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미테 괴담과 멀미의 3단계
어린이 시절, 처음으로 기억나는 괴담은 멀미약에 관한 것이었다. 일명 ‘키미테 괴담’. 어떤 어린이가 극심한 멀미로 인해 키미테를 귀 밑에 붙이고 소풍을 갔는데 어느 순간, 눈앞이 흐려지며 보이지 않게 되었다.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어둠 속을 한참 헤매고 있는데 누군가 그 아이의 팔을 확 잡아당긴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길.
움직이지 마…. 너 지금 바로 절벽 앞이야.
나는 가문을 통틀어 유래가 없는 멀미왕이었고 이제 막 어린이 키미테를 부착할 수 있는 나이 8세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밤마다, 절벽 근처를 울며 헤매는 꿈을 꿨다. 안 보여요… 엉엉. 그러면 키미테 광고에 나오는 그 코끼리 아저씨가 몰래 나와서 나를 지켜보는 것이다.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꿈이니까 눈이 보이지 않아도 보인다. 나는 왠지 모를 화가 치밀어 올라 아저씨는 배신자!! 라느니 맘모스가 아저씨보다 훨씬 크거든요?!! 라느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르다가 깬다.
물론 괴담은 괴담일 뿐. 시야는 흐려지지 않았다. 절벽 앞에서 코끼리를 만나지도 않았다. 다만, 괴담보다 더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멀미는 키미테로 완전히 잡히지 않았다.(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유별난 사람일 뿐, 키미테는 훌륭한 약이다. 명문제약 만세!)
멀미는 내게 많은 흔적을 남겼다.
아직도 기억나는 멀미는 초등학교 3 학년 소풍 때의 것이었다. 전날, 동네 슈퍼에서 한 시간 넘게 과자를 골랐다. 단짠의 밸런스를 고려해 가며 산 5-6 봉지의 과자, 사이다와 오렌지 주스를 배낭 안에 가득 담아 놓고선 너무 설레어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엄마가 김밥을 싸느라 나는 참기름 냄새에 일어났고, 엄마가 백화점에서 사 온 흰색 바지와 하늘색 점퍼에, 그 당시 최고 멋쟁이 신발 ‘슈발리에 베이지 로퍼’를 신었다. 학교로 가는 길에 올려다본 하늘은 또 어찌나 예쁜지. 저 멀리 나란히 서 있는 열두 대의 고속버스들이 보이고, 친구들의 정겨운 목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버스엔진 기름냄새가 나기 시작하네. 아 맞다, 나 멀미하는 사람이지? 아빠가 큰 버스는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그리고 너도 이제 10살인데, 멀미병도 나았을 꺼라고 그랬는데. 엄마가 혹시 모르니까 검은 봉다리 가져가라고 챙겨준 게 정말 다행이었다. 엄마 만세…
역시나. 자리에 앉으니 미세한 진동이 엉덩이에서 머리 위까지 끊임없이 올라온다. 여자애들이 말을 건다. 남자애들이 툭툭 친다. 눈을 감고, 침을 계속 삼킨다. 멀미의 시작은 목이 약간 붓는 것 같으면서 침이 과다하게 나오는 것이다. 이걸 계속 삼키면 귀가 멍멍해지면서 고산병 같은 느낌이 든다. 이때쯤 조용히 까만 봉지를 꺼낸다. 부적처럼 손에 쥔 채로 호흡을 고른다. 너무 빠르게 쉬면, 엔진냄새가 훅 들어오고 너무 천천히 쉬면 숨이 막히기 때문에 천천히, 명상하듯 호흡을 고른다. 기사님과의 합도 중요한데, 한 손으로 핸들을 휙휙 돌리는 기사님은 절대 안 된다. 브레이크 좋아하는 분도 안된다. 그날, 그런 분이었다. 멀미는 2 단계로 넘어간다.
침과 귀, 호흡으로 잡을 수 있는 멀미는 1 단계다. 하지만 2 단계부터는 내장의 문제다. 위가 파도를 치듯이 혼자서 움직이고 목구멍으로 구토가 밀려온다. 이때는 살짝 허리를 숙여주면 효과가 있지만,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이 바로 “괜찮아? 괜찮은 거야? 살아는 있는 거야?”라며 호들갑을 떨기 때문에(토할까 봐, 지 옷에 묻을까 봐) 다른 사람까지 신경 써야 하는 위기가 온다. 그러므로 보통은 눈을 감고 고개를 최대한 창쪽으로 돌려, 잠을 자려고 애쓴다. 아주 운이 좋으면 잠이 든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3 단계가 시작된다. 이 시기부터는 진짜 구토를 하느냐 마냐의 문제다. 차라리 구토를 하면 좀 진정이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휘발유를 한 컵 마신 것 같은 상태가 지속된다고나 할까. 멀미는 참 고독하다.
소풍 장소에 도착한 친구들이 도시락을 꺼내기 시작하면 멀미는 꽃을 피운다. 아침엔 달콤하던 김밥 냄새가 비릿하게 바꿔고 결국은, 토한다. 김밥은 아마도 이십 대 중반까지 먹지 못했던 것 같다. 보기만 해도 멀미가 나서. 김, 맛살, 햄 오이가 조화를 이룬 멀미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알아주는 요리왕이었으나, 멀미가 이겼다.) 이게 뭘 상징하냐면 여행을 다니기 힘들다는 말이 된다. 단순히 소풍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집 첫 자가용은 까만색 로얄 엑스큐였는데 살아서 타고 죽어서 내렸던 내게는 리무진으로 보였다. 물론 장례용이다. 아빠는 서울토박이였지만 엄마는 강원도가 고향이라 가족행사로 강원도에 자주 갔었는데 나중에는 나를 우리 집 앞에 사는 언니에게 맡겨두고(두둑한 용돈과 함께) 자기들끼리 다녔다. 언니가 보그잡지를 보여줘서 나오미 캠벨과 클라우디아 쉬퍼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웸의 노래를 듣다가 ‘wake me up, before you go go’ 후렴구가 나오면 언니와 미친 듯이 춤을 추기도 했다. 하지만 언니는 20대였고, 왕성했고, 항상 나와 있어 줄 순 없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혼자서 노는 스킬이 는다는 것이다.
시내버스, 외제차, 국산차, 중형차, 경차를 가리지 않고 엔진이 있는 것이면 차별 없이 멀미를 하는 이유로 지하철(무슨 이유인지 지하철은 열외다)과 걷기를 가장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멀미가 덜해진다는 걸 알게 되어 음악을 사랑하게 된다는 얘기다. 땅 위에서 정지한 채로 할 수 있는 모든 것 그러니까 책, 영화, 하늘, 간식을 사랑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들이 나의 보모이자 멘토가 되고, 팔도강산의 자연을 대신했다.
꼭 멀미가 아니라고 해도 어떤 이유에서든 나 같은 사람이 은근히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어디 돌아다니는 것 보다 집에서 즐겁고, 혼자서도 바쁜 사람들. 재밌는 것과 간식만 있으면 온순해지는 사람들. 책과 커피가 될 수도 있고, 영화와 맥주가 될 수도 있다. 혹은 그저 두꺼운 책만 있으면 될지도. 체력은 약하지만 늘 무언가에 홀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나의 비상 연락망 같은 리스트를 공유하고 싶다.
빌런은 언제나 주인공을 성장시키므로, 이 이야기는 크게 성장의 플롯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멀미 덕분에 나는 영화를 전공하는 사람이 되었고, 아이에게 추천할 음악 리스트가 있는 사람이 되었고, 내 서재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멀미를 이길 순 없지만, 다른 길에서 행복 할 순 있다.
키미테 괴담에 바들바들 떨던 어린이가 이렇게나 성장하다니. 수고가 많았다.
+나중에 찾아보니까 꿈에 코끼리가 나오는 것은 길몽이라고 한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귀인을 만나게 된다고. 오호라. 그때 제가 아저씨보다 맘모스가 더 크다고 했던 부분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그게 사실이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