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통달하면 전부를 꿰뚫을 수 있다.

善의 씨앗을 퍼트려 萬物(만물)을 움트게 하라(46)

by 운상

하나를 통달하면 전부를 꿰뚫을 수 있다.

일타큰스님 법어집 중에서


중국 수나라 때의 승려인 혜공과 혜원은 사형⋅사제 사이로, 젊은 시절‘기필코 불도를 성취하겠다.’는 서원을 함께 세웠다.


그리고 사제인 혜원스님은 장안으로 가서 여러 경전을 남김없이 독파하여 대강사가 되었고 혜공스님은 강화로 가서 오로지 ≪관음경≫만을 외우며 정진하였다.


두 스님은 헤어진 지 3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때 혜원스님은 여러 경전의 심오한 도리를 쉴 사이 없이 계속 말하였으나, 사형인 혜공스님은 한 마디의 응답도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홀로 열변을 토하다가 멋쩍어진 혜원스님은 혜공스님께 물었다.


혜원스님 :“사형께서는 도무지 말이 없으시니, 그동안 어떤 공부를 하신 것입니까?”


혜공스님 : “나는 원래 천성이 우둔하지 않은가? 그래서 관음경 한 권 만을 읽고 외웠을 뿐이라네.”


혜원스님 : “관음경이라면 세속의 불자들도 모두 외울 수 있는 경전이지 않습니까? 사형께서는 나와 더불어 도과(道果)를 성취하겠다는 서원을 세웠거늘, 30년이 지나도록 겨우 관음경 한 권만을 외웠단 말이오?


이것은 우둔한 것이 아니라 나태한 증거요. 서원을 저버린 사형과는 그만 인연을 끊겠소이다.”


혜공스님은 흥분한 혜원스님에게 차분히 말하였다.


“관음경이 비록 적은 분량의 경전이지만 역시 부처님의 말씀 아니더냐. 말씀을 믿어 받들면 무량한 복을 받을 것이요, 그 경전을 경솔히 생각하면 죄를 짓게 되는 법이다.


그렇게 성만 내지 말고, 서로의 인연을 끊기 전에 내가 외우는 관음경을 한 차례만 들어주게.”


혜원스님 : “허허, 관음경은 내가 백 번도 더 가르친 것인데, 어찌 시끄럽게 들으라고 하시오?”


혜공스님 : “불법이 사람을 키우는 것이지, 사람이 불법을 키우는 것은 아니네. 다만 지성으로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 그만이지, 왜 사람을 핑계하여 법까지 버리려 하는가?”


이 말을 무시할 수 없었던 혜원스님은 마지못해 혜공스님의 ≪관음경≫ 독경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혜공스님이 경의 제목을 읽자 이상한 향기가 방 안에 충만하였고, 본문을 읽어나가자 천상의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꽃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두 스님, 꽃비가 내리네.png 관음경 독경을 하자, 아름다운 음악과 꽃비가 내리기 시작함


천상의 음악소리는 갈수록 미묘한 곡조로 바뀌었고 꽃비는 분분히 휘날리더니, 혜공스님이 ≪관음경≫ 외우기를 끝내자 꽃비도 음악소리도 일순간에 멎는 것이었다.


눈앞에서 전개되는 것에 깜짝 놀란 혜원스님은 자신의 오만함을 깊이 뉘우치고, 혜공스님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였다.


“한갓 냄새나는 송장에 불과한 혜원이 감히 불법을 깊이 깨달았다며 자부하고 살았습니다. 부디 저를 깨우쳐 주십시오.”


모든 경전을 두루 섭렵한 혜원스님과 ≪관음경≫ 하나 만을 30년 동안 외운 혜공스님, 이 두 스님 중 어느 스님의 도력이 더 높은 것일까? 모든 사람이 다 혜공스님을 택할 것이다.


간경수행을 하는 불자라면 마땅히 혜원이 아닌 혜공은 닮고자 노력해야 한다.


물론 근기(根機)에 따라서는 많은 경전을 접하여야 많이 깨우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불법의 세계는 그야말로‘일통일체통(一通一切通)이다. 즉 하나를 통달하면 모든 것을 통달할 수 있게 된다.


한 경전을 요달 하면 모든 경전의 뜻을 꿰뚫을 수가 있다.


오직 성패는 내가 그 경전과 하나가 되어 공부를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가 되어 공부를 하다 보면 차츰 삼매에 젖어들게 되고, 마침내는 혜공스님과 같은 신통묘용이 저절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간경공부를 하고자 하는 불자들에게 이렇게 권하고 싶다. ’ 만약 지금 특별히 공부하고 있는 경전이 없다면 양이 많은 경전보다 짤막하면서도 심오한 ≪반야심경≫을 외우라고 ‘…….


정녕 짧디 짧은 ≪반야심경≫ 하나라도 분명히 공부하여, 그 경전의 뜻을 조금의 의문도 없이 해득할 수 있을 때까지 공부를 지어가면, 무량한 공덕과 함께 참으로 깊은 경지를 틀림없이 성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반야심경≫ 이외의 다른 경전이나 책을 보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경전, 곧 ≪반야심경≫ 등을 ’나‘의 중심으로 삼고 다른 불경이나 불교서적들을 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공부하면 결국은 모든 가르침이 ≪반야심경≫의 공삼매(空三昧)를 체득하는 밑거름이 되어 흔들림 없이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부디 불자들이 이제까지 열거한 간경공부의 기본 요령을 잘 터득하여 꼭 복대문을 통과하기 바란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전을 많이 보고 통달했다고 해서 도력이 반드시 높지 않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디 경전 공부뿐이겠는가?


꽤 오래된 것으로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 인성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고전을 통한 독후감 쓰기 등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 교육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명목상에 불과하게 된 것은 제대로 된 독서방법을 실천하지 않아서 실패한 사례로 필자는 생각하다.


그 이유는 세상을 위해 쓰이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의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갈고닦아 사람다움에 이르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공부를 해야 事理와 道理에 밝을 수 있고 혜안이 갖추어진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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