸린 우리가 연어 떼 같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나에게는 제대로 된 서울의 첫인상이다.


아버지의 전근은 1년으로 끝이 났지만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서 가족들은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고 나 혼자만 서울에 남았다. 나는 대방동의 한 기숙사에 살았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기숙사였지만 조금만 걸어가면 여의도로 갈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큰 장점이었다. 대방동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바로 여의도가 나온다. 나는 그 다리를 건너가면서 항상 서울에 대해 생각했다. 저녁이 되면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하나 둘 사람들이 나타나서 아무 데나 걸터앉는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완전히 깜깜해지면 유람선이 지나간다. 그동안 내가 본 배는 고기잡이 배이거나 군용 함선이 전부였다. 그에 비하면 한강 유람선은 훨씬 놀이공원처럼 보였다. 유람선이 지나간 강물은 샛노랗게 반짝이다 금방 어두워진다. 그 장면이 나에게는 개츠비가 바라보던 녹색 불빛이 이런 것이었을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얼마 전에 택시를 타고 한강을 지났다. 마침 늦은 밤이어서 나는 같이 택시를 탄 친구들에게 호들갑을 떨면서 서울에 살면 한강 유람선을 타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서울 토박이인 친구가 그게 뭐가 좋냐며 매일 보는 강인데, 라고 말했다. 잠실에 살던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오로지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정서임을 깨달았다. 한 명은 대전 출신이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십 년 만에 서울을 떠나기로 했다. 그동안 여러 동네를 전전하면서 서울이 모여라 꿈동산 같은 곳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많은 것이 응축되어 뒤섞여 있는 이상한 도시 같다. 서울에서는 시간의 속도가 더 빨리 느껴진다. 본가가 지방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고향도 슈퍼가 있던 자리에는 편의점이 들어오고, 스타벅스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지만 서울의 속도는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다. 미친 듯이 세포 분열을 하는 게 서울이라면 고향은 성장기가 끝난 사람이 조금씩 늙어가는 것과 같았다. 어쩌면 나는 그 정신 나간 것 같은 속도에 중독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이상한 도시에서 나는 십 년을 재밌게 살았다.


이번에 이사하게 되면 다시 서울에 입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직장 동료 중 먼저 경기도로 이사한 분이 있어 회사와 집이 가까워져서 좋은지 물었더니 그것보다는 영영 서울로 못 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강남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는 사람들과반대 방향으로 지나가면서 드는 막연한 예감.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도, 그분도 서울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IMG_1733.JPG 잠실에서 바라본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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