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없이 청량한 청춘을 그리며 '꿈에 그리던 첫사랑'을 간접체험하며 몰입하게 했던, 수많은 소녀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드라마가 소위 ‘새드엔딩’으로 끝이 나며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영원할 줄 알았던 청춘의 사랑도, 우정도 시간이라는 불가항력의 존재 속에서 힘을 잃어간다는 것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의식이었을까.
막상 그렇게 끝나고 나니 소녀도 아닌 나까지도 애끓는 심정이 되어 그들의 해피엔딩을 빌게 했던 작가의 캐릭터 설정과 서사와 대사를 쓰는 ‘대단한 필력’이 오히려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끝낼거 였으면 연기라도 못 하던가. 영상이라도 덜 예쁘던가. 대사라도 심장 근처에는 오지도 말던가.
이렇게 내가 하지도 않았던 연애임에도 사귀고 헤어지는 과정에 감정 이입이 되는 드라마도 흔치 않다는 생각 끝에 15년 전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소설책이 떠올랐다. 한참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던 나의 2521에 마음의 반창고가 되어 주었던 책. 그 책에서의 철학적 사랑의 해석을 다시 보는 것으로 이 드라마에 대한 나의 감상도 정리가 될 듯 하여, 다시 한 번 묵은 책을 꺼내 들었다.
남자 주인공은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여자를 만난다.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우연한 만남을 계산까지 해가며, ‘매우 희박한 확률’은 곧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최면을 걸고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촌스러운 귀걸이 취향이나 지루한 이야기 솜씨는 평가의 대상이 아니며, 완벽한 그녀를 더 완벽하게 해주는 그저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그렇게 사랑을 시작하고, 서로의 언어를 암호 해독하듯 분석하는 낭만적 편집증 환자가 되고, 결국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완벽해 보였던 오케스트라 합주에 틀린 음정을 잡아내듯 어느 순간 서로의 취향을 지적하고, ‘사랑이냐, 자유냐’를 결정하게 만드는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그런 빈틈 사이로 생긴 균열은 결국 서로에게 빠졌던 바로 그 지점에서 헤어지는 이유를 찾게 되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희도에게 이진이가 했던 ‘함부로 해서 좋다’는 그 낭만적인 말이 헤어지는 순간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말로 돌아왔을 때 둘의 연애는 끝이 난 것이다. 물론 앞뒤의 관계성에서 회수하지 못한 감정과 구원적 서사를 두고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커플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작가가 짜놓은 플롯에 ‘함부로’는 그렇게 비수가 되는 말이 된 것이다. 또한 초반부터 서로에게 빠졌던 ‘구원적인 응원’은 결국 마지막에 ‘더 이상 힘이 되지 않는 응원’이 되버렸고, 그 촘촘하게 쓸쓸한 결말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화가 나기도 했다.
알랭 드 보통은 책에서 소위 ‘일상의 철학자’라는 그에 대한 평가처럼 그야말로 보통의 연애와 이별을 그렸다. 물론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바랬던 건 현실적인 연애가 아닌 판타지였지만, 드라마는 작가의 세계관이며 시청자로서 나는 이제는 결말을 인정하고 미련을 놓아야 할 것 같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사랑은 미치도록 아름다웠던 그 지점이 미치도록 가슴 시려 놓아 버릴 수밖에 없는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