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일시 : 2019.11.24
봐야지 봐야지 생각은 했었지만 <레이디버드>와 비슷하려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몸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레이디버드>가 재밌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 부끄러운 행동을 다시 리플레이 해보는 것 같아서 썩 재밌지 않았었다. 결론적으로 벌새를 본 정말 간단한 감상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가 생각났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거의 방치당하다시피 하고 15살 소년이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살이 될 것을 다짐하며 집에서부터 벗어나 여행을 하고 조력자를 만나고, 피를 흘리고 성장하지만 카프카는 "하지만 나는 아직도 산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겠어"라고 말한다. 까마귀 소년은 "그림을 보면 알게 돼. 바람의 소리를 듣는 거야"라는 대답해준다. 은희도 비슷한 폭력적인 가정 환경에서 자라나 누군가와 만나고 사귀어보려고 노력하고, 조력자를 만나고,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영지 선생님의 편지를 읽는다.
나에게는 서사의 구조가 비슷하게 느껴졌지만 그와 상관 없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 15살 소녀이기 때문에 의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성장 소설이나 영화는 대다수 남자 아이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유명한 작품일수록 더더욱. 내가 예를 든 <해변의 카프카>도 그렇고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모두 남성이 주인공이다. 성별이 바뀐 것만으로도 공감 되는 영역이 넓어졌고 은희의 이야기가 좀 더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런 작품이 나온 것에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벌새의 25관왕을 축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