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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별 Oct 20. 2016

사는 게 뭐라고

사는 게 뭐라고


추천 대상 : 솔직한 에세이가 읽고 싶은 사람

추천 정도 : ★ ★ ★ ★ 

추천 사유 : 나는 사노 요코의 책을 '백만 번 산 고양이'밖에 읽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호감이 더 깊어졌다. 대단한 작가란 내가 평소에 생각했지만 문자화하지 못했던 것들, 혹은 문자화하고 싶었던 것을 세련된 언어로 풀어내는 사람아닐까 싶다. 솔직한 내용에 읽으면서 엄청 웃기도 했고 울적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는 게 뭐라고 시리즈를 다 읽어볼 생각이다.



발췌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아, 무섭다. 이건 혹시 내가 노인이 된 증거가 아닐까? 늙으면 어제 먹은 음식은 까먹어도 어릴 적 기억은 갈수록 선명해진다던데.    


일을 의뢰받으면 그 일이 무엇이든 간에 아, 싫다, 가능하면 안 하고 싶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먹고살질 못하니까, 하는 생각으로 마감 직전 혹은 마감 넘어서까지 양심의 가책과 싸워가며 버틴다. 그 전에는 아무리 한가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는 내내 위장이 뒤집힐 듯 배배 꼬여서 이따금씩 위산이 역류하기도 한다. 몇십 년을 매일같이, 공휴일 명절 할 것 없이 뒤틀리는 위장의 재촉을 받으며 내 인생은 끝나리라.    


나는 매일 아침 몹시 겸허하고 선량한 사람으로 변한다. 작고 여린 나뭇잎을 기특해하다 보면 이윽고 우주까지도 기특하게 여겨졌다.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무까지 달려가지는 않지만, 제아무리 마음이 언짢을 때라도 창밖을 보노라면 상쾌한 기분이 얼굴을 쏙 내민다.

하지만 사람이란 얼마나 한심한 존재인지. 창문을 닫으면 또다시 금방 겉도 속도 누추한 할머니로 되돌아와 일상을 살아간다.    


나는 자기혐오로 똘똘 뭉쳐 있다. 기분이 몹시 나빠졌다. 화나서 내뱉은 말을 스스로가 견딜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성격이 나쁜 인간은 바로 나라는 확신이 들어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아, 이러다가 친구가 모조리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이제 싫어하는 사람 이름을 대라고 하면 모두들 나를 가리키며 “아아, 그 사람” 하고 비웃을 것 같다.    


옛날에는 모든 할머니들이 그랬다. 쪼그려 앉아 주름진 양손에 고이고이 찻잔을 감싸 들고 조심스레 차를 홀짝였다. 눈앞에서 제비가 날아가건 장맛비가 내리건 고양이 같은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며 조용히 차를 마셨다. 나와는 관계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관계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누군가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진한 녹차를 멍하니 마시고 있을 뿐이다.    


어릴 적에는 피로라는 말을 몰랐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쿨쿨 잠이 들었고, 도중에 누가 깨우면 짜증이 났다. 자는 동안 가족들이 나 몰래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게 틀림없다고 굳게 믿었다. 아침이 되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젊은 시절에는 하룻밤 자고 나면 피로가 풀렸다.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가 되자 무리하면 근육이 다음 날부터 저려왔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는 근본적으로 어딘가 다르다. 이 행복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스토리도 대부분 억지로 짜 맞춰서 개연성이 없다.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나온다. 그런데도 행복하다. 엄청나게 행복하다. 잘난 사람들은 모두 이 현상을 분석하려 들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 좋아하는 데 이유 따위 없다. 그저 좋은 것이다.    


어떤 여자든 여차하면 아줌마로 변한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스스로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 그것도 60년씩이나.

나는 나와 가장 먼저 절교하고 싶다.

아아, 이런 게 정신병이다.    


내가 히틀러였다면, 하고 상상했더니 기분이 나빠져서 그만뒀다. 어쩌면 사람은 모두 작은 히틀러일지도 모르고, 또 한편으로는 압제정치에 짓밟히는 시민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어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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