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대상 : 코로나 시대를 겪고 있는 사람
메모 : 코로나 때문에 이 책의 판매량이 늘었다고 해서 갑자기 읽고 싶어졌다. 사두고 안 읽고 있었는데 지금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질병이 유행하는 것을 경험한 적 없었는데(메르스가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인해 몇 개월씩 재택을 하고 있다보니 이 책의 상황이 훨씬 체감이 잘 되었다. 이런 걸 보면 인간의 이해란 얼마나 경험의 한계에 부딪히는지 실감하게 된다. 완전한 이해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 소설에서 페스트는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으며(생쥐들이 나오긴 했지만 정확한 원인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급작스럽게, 이유 없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다. 이런 부분은 영화 곡성을 떠올리게도 했다. 불행의 원인은 당신에게 있는 게 아니다. 그냥 느닷 없이 일어난 재앙인 것이다...
대규모 재앙을 겪는 사람들의 심리변화와 질병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카뮈가 생각하는 인생이라고 한다. 인간은 이성적으로 생을 파악하려고 하지만 인생은 파악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대항해야 한다. 읽으면서 카뮈가 생각하는 인생이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연락이라도 할 수 있지만 서신과 전보 정도밖에 연락할 수 없던 시대, 더 옛날에는 편지밖에 불가능했던 시기에는 대규모 질병이 주는 심리적 압박이 더 컸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소설의 페스트는 끝이 있는데(하지만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 끝남) 코로나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그때 다시 한 번 또 읽어봐야겠다.
필자는 차라리 아름다운 행위에다 너무나 지나친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악에게 간접적이며 강렬한 찬사를 바치게 되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왜냐하면 그런 아름다운 행위가 그렇게도 많은 가치를 갖는 것은, 그 행위들이 아주 드물고 악의와 무관심이 인간 행위에서 훨씬 더 빈번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라는 말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니 말이다.
그런 모든 작업을 하려면 사람이 필요했는데, 언제나 모자라기 일보 직전이었다. 처음에는 정식으로 채용되었고, 나중에는 임시로 채용되었던 위생 직원과 묘 파는 인부들도 페스트로 많이 죽었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언젠가는 전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가장 놀라운 것은 질병의 전 기간에 걸쳐 그런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인력은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건 그렇다고 칩시다” 하고 코타르가 말했다. “그러나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영화관에 새로운 필름이 들어오는 겁니다.” 웃으면서 타루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