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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별 Nov 15. 2015

도쿄 기담집

감상


추천 대상 : 겨울 바람에 센치해져서 가볍게 읽을 만한 단편집을 찾는 사람. 

추천 정도 : ★ ★ ★ 

추천 사유 : 기존 하루키 단편보다 신비로운 느낌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면 됨. 가벼운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음.



발췌


"너를 좀 더 깊이 이해했어야 했는데" 하고 누나가 말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에게 좀 더 여러 가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마음을 활짝 열고 몽땅 털어놓았으면, 네가 그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말이야."
"설명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어" 하고 그는 가로막듯이 말했다.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해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아. 특히 누나에게는 말이야."
누나는 말이 없었다.
그가 말했다. "주위 사람들의 기분 같은 건, 당시의 나로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어. 그런 것을 생각할 만한여유가 전혀 없었거든."
당시의 일을 떠올리자 목소리가 약간 떨리기 시작했다.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든 그것을 제어했다. 그리고 계속 말을 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에 내 인생은 확 바뀌어버렸지. 거기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서 매달려 있는 것이 고작이었어. 몹시 겁에 질렸고, 무서워서 견딜 수 없었어. 그러니 다른 누군가에게 설명 같은 걸 할 수 있었겠어? 세계로부터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걸. 그래서 나는 그저 이해해 주기를 바랐던 거야. 그리고 나를 힘껏 안아주기를 바랐어. 이유나 설명 같은 건 모두 집어치우고 말이야. 하지만 누구 한 사람......."
누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어깨를 흔들면서 소리 죽여 울기 시작했다. 그는 누나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미안하구나" 하고 누나가 말했다. p. 44-45


이 부분을 발췌한 이유는 이 장면을 통해 하루키가 여러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혹은 그의 무의식 속에서 계속 되풀이되고 있는 주제를 느꼈기 때문이다.
상실의 시대에서는 어깨에 힘을 빼라는 와타나베의 말에 나오코는 "어깨에 힘을 빼는 순간 나는 부서지고 만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 라고 말하고, 1Q84에서는 덴고의 아버지가 "설명을 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라는 말을 한다.

누구나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시기가 한 번 쯤은 있을 텐데, 하루키는 이 시기를 매우 격렬하게 느낀 것인지 이 시기를 견뎌내는 것 외에는 다른 에너지를 쓸 수 없는 인물들을 많이 등장 시킨다. 다무라 카프카처럼 그야말로 스스로의 에고에 매몰되고, 주위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을 통해서 천천히 회복하는 모습을 보인다든가. 하루키 소설에서 묘사되는 현상이나 인물에 대해서 평가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의 여러 작품을 읽어오면서 아, 이 사람이 무엇을 중심으로 글을 쓰고 있구나, 이 사람의 사고는 여기에 중점을 두고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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