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의 햇살은 귀하다

겨울날의 이른 노을

by 지구인

언젠가부터 사진 찍는 게 좋았다. 물리적으로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지만, 문학적으로 시간은 유유히 흐른다. 어쩔 수 없이 흘러가버려서 아쉬울 수밖에 없는, 그 어느 ‘순간’만이 가진 느낌을 담고 싶었다. 때로는 사람들을 찍는 게 좋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내가 주로 담고 싶었던 순간은 하늘이나 구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힘들거나 외로울 때 학교 구름다리에서 본 하늘은 지금도 내 기억세포 한편에 남아 있다. 가만히 보아야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떠다니는 구름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자주 구름을 보다 결심했던 꿈, ‘어른이 되면 꼭 저 구름 너머로 떠나 봐야겠다’. 그럼 나는 언제부터 하늘과 구름을 좋아했던 걸까.


우리 집은 지방 소도시의 외곽에 있었다. 집 옆에는 넓은 미나리꽝이 있었다. 얼핏 보면 ‘논’같기도 했던 그 밭의 둘레길을 따라 친구들과 매일 잠자리를 잡으러 다녔다. 그러다 파랗거나 검은색의 신기한 나비를 보면 서로서로 소리 질러 알려주며 함께 쫓아다녔다. 뭐든 잡고 싶은 욕심에 겁도 없이 들어간 미나리꽝에서 거머리에 물렸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렇게 매일 학교가 끝나면 오후 내내 놀다가 집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늘 해가 지고 있었다. 노란색부터 붉은색까지 물감이 섞이듯이 구름이 흐르는 모습을 보면서 집에 갔다. 이것이 하늘에 대한 나의 가장 어린 기억이다.


때로는 동네 가게 앞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며 친구들과 구름 모양을 맞추는 놀이를 했다. 잠자리 구름, 나비 구름, 거머리 구름, 엄마 구름, 내 구름… 나는 대체로 구체적이고, 사소한 것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 장면들은 잘 기억한다. 그리고 기억하는 만큼 문득 몹시 그립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동네 친구들이 그립고, 잠자리와 나비가 그립고, 노을 지던 하늘이, 나를 부르던 엄마 목소리가, 그리고 지금의 나만큼 젊은 엄마 얼굴이 그립다. 그렇지만 단 1초 전으로도 돌아갈 수 없기에 생겨난 그리움에 대한 욕망, 그것이 나의 꿈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순간’을 담자. 어떻게든 가장 비슷하게 담아보자. 그리고 구름 너머로 떠나서 그곳의 구름 모양도 한 번 맞춰보자. 어쩌면 내가 어릴 때 보았던 그 아름다운 하늘을 가진 정말 멋진 나라가 저 너머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여행을 다니고 사진을 찍으며 스위스의 대자연도 느껴보았고, 피렌체의 고풍스러운 성당도 보았다. 독일의 광활한 지평선과 파리의 거리도 느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서 봤던 그 하늘이나 구름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보지 못했다. 당연하다. 그곳은 우리 동네가 아니었고, 난 더 이상 어리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나는 돌아와 광고 회사에 취직을 했다. 사진작가가 되진 못했지만, ‘시각적 이미지’의 느낌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장점이 되는 일을 찾아 일할 수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의 하늘은 얼핏 평범하고 사소했지만 내게 꿈을 심어주었고, 여행을 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직업도 갖게 해주었으니 어쩌면 나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은 그 작은 동네에서 하늘과 구름을 보며 놀았던 그때가 아닐까.


나는 내 경험에 비추어, 어린 시절의 다양한 경험은 특별히 더 정서적인 감수성을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도 가장 주고 싶었던 것이 자연에서의 경험이었다. 봄에는 소란스럽게 꽃이 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여름엔 분주하게 자란 풀숲에서 풀냄새를 맡게 하고, 가을에는 나무 사이를 지나가며 바람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겨울엔 무채색의 고요함과 이른 시간부터 지는 오후 5시의 귀한 햇살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물론 그들이 나처럼 그런 기억을 소중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자신들은 도시가 좋다고 얘기하는 아이들이니까. 그저 내 욕심으로 아이들의 기억세포에 유년 시절이 행복한 추억이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은 내게 특별한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저 일상일 뿐인 그런 순간들 중에도 문득 또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경험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것은 하늘이나 구름처럼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나의 호기심이 그것을 특별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또 다른 꿈을 꾸게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궁금함을 잃고 싶지 않다. 매사에 ‘시큰둥’하지 않기를, 그리고 부디 동심의 눈으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말고 살기를, 나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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