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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별 Mar 23. 2019

방황하는 경기도민

퇴사하고 나면 왠지 공부도 열심히 할 것 같고 규칙적으로 뭔가를 하겠다는 마음이 부풀어 있었지만 실제로 퇴사 하고 내가 한 것은 격일마다의 집 청소, 토탈 2시간 될까말까한 공부 시간, 반려묘들에게 혼자 주절거리기 정도였다. 지금은 퇴사한지 3주가 다 되어 가는 시점이다. (업로드한 시점으로는 50일 가량 되었다)


인간은 왜 규칙적인 스케쥴이 필요한 걸까. 이제야 알겠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머리 속으로 생각만 할 뿐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나도 예전에는 꼬박꼬박 퇴근 후에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답니다. 심지어 술 먹고 들어온 날도 책을 보고 잔 적도 있었는데 이젠 술도 마시지 않는다. 술보다는 커피와 홍차가 좋은 인간이랍니다. 이번 생엔 윤호유노는 글렀다.


그런 미친듯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시기는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남편처럼 좀 특이한 사람이어야 한다. 남편은 코딩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고, 컴퓨터를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꽂히면 갑자기분위기코틀린 하기도 했고 갑자기분위기스위프트 하기도 했고 갑자기분위기딥러닝 하더니 결국 딥러닝 조직으로 산새처럼 날아가 버렸다. 그에 반해 나는 이걸 배워서 당장 어디에 써먹고 싶은가?를 주로 생각하는 인간이라 트리거가 생기지 않으면 보노보노처럼 따뜻한 시간의 강물 속에 누워 조개 대신 고양이를 안고 “삶이란.. 뭘까 범이야(고양이 이름)” 하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내가 생산성을 따지지 않고 하는 일은 독서와 전시회 유람밖에 없다.


사실 자기계발은 양적인 면과 지속성 두 가지 측이 있다고 봤을 때 지속성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상은 높고 매일매일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기 때문에 오히려 실전에 쉽게 돌입하지 못했다. 심지어 지금은 시간도 매우 많지 않은가. 그럼 더더욱 더 많이 해야지 하면서 더 욕심껏 시간을 늘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손으로는 고양이 잔등을 쓰다듬는다. 매일 이런 애매한 마음으로, 공부도 하고 싶지만 누워 있고 싶어 라는 기분으로 스멀스멀 집안을 배회했다.


하루는 남편에게 내가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면서 자괴감이 든다고 했더니, 웬일로 남편이 나를 위로해주는 것 아닌가. 참고로 우리 남편은 한국인이면서 한국어도 잘 이해 못하고 위로도 못하는 이상한 로직 덩어리 인간이다. 남편은 “아니야, 퇴사 후에 바로 공부 시작하고 그런 사람은 거의 없어.” 라고 말했다. 나는 저 사람이 왜 저러지 싶어서 남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 봤다. 그러자 남편은 씩 웃더니 “나 빼고.” 라고 말했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을까. 나는 남편의 등짝을 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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