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안녕하기를

by 지구인



몇 달 전 어떤 프로그램에서 뇌과학자가 시청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부모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과 내가 태어난 곳이 어느 나라인가 하는 것 중 우리는 어떤 것에 더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십니까?’ 순간 나는 당연히 부모라고 생각했다. 부모의 양육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많은 금쪽이들을 TV프로그램에서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자의 답은 반대였다. 어떤 시대인지, 어디서 태어났는지가 한 개인의 삶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즉 물리적 상호작용인 유전자의 작용보다도 어느 시공에서 태어났느냐가 한 개인의 삶에 더 중요한 의미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평소라면 굳이 이런 부분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최근 비상계엄이라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사건이 생기고 보니, 내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이 ‘내가 원하는 삶’을 꿈꾸는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나의 개인적인 삶은 나만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국가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 욕구의 5단계 이론에서 ‘안전에 대한 욕구’가 ‘생리적인 욕구’와 함께 가장 밑바탕에 있는 기본적인 욕구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여서 간과하고 있었던 안전한 사회에 대한 욕구, 그 기본권과 같은 욕구가 흔들린다면 ‘소속과 애정’에 대한 욕구나 ‘자아실현’을 향한 욕구 같은 더 상위 단계의 욕구는 꿈조차 꿀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공무원도 아니며,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도 입법, 행정, 사법이 분리되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삼권분립이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을 상징하고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했던 최고의 권력자인 대통령은 현재 삼권 중 그 어느 것도 수호하고 있지 않다. 행정의 수반인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의심하여 입법 기관인 국회를 마비시키려 했으며,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공격했다.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은 불법이라고 무시하며 체포되지 않기 위해 사병들까지 방패막이로 세웠다. 한 사병의 어머니는 ‘나라를 지키라고 보낸 군대에서 왜 범죄자를 만들려 하냐’고 울부짖는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여당과 야당, 온 나라의 권력기관이 총동원되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나라가 평화로울 때 나는 정치적인 행위라는 것을 누가 어떻게 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었고, 내 세금이 어찌 쓰이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가 누리는 자유를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조금 달라질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가끔 행사하는 소중한 투표권만이라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보다 나에게 더욱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내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국가의 평화로운 존립과 안녕을 무엇보다 바라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늘 ‘저 멀리’를 꿈꾸면서 살았다. 대학에 가면 반드시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야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비와 첫 직장에서 번 돈을 모아 어딘가에 있을 유토피아를 찾는다는 심정으로 많은 나라들을 여행했었다. 그렇게 다니고 다니면서 깨달은 것은 역시나 뻔했다. 대한민국이 제일 좋다. 이유는 뻔했다. 음식이 입에 맞아서, 언어가 통해서, 자연이 아름다워서.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우리나라가 안전해서 좋았다. 밤길을 걸어도, 늦은 밤 편의점에 가도, 사람이 많은 곳에 가도 비교적 안전한 나라라는 것이 좋았다.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을 적어야만 할 것 같은 주제에 왜 나는 매우 거창하게 국가에 대한 걱정을 쓴 것일까. 아마도 '욕구' 때문인 것 같다. 잠을 편하게 잤으면 하는 수면욕에서부터 나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한 욕구까지. 그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외쳐본다.

‘대한민국이여, 내일부터는 꼭 안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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