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의 씨앗을 퍼트려 萬物(만물)을 움트게 하라(20)
中道를 실천하면 문제가 사라진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대화를 하다 보면,“너는 中道를 지킬 줄 알아야지 그렇게 편파적으로 하면 되느냐? 며 상대를 지적하기도 한다. 그럼 中道란 어떤 뜻으로 쓰이는지를 아래 내용에서 확인해 보기로 하자.
中道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유연성을 잃지 않으면서, 균형 잡힌 태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부 간이나 친구 간 혹은 지인들 간에 언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이유는 상대가 내 생각에 맞지 않고, 내 뜻에 맞지 않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문제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부부간인 경우는 “당신 성격 좀 바꿔라, 당신은 그게 문제야.”라고 하고, 친구 간이나 지인간인 경우에는 “니 성격 더럽네, 정말 네 성격 좀 바꿨으면 좋겠다.”라며 서로 옥신각신하며 언쟁을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오히려 바꾸지 못할 상대를 바꾸려는 것보다는 자신을 바꾸는 것이 쉽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하는가? 조금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자신을 바꾸면 문제는 간단하게 끝낼 수 있다.
자신도 바꾸지 못하면서 남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가? 그러면 그럴수록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타래가 점점 더 꼬이 듯이 싸움만 늘어나고 의리가 상하게 된다. 그러니 상대를 존중해 주고 내 마음을 바꾸는 것이 현명한 처신일 것이다.
다음은 中道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부처님과 제자 수목나 존자와의 대화를 들여다보자. 수목자 존자는 발바닥이 터져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수행에 전념했으나 별로 진전이 없었다. 이에 부처님이 수목나 존자의 마음을 읽으시고 물었다.
부처님 : 수목나야, 너는 마을에 있을 때 무엇을 즐겨했느냐?
수목나 존자 : 거문고 타기를 즐겨했습니다.
부처님 : 거문고 줄이 너무 팽팽하면 어떻게 되느냐?
수목나 존자 : 거문고 줄이 끊어집니다.
부처님 : 거문고 줄이 너무 느슨하면 어떻게 되느냐?
수목자 존자 : 줄이 너무 느슨하면 올바른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부처님 : 잘 들어라, 공부도 그와 마찬가지다. 너처럼 억지로 애를 쓰며 공부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발바닥이 터지고 몸이 피로해져서 쓸데없는 생각이 더해질 뿐이다.
마치 거문고 줄을 고르는 것과 같이 공부하되 너무 팽팽하게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느슨하게 해서도 안 되느니라. 모든 신묘한 법이 그 가운데 있으니 잘 명심하여라.
수목자 존자는 이 법문을 듣고 크게 깨달아 자기의 몸과 마음에 맞게 공부를 해서 아라한 과를 증득했다고 한다. (일타스님 이야기 법문 중에서)
아래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마을 풍경, 산 앞에 보이는 마을이 서평골이고, 산 너머에 보이지 않는 마을은 동평골이다
동평골 마을과 서평골 마을 중간에 이름 없는 아름답고 낮은 산이 하나 있다. 낮은 산을 기준으로 동평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다 하여 이 낮은 산을 서산으로 불러왔다. 반대로 서평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기준으로 동쪽에 있다 하여 동산이라 불러왔다.
이 두 마을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동산이 맞다, 서산이 맞다.”며 서로 말다툼하기가 일쑤다.
그러나 여기서 中道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겠는가?
아! 이산은 동산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산도 아니다. 그냥 나지막하게 현재위치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싸움하는 장소에 끼어들어 “이 산은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닙니다. 그냥 그 위치에 있을 뿐입니다.”라며 자기주장을 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중도를 아는 사람은 전혀 남들과 다툴 필요가 없다. 혹여 동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이람들은 서평골 마을에 사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서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사람들은 동평골 마을에 사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그만이다.
여기서는 산을 하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어찌 산 뿐이겠는가? 내가 옳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 혹은 “나의 것”을 주장한다. 이것을 아상(我相)이라고 표현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생각해 보면 어떨까? 과연 나라고 주장할 만한 실체가 있는가?를, 이것을 알면 세상 공부를 다한 것과 같다. 나의 것이라 하는 것도 인연에 의해 잠깐 나한테 있는 것뿐이다.
시절 인연이 도래하면 물건인 경우는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거나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하며, 없어지기도 하는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그러니 열심히 살되 물질에 지나치게 쫓아다니며 집착하지 말아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불행은 지나친 욕심에서 시작됨을 알아야 한다.
註) 註阿羅漢果(아라한과) : 성문(성문)의 첫 번째 지위, 모든 번뇌를 끊고 다시 생사의 세계에 윤회하지 않는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