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 시작해서 ‘페스티벌’로 끝난 언니들의 놀이터

스트릿 우먼 파이터

by 지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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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뺏기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호모데우스’에서 인간은 곧 ‘신의 영역’까지도 넘보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딥 페이크’기술이나 유전자 영역에서의 RNA조작 기술, 인공지능과 결합한 자율주행 자동차 등의 사례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 종영한 예능 프로그램 중 유독 우리의 눈길을 끈 컨텐츠의 면면에서 ‘아, 우리는 아직 20만년전 최초의 인간 DNA를 지니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든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화려한 복장과 거친 언어, 살벌한 투우장을 연상케하는 배틀장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던 Mnet의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다.

케이블 프로그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지표에서 ‘비드라마부문 화제성 1위’를 차지하며 프로그램 종영 이후 많은 출연자들이 지상파 예능에 섭외되고, 인기의 척도라 불리는 통신사 광고까지 섭렵하며 이른바 ‘핫’한 연예인의 반열에 오른 듯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사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음악에 맞춰 처절하게 춤을 추는 그 여성들에게 왜 이다지도 마음을 뺏겨버린 것일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가진 숙명적인 약점인 ‘경쟁 부추기기’나 ‘마녀사냥’과 같은 부정적인 요소를 무시할 수 없으나, 나 또한 그녀들의 앞날을 응원하게 된 이상 이번 비평에서는 ‘인기’의 원인만을 다루려 한다. 그 ‘인기’의 원인을 제대로 찾는다면, 그저 제작진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만은 아닐 거라는 위안이 생길 것 같아,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 번 ‘스우파’를 뜯어보고자 한다.


어서와, 백업댄서들의 세계는 처음이지?


‘스우파’는 늘 아이돌과 가수들에 가려 ‘백업댄서’만 하던 댄서들이 주인공이 되는 Mnet의 서바이벌 오디션이다. 8팀의 크루들이 제작진의 황당한 듯 잔인한 미션을 수행하며 최고의 크루가 되기 위해 춤으로 겨루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KPOP이 세계적인 대세로 떠오른 요즘, 가수들의 안무를 짜고 함께 군무를 맞추는 댄서들의 세계는 그녀들의 강한 복장과 외모만큼이나 신선하고 트렌디하게 다가온다.


첫인상


‘스우파’에 대한 첫 인상은 ‘스포츠’와 ‘드라마’를 합쳐 놓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우선 몸을 이용한 게임이라는 측면이 스포츠와 닮아 있지만, 경기의 승패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전략을 짜는 과정과 견제, 각 출연자의 과거 스토리와 갈등 구조, 앞담화와 뒷담화가 얽히는 가운데 결국 화해의 과정에 이르는 서사 구조가 제대로 히트친 ‘성장드라마’ 와도 같았다. 더욱이 이 모든 과정이 ‘리얼’하게 때론 과장되어 시청자들에게 전달됨으로써 우리는 더욱 이 이야기의 끝이 궁금했던 것이다.


제작진의 낚시


일단 제작진은 특히 프로그램 초반에 작정하고 시청자들을 ‘쎄게’ 낚기 위해

애썼다.

첫째, 프로그램 구성 요소의 강렬함이다. 진한 눈화장으로 무장한 얼굴을 강조한 익스트림 클로즈업샷과 빠른 템포로 편집한 프로그램 타이틀부터 그렇다. 또한, 마치 복서들이 링 위에 서듯 구성한 무대 장치도 치열한 혈투를 예상케 했다. 동서고금 흥행보증인 ‘치열한 링 위에서의 싸움’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쎈 미장센이었다.

둘째, 출연자들의 ‘outfit’이다. 일반적인 사회인으로서는 하기 힘든 액세사리나 문신, 과하게 노출된 의상과 컬러풀한 화장 등은 아직 문명화되지 않은 과거의 어느 부족을 연상케 한다. 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그들이 쓰는 동물적이고, 즉각적인 리액션에 담긴 표정과 눈빛, 배려가 없이 내지르는 언어, 이기기 위해 상대를 위협하는 몸짓 등을 가감없이 편집해 보여주는 것은 다분히 ‘쎈 여자들의 전쟁’이라는 컨셉을 만들기 위함인 듯하다.

셋째, 갈등을 만들고, 감정을 건들 수 밖에 없는 ‘언어 장치’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룹’이라고 해도 될법한 용어에 ‘계급’이라는 말을 쓰거나, 가장 못한 멤버에게 ‘워스트 댄서’라는 말을 사용하게 한 것이다. 누구든 한 명은 ‘워스트’가 될 수 밖에 없는 게임을 던졌다는 건 필히 ‘갈등’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전쟁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은 것이 무색하게 회를 거듭할수록 출연진들에게 정이 들고, 매회 눈물이 나거나 감동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초반에 ‘쎄게’ 낚은 것이 제작진이 다 뒤를 예상하고 짜고 친 기획의도라면 그들의 꼼꼼함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동물적인 언어, 춤 그리고 이유모를 감동


춤은 매우 본능적인 몸짓이다. 문자가 없던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이성을

유혹하는 수단이기도 하고, 적을 유인하거나 위협을 주고, 약을 올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쇼미더머니’가 5천년 전부터 발전해온 ‘문자’라는 상징 기호를 음악과 접목시킨 ‘인간’들의 배틀이라면, ‘스우파’는 20만년 전부터 우리에게 있었던 동물적인 감각과 눈빛, 손짓, 그 모든 것이 포함된 몸짓으로 겨루는 ‘동물적인 감각’의 패틀이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갈등관계의 남자 둘이 서로 몇대씩 때리고 바닥에 누웠을 때 갈등이 해소되는 듯한 느낌이 ‘스우파’에서는 ‘배틀’로 해소된다. 때문에 잡아먹을 듯 살벌하게 배틀판에서 춤을 추지만, 끝나고 나면 무언가가 해소되는 듯하고, 결국 승부보다는 ‘화해’의 코드가 되고 마는 몇몇의 장면이 연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


10대들의 산소 호흡


‘스우파’에 가장 열광한 층은 10대들이었다. ‘춤’과 ‘노래’라는 영역이 원래 감수성이 예민한 10대의 문화라고 하지만, 10대가 특히 열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쥐어진 연필로 10대의 마지막 날까지 우리의 아이들은 입시라는 배틀만 위에 서 있는 ‘파이터’다. 초등학교때부터 ‘강남’과 ‘비강남’의 차이를 알고, 중학교때부터는 ‘SKY’와 ‘서성한’을 알게 되는 우리의 10대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늘 쳇바퀴 돌 듯 학원과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에게는 ‘스우파’는 ‘자유로움’의 투영이 아닐까? 굴레와 속박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는 의상들로 치장을 하고, 자신의 기분을 목청껏 내지를 수 있는 자유. ‘승부욕이 올라온다. 우리 모두 센터병이 있다. 이를 갈고 뺏어올 것이다. 워스트 댄서 지목권을 갖고 싶다’ 등의 말을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는 과감함. 정해진 길로만 가야한다고 가르치는 어른들 사이에서 춤추듯 자유롭게 사는 듯 보이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잠시나마 시원한 ‘산소 호흡’을 한 것은 아닐지.


진짜 어른의 모습


많이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모두가 평등한

사회는 아닌 것이 사실이다. 어느 지역에 사는지, 연봉이 얼마인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에 따라 서로 암암리에 소위 ‘계급’을 나누게 된다. 사회가 그러할지라도 우리는 함부로 입밖으로 ‘계급’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못한다. 그래서는 안 될 것만 같고, 말함과 동시에 그어지는 선으로 인해 어색해지는 그 분위기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판도라 상자와 같은 단어를 ‘스우파’ 에서는 댄서들을 무려 ‘4계급’으로 나누고 ‘메인’과 ‘서브’, ‘베스트’와 ‘워스트’, ‘리더’와 ‘백업’이라는 계층까지 나누도록 잔인한 미션을 준다. 일부 시청자들은 너무나 노골적인 이런 용어들에 반감을 드러낼 수도 있을 텐데도 말이다. 역시나 댄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진짜 savage(잔인한)구나’, 무서워, 잔인하다’ 등의 탄식을 쏟아 낸다.

하지만 제작진이 쳐놓은 이 촘촘하고 잔인한 ‘언어의 장벽’을 홀리뱅의 리더 허

니제이는 모니카와의 배틀에 앞서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라는 말로 무너뜨린다. 이미 3계급의 배틀이 끝나고 ‘워스트댄서’가 된 댄서들이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고, 리더들의 싸움 앞에 더욱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허니제이는 ‘얘들아, 이건 쇼일 뿐이야’라고 말하며 동생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나는 이 말을 시작으로 ‘스우파’는 배틀판 위에서 시작해서, 끝내는 페스티벌이 된 것이 아닐까 한다. 하루 종일 글씨만 보며 헐떡거린 10대들에게 ‘산소 한 모금’를 던져주는 진짜 언니,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게 된 것 같다.


경쟁이요? 근데 우린 모두 댄서에요.


프로그램 초반, 반드시 이기고야 말겠다는 투사와 같은 모습을 보였던 댄서들이 회를 거듭할수록 눈물이 많아지고, 결국 마지막회에서는 가족들을 보며 눈물 때문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결국 최종 우승 크루가 결정된 후에는 네 팀의 크루가 뒤섞여 얼싸안고 울음을 터트린다. 첫 번째 탈락크루였던 WAYB가 탈락했을 때부터 그들은 ‘결국에는 다 같은 마음이니까’라고 말하며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해버렸다.

댄서라는 직업의 불안정성, 누군가의 뒤에서 있어야만 했던 순간들, 창작물임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저작권, 연습만이 살 길이었을 시간에 흘린 땀과 눈물… 결국 출연진 모두 사연은 달라도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끼리 느끼는 인간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장면일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모두 춤에 진심인 ‘댄서’니까.


‘댄스보일러’


‘댄스테라피’라는 장르가 있다. 그들이 말하는 ‘댄스의 매력’은 음악에 맞춰 몸이 원하는 데로 춤을 추다 보면 늘 다른 사람 흉내만 내면서 사는 것 같던 내가 ‘진짜배기 내가 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저 내 기분을 이마와 목, 팔과 다리, 그리고 주변의 관절과 근육들을 마음 가는 데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된다는 것이다.

‘스우파’ 인기의 원인을 찾으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결국 내가 찾은 답은 ‘움직이는 즐거움’이었다. 제작진이 험한 덫으로 낚아도, 무서운 눈빛으로 카메라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센 언니들이어도 그들이 밉지 않고, 응원을 하게 된 이유는 결국 그들이 던지는 ‘몸의 언어’가 주는 기쁨을 우리도 몸으로 알아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늘 ‘어떤 역할로서의 나’로만 사는 우리도 이제 타인의 춤을 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몸을 움직여 ‘진짜배기 나로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2022년 1월 대한민국은 각 정당의 후보들이 대선을 이기기 위한 공약 발표가 한창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초 고도화된 시대에도 우리의 몸은 여전히 아직 ‘신의 영역’에 닿지 못한 20만년전의 ‘사피엔스’이며, 어쩌면 스마트폰을 보느라 전국민이 거북목이 되어가고 있는 이 때에 전국 가정에 ‘댄스보일러’ 한 대씩을 놓아주는 공약도 누군가 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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