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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 이야기(사례 13, 14)

善의 씨앗을 퍼트려 萬物(만물)을 움트게 하라(21)

by 운상

능구렁이가 아들로 태어난 사례(13), 방생공덕으로 살아난 아들(14)


다음은 일타스님께서 밝히신 내용이다.


가끔씩 나를 찾아오는 신도 남진여심(南眞如心)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라는 시조를 지은 남구만(南九萬, 1629~1711) 대감의 후손으로, 매우 큰 대갓집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그녀가 시집을 가기 직전인 어느 날, 부엌에 들어갔다가 능구렁이가 대들보 위에서 팔뚝보다 굵고 길이가 두 발이나 되는 능구렁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악!” 너무나 놀란 그녀는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습니다.


비명을 듣고 마당에서 일하던 머슴들이 쫓아와서 보니, 아씨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고, 구렁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 정신이 없어서 인지 멀뚱하게 움직이지 않다가 사람들이 온 것을 알고 장작더미 속으로 들어가려 하였습니다.


머슴들은 장작 더니 속으로 반쯤 들어간 구렁이를 쇠고랑으로 찍어 죽인 다음, 냇가로 가서 불에 구워 막걸리 한 말과 함께 걸판지게 먹었습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진여심은 시집을 갔고, 부엌에서 본 것과 꼭 같은 능구렁이가 노적가리(수북이 쌓아 둔 곡식 더미) 앞에 똬리를 틀고 있는 태몽을 꾸고 외동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은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어찌나 점잖은지 생전 웃는 일도 떠드는 일도 없었습니다. 누가 웃기는 말을 해도‘피식’하고 말뿐, 껄껄거리는 일도 없습니다. 어느덧 아들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병원을 개업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의 약혼녀 또한 약대를 졸업하여 새로 개업할 병원 옆에 약국을 차릴 작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진여심의 남편은 대법관까지 지냈고, 이화여대를 나온 두 딸은 좋은 남편을 만나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이 집안의 분위기는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게 좋은 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 아들은 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무엇이 맞지 않았는지 시집간 동생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것이었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진여심은 버럭 소리쳤습니다.


“이놈의 자식이 미쳤나, 네 동생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때리느냐?”


진여심이 남편의 지팡이로 아들의 등짝을 한차례 때리자, 아들은 지팡이를 빼앗으며 살기등등한 눈으로 어머니를 노려 보았습니다

.

“이놈아, 때리면 때렸지 어쩔 거냐? 이놈이 절말 미쳤구나.”


진여심이 다시 소리를 지르자 아들은 지팡이를 콱 부러 뜨려 버렸습니다. 그때 마침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아들은 삼각산 골짜기로 놀러 갔습니다. 그들은 개를 한미리 끌고 가서 두드려 잡은 다음, 그 개고기를 안주 삼아 술을 실컷 먹으며 놀았습니다.


그리고 세검정이 시원찮은 여인숙에 들어갔습니다. 모두가 한 방에 자자고 했으나 진여심의 아들만은 고집을 부리면서 독방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 아무리 불러도 그 방에서는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니 연탄 과열로 비닐 장판과 함께 살이 타버려서 몸을 바싹 오그라뜨린 채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남진여심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 빠져 들었습니다. 거기에다 남편은 ‘당신 때문에 그 순하던 아이가 죽었다’고 원망하면서 큰 딸이 사는 미국으로 가버렸습니다. 진여심은 나날이 울음으로 지새우며 지내다가 얼마 후 나를 찾아와 애절한 사연을 들러 주었습니다.


나는 수많은 인과응보의 사례를 들려주면서 그녀의 마음을 다소나마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자 하였고 그녀는 참회기도를 통하여 다시 마음의 평안을 얻었습니다.


방생공덕으로 살아난 아들(14)

약 15년 전으로 생각됩니다. 저 멀리 남태평양으로 큰 외항선을 타고 가서 고기잡이를 하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휘영청한 달빛 아래 망망한 태평양을 바라보노라니 불현듯 고향 생각이 나서 술을 한 잔 마시고 갑판 위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꿈틀 하는 바람에 바닷속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한밤중에 사람 하나 떨어진다고 하여도 금방 알 수 없는 몇만 톤의 큰 배였으므로 배는 배대로 가버렸고, 사람은 집채만 한 파도에 휩싸여 꼼짝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 보려고도 하였지만 거센 파도를 이길 수 없어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얼마 뒤 정신이 나서 눈을 떠 보니, 이상하게도 자신이 몸이 바닷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내가 분명히 갑판에서 바다로 떨어져 죽은 것이 틀림없는데 어떻게 살아 있는 것인가? 지금도 바다 한 복판에 있는데, 어떻게 떠 있는 것일까?’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자신이 떠 있는 물밑에다 가만히 손을 대보니, 무엇인가가 자기를 떠받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침 날이 밝아 왔으므로 주위를 살펴보니 역시 자신은 망망대해에 떠 있었고,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큰 거북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구해준 은공을 잊지 않고 보답한 거북이


거북이는 물속 깊이 들어가지 않고 등이 물 위에 나타날 정도로만 가고 있었으며, 또한 파도 없는 곳으로만 찾아다녔습니다.


그는 사흘 동안을 거북이의 등 위에서 살았습니다. 이틀째 되는 날, 멀리서 배 한 척이 지나는 것을 보고 소리를 치며 옷을 벗어 흔들어 보였지만 거리가 먼 배는 그냥 지나쳐서 가버렸고, 3일 만에 영국 상선을 만나 구조를 받았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물에 빠진 사람이 살려 달라고 구조를 청하는 것을 보고 배를 가까이 대었더니, 웬 사람이 고무보트를 탄 것 같지도 않은데 물 위에 그대로 서 있었으므로 사람인지 귀신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고무보트를 탔더라도 파도에 흔들리고 일렁이게 마련인데, 거북이가 밑에서 물결을 조절해 주어 평지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였으므로 더욱 의심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곧 작은 배를 띄워 그를 구조했습니다. 그때 거북이는 고개를 쑤욱 내밀고 그가 큰 배에 오르는 것을 보고는 배주위를 한 바퀴 돌아서 물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고 합니다.


방생할 때 자라를 물속에 놓아주면 물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고개를 들어 놓아 준 사람을 쳐다본 다음 물 속으로 자취를 감춥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까닭이 있는 일인 듯합니다. 이 사건이 국내에 전해지자 신문마다 사회면의 톱뉴스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그 당시 부산 대각사(大覺寺)의 방생회 회장보살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방생을 하면서 항상 아들을 위해 빌었습니다.


“우리 아들 몸성히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어머니의 정성이 아들에게 미쳐서 그와 같은 가호(加護)를 받게 된 것입니다. 다달이 날짜를 정해 놓고 꾸준히 방생을 하고 기도를 하면 몸에 있는 병도 낫고 업장도 소멸되고 운명도 개척됩니다.


근심 걱정이 많고 하는 일에 장애가 있거든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방생을 해보십시오. 오히려 맺힌 모든 일의 매듭이 풀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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