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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구름배 Apr 02. 2023

매일 하는 성지순례

메주고리예 in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불편해야 존재감이 드러나는 걸까?


한국에선

바닥존재감이 제로였다.

지압봉으로 발바닥 여기저기를 꼼꼼하게 두들겨 주는 길거리ㅋㅋ

그러다 유럽에 오니 자갈길과 울퉁불퉁 돌길이 종종 나타나 그제야 땅의 존재감이 드러난다.


그런데 더한 놈이 나타났다.

땅을 뚫고 올라온 공룡뼈 느낌이다. 요리조리 빈틈을 찾아   발바닥을 세로 가로로 비틀어가며 곡예하듯 걷는다.

이건 뭐 공룡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고슴도치길이다. 공룡 뼈다귀 따위가 숨어있다가 땅 위로 솟아오른 걸까?ㅋㅋ


길이랄 것도 없다.

길은 방향이 있어야 하는데 어디에도 방향이 없다.

그냥 자연 날 것이다.

그래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누군가 많이 밟았구나' 느껴지는 맨질맨질한 돌 위를 따라 걷는다.

가족 모두 이 길을 어떻게 가냐며 불평하고 있을 때 위에서 맨발로 내려오는 할머님이 스쳐간다.

그렇다.

지금 우리가 가는 이 뼈다귀길은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곳이다.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성지순례 한다는 '메주고리예'다. (진짜 발현한 곳인지 알 수 없으나 교황청은 메주고리예에 대한 순례를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김기사는 이 성지순례장소를 패스 하자고 했다.

김기사 : "그냥 사람들이 귀신 본거 아니야?"

그런데 귀순이가 우릴 꼬신다.

귀순 : "성모 마리아 님이 오늘 우리 앞에 진짜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가 보자!"

그래서 반신반의로 가게 된 Apparition Hill다.

지붕없는 교회처럼 너무나 엄숙한 분위기에 우리도 말없이 눈만 마주친다.

그런데 정상까지 올라오니

뚜뚜가 뭐에 홀린 듯 말한다.


뚜뚜 : "엄마! 기분이 이상해. 누가 날 따듯하게 감싸 안아주는 기분이야. 엄마도 그래?

따듯한 욕조에 있는 것보다 지금 더 편해.

심장이 느리게 뛰어.

나뭇잎이 바람에 느리게 흔들리는 것처럼 "

나 : "어머머! 얘 접신했나베~~ 성모 마리아 님이  몸에 들어간 거야? 뚜뚜~ 이러다 나중에 신부님 되는 거 아냐~ㅋㅋ"

귀순 : "이제부터 우리 뚜뚜 모셔야겠다~"

김기사 : "그래~ 장래희망으로 신부님 좋다. 돈도 잘 벌고 평생직장으로 딱이네~"

김기사 말에 빵! 터진다


모 마리아 님이 진짜 이곳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덕담을 전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따듯한 위안과 기운 받는 곳이라면

그곳이 성지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카페?

뼛속까지 쭉 펴주는 포근한 침대?

퇴근 후 아파트 주차장에서

홀로 고독을 씹던 차 안?

뜨거운 태양 속 그늘진 나무 아래?

한국에 있을 때의 나의 성지다.


나만의 성지를 찾아

매일 순례해 보는 건 어떨까?


♡ 차에서 사는 4 가족의 유랑 경로 ♡

한국 출발(22.08.19) -러시아 횡단(김기사만)-핀란드(여기부터 네 가족 다 함께)-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독일-네덜란드-다시 독일-폴란드-체코-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그리스-튀르키예 -조지아-튀르키예-불가리아-북마케도니아-알바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20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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