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와 ‘I’는 선택적으로
중고등학교 다닐 때 나는 무척 나대는 아이였다. 앞에 나가서 노래를 하든, 웃기든, 반장 선거를 나가든, 어쨌든 나가는 게 좋았다. 그렇게 반장도 몇 번 해봤다. 그리고 새로운 학년이 올라가면 또 신났다. 와~ 새로운 친구를 또 만나겠구나. 그렇게 대문자 ‘E’로 살았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나는 누구든 금방 친구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만만했다. 그러다 찾아온 위기. 대학에 계속 떨어졌다. 삼수를 해서 겨우 대학에 갔다.
친구들보다 2년 늦게 대학을 다닌 것이 뭐 그렇게 자존감이 떨어질 일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나는 대학에 다니는 내내 주눅이 들어있었다. 원하는 대학이 아니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이십 대의 2년은 꽤 긴 시간이라 그랬을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같은 학번과 미팅을 해도 2살 연하 남자들이 나왔다. 누나라고 부르라고 해야 하나, 말을 놓으라고 해야 하나. 이런 고민들이 그냥 짜증스러웠다. 장점이라 생각했던 나의 오만한 성격은 대문자 ‘I’로 바뀌었다. 친구도 소수로 사귀고, 나서는 걸 기피했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이 깊어졌다. 사람이 되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선택적으로 ‘E’와 ‘I’를 번갈아 쓰고 있다. 일단 나이가 들면서 ‘E’로 살 만큼의 에너지가 생기지 않고, ‘I’로만 살면 심심해서 이렇게 온라인 글쓰기도 도전해 보고 있다.
‘S’가 욕심나도, 그냥 맘 편히 살자.
1~2차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감각적인 글쓰기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오늘의 날씨로 도전을 해볼까. ‘매서운 바람을 감수할 결심으로 현관문을 열었으나, 바람이 사납지가 않다. 부리나케 챙겨 휘감은 목도리만으로도 기분 좋은 따뜻함이 느껴진다.’ 한 문장 이상 쓰기는 힘들다. 역시 나는 ‘N’이어서 그런 것일까? 구체적인 것을 묘사하거나 생각하기 버겁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따위를 생각하는 게 맘이 편하다.
엄마, T야?
어젯밤에 아들에게 들었던 말이 맴돈다. “엄마, T야?” 한참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2 아들이 친구 때문에 속상해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한 마디 던진 말이 화근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그걸 해결하려고 노력을 해봐야지, 그렇게 끙끙 앓지만 말고”. 틀린 말은 하나도 없는데, 그 녀석의 귓가에는 전혀 들어가지가 않는다. 이럴 때 ‘F’엄마는 어떻게 해주려나.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자식을 키울 때는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도 분노를 누르고, 이런저런 책에서 배운 ‘그래, 그랬구나’ 정신을 발휘해서 카톡 이모티콘을 날려본다. 30분쯤 뒤, 꽉 닫혀 있던 방문을 열고 아들이 나와서 과일을 먹는다. 그래, 나는 그냥 말을 하지 말고, 과일이나 주자.
‘P’의 저녁 메뉴 정하기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서 생각한다. ‘오늘은 어제 냉장실에 내놨던 생선을 구워 먹어야 해. 오늘 안 먹으면 또 냉동실에 들여놔야 하는데, 그러면 신선도가 떨어져서 다음번에 버려야 할 수도 있어. 역시 나는 계획적인 편이야’라며 얼토당토않은 자화자찬을 하다, 생각을 다 마치기도 전에 삼겹살과 김치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그 두 조합이 함께 구워지고 있는 식당 옆을 지나가며 순식간에 생각이 바뀐다. 시각, 후각, 미각을 동시에 자극하고 있는 저 메뉴. 잘하면 청각까지 들릴 것 같다. 역시 오늘 같은 날은 삼겹살을 먹어줘야 한다. 나는 바로 상추를 사러 간다. 이렇게 오늘도 나의 저녁 메뉴는 ‘P’스럽게 바뀌었다. 생선은 다시 냉동실로 들어가거나 버려질 수도 있다. ‘P’로 계속 살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물이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이듯, 성격도 그렇지 않을까. 나는 때론 ‘E’여서 놓쳤던 소중한 친구가 있고, ‘N’이어서 직관적 판단을 잘 할 때가 있으며, ‘T’여서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상처를 줄 때가 있다. ‘P’여서 마주친 재밌는 상황이 있는가 하면, ‘J’였다면 받았을 혜택을 놓칠 때가 있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방향’과 살고 있는 ‘때’에 내 성격은 어떻게 보일까? 모쪼록 장점이 더 많이 보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