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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별 Jun 29. 2016

스물 여덟살의 데이 트리퍼

내가 서른 둘이고, 그녀는 열여덟이고......이렇게 하면 아무래도 지루 한 표현이 될수 밖에 없다.
나는 아직 서른둘이고, 그녀는 벌써 열여덟......좋아,이거다. 우리는 그저 그런 친구 사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에겐 아내가 있고, 그녀에겐 남자 친구가 여섯이나 있다.
그녀는 주말마다 여섯 명의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한 달에 한번씩 일요일에 나하고 데이트를 한다. 그 이외의 일요일에는 텔레비젼을 본다. 텔레비젼을 볼 때의 그녀는 해마처럼 귀엽다.
그녀는 1963년에 태어났는데, 그해에는 케네디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그 해에, 나는 처음으로 여자아이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유행하던 곡은 클리프 리처드의 '서머 홀리데이'였던가?
뭐, 그런거는 아무러면 어때.
아무튼 그해에 그녀는 탄생했다.
그해에 탄생한 여자아이와 데이트를 하게 되다니, 그 즈음에는 물론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서른 두살의 데이 트리퍼>


나와 막내 동생의 나이 차이를 생각하게 되면 으레 나는 위 소설의 첫문단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아직 스물 여덟이고, 그녀는 벌써 열아홉...... 굉장한 차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전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막내가 태어날 무렵 나는 열 살이었다. 사물 인식이 어느 정도 되고, 자아도 가지고 있던 나이었기 때문에 막내의 탄생은 다른 기억보다 생생한 부분이 있다. 신기한 것은 엄마가 막내를 임신해 계실 때 나는 엄마가 임산부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이 사람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던 나이었다. 나에게는 막내가 어느 순간 별안간 인생의 한 장막을 열어 젖히고 나타난 것처럼 생각되었다. 갑자기 우리는(나와 둘째) 병실에 불려갔고,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후에 아기가 탯줄이 목에 감겨 죽을 뻔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태어나자마자 죽을 고비를 넘긴 아기는 한 달 후에나 우리집으로 올 수 있었다. 사실 그런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고 시간이 좀 흐른 후에야 아기보에 안긴 막내를 볼 수 있었다는 것만 생각난다.


지금은 막내가 성인에 가까워진 나이이기 때문에 막내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라고 하면 나는 아기보에 안긴 아기, 그러니까 손에 자그마한 장갑을 낀 막내(신생아는 자기 얼굴을 긁기 때문에 손에 장갑을 씌워둔다)가 생각난다. 연노랑색 장갑을 끼고 잠들어 있었다. 누워만 있던 것이 기어 다니기 시작하고, 일어나서 서랍을 열고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때는 아기가 말한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놀라운 일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 막내에게 말을 열성으로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막내는 어느 순간 말하고 있었던 것 같고 나도 막내와 말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막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했을 때 나도 고등학교를 입학했다. 이때 나는 막내를 완전한 어린 아이로 대했다. 스스로도 성년이 아니면서도 막내를 굉장한 어린아이로 생각했다. 둘이 손을 잡고 걸어다니거나 내가 막내를 안고 다녔다. 그때까지도 아기 어르듯이 대한 것이 생각난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내가 대학교를 입학할 때 막내는 겨우 열한 살이 되었고, 나는 대학으로 인해 혼자 서울로 상경했다. 상경한 바로 다음날 나는 막내가 하루종일 내 사진을 보면서 울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막내를 어린 아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본가에 드문드문 돌아가게 되었다. 본가에 돌아갈 때마다 막내는 약간씩 변해있었어서 조금 신기했다. 예전에는 문방구에서 파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더니 그다음에는 학원에서 마음에 안 드는 남자아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는 교복을 어떻게 입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이다. 그 변화가 너무나 계단식처럼 폭이 크게 느껴졌다. 내가 가장 신기하게 느낀 것은 막내가 밤에 자기 방에 틀어박혀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를 듣고 있는 것을 봤을 때였다. 내가 브로콜리 너마저를 이십대 초반에 들었기 때문에 브로콜리 너마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그 쯤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아직 중학생 혹은 철부지라고 생각했던 막내가 밤에 혼자 브로콜리 너마저를 듣는 것을 보니 이제 서로 친구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커버렸다는 것이 그때 실감났다.


너무 유난스럽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나도 나와 막내가 같은 수준이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아무 말도 못하고 주먹만 꼭 쥐고 있던 아기 시절을 생각하면 그저 놀라운 것이다. 사람이 식물처럼 쑥쑥 자라는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도 그러한 식으로 자랐겠지만 그때는 자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을 생각하다보면 부모님은 나와 내 동생들이 자라는 과정이 얼마나 신기했을까 싶다. 나야 막내의 양육과정에 완전히 참여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은 누구보다 우리를 가까이서 보셨으니 내가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를 테지.


막내가 태어난 1998년은 IMF가 터진 지 일년 후였고 그때 유행했던 곡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반 년이 지나면 막내는 성인이 된다. 막내가 성년이 되고 나면 내가 갓 성년을 넘겼을 때와 얼마나 비슷할지, 혹은 얼마나 다를지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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