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간별문

분노는 나의 힘

by 강한별

나에게 지난 2018년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분노의 해였다. 본래 내가 분노의 에너지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이, 자주, 크게 분노하게 될 줄 몰랐다. 해변의 모래만큼이나 세상에 슬픈 일이 넘쳐흐른다. 내가 이런 일에 기민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많아지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세상에 슬픈 일이 많다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런 게 더 잘 느껴지는 것 같다. 어떤 게 부당한 일인지, 누가 소외 받고 차별받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차원이 하나 더 생기는 느낌이었다. 나는 지칠 줄도 모르고 화를 냈다가, 어이 없어 했다가, 슬퍼하다가 나중에는 이렇게 일일이 반응하다가는 언젠가 우울증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분노의 원인이 된 사건들을 많이 이야기 했는데 그들은 나와 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각자의 의견을 내게 이야기 해주기도 하고 했다. 인간이 모든 일에 반응을 같이 할 수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남편은 나에게 "넌 왜 남의 일에 그렇게 화를 내니." 라고 말했는데,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도 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우연히 내가 피해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고 분노하지 않는다면 내가 피해자일 때는? 하고 말했다. 정확히는 상대가 누구건 간에 불공정하거나 부조리한 일은(사실 그게 그거지만) 누구든 화를 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내 일이 아니니까 라는 이유로 신경쓰지 않는다면 그냥 왠지 인간이 다 같은 인간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정말 웃기지만 처음에는 왜 다들 나처럼 화가 나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이것이 너무나 편협한 사고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화가 많다고 해도 인간은 항상 상대적인 거라, 나보다 훨씬 공정함에 신경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이상해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람마다 각자 분노의 스위치는 다르겠지만 어쨌든 화를 낼 에너지가 있는 사람은 화를 내주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저마다 갖고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다를 테니까 모두에게 동일하게 요구하는 게 더 불공정하다. 한편으로는 갑자기 예전에 읽었던 문장을 떠올리기도 했다.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 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그다지 대단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누군가보다는 유리할 것이고, 누군가보다는 덜 유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유리한 입장에 대해 접어둔 채 왜 모두가 나와 같은 입장이 아닐까 고민하는 건 너무 바보같다. 그걸 깨닫고 나자 나의 마음은 훨씬 편안해졌다. 나에게 할당된 만큼의 분노를 소중히 사용하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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