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oudie May 11. 2019

파채형 인간으로 살아본 하루

짧은 순간이지만 오랫동안 기억되는 순간들에 대하여


어제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같이 전시를 보고 파닭을 먹었다. 예전에 파닭이 유행하던 시절 파닭을 참 좋아했던 나였기에 오랜만에 마주한 파닭이 참 반가웠고 그만 파닭을 흡입해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파향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내게 냉정한 처방을 내려주는 그녀

자기 전에 이를 꼼꼼히 닦고 잤음에도 불구하고 내 입안은 여전히 파향으로 가득했다. 일어나자마자 다시 이를 닦고 밥을 먹은 후 또 닦았지만 파향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나의 증상에 대해 A에게 설명하며 해결방법을 요구하자 그녀는 방법이 전혀 없다며 오늘 하루 동안 어쩔 수 없이 파향 인간으로 아갈 것을 처방했다.



파향에 고통스러워하는 중에 떠오른 건 좋아하는 작가 피천득의 책 '인연' 중 한 구절.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어제 약 한 시간 반 정도 마주했던 파닭치킨은 오늘 나를 하루 종일 괴롭혔다. 소설 속 아사코와의 세 번의 만남은 그를 오랜 시간 지독히 앓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일을 이유로 또는 우연한 계기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모든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는 누군가의 짧았던 마주침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기도 한다.


중학생 때 비 오는 날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내게 "우산 같이 쓸래?"라고 천진난만하게 반말로 물어보던 귀여운 꼬마 아이를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던 중 퇴근길 비를 맞는 여자를 발견하여  "우산 씌워드릴까요?"라고 말을 건넨 내 물음에 "아니요. 비 맞는 거 좋아해서 맞는 거라서요!"라고 답했던 그녀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주말의 여유를 만끽하며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유튜브를 보던 중 흥미로운 제목의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유 장기하 라디오 첫 만남(아이유가 첫눈에 반한 그 순간)"

https://youtu.be/gWGtbXTVILg


누군가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에 나는 50분 남짓되는 그 영상을 클릭했다. 지금은 헤어진 연예계 커플이지만 그들의 첫 만남이라고 하는 그 순간을 목격하니 결국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결말을 알아서 인지 왠지 조금은 수은 듯 하지만 내내 웃음꽃이 만발한 그날의 분위기를 보며 괜히 몽글몽글한 감정이 들었다.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저리 기류가 달라지는구나. (실제로 아이유는 자주 오던 곳인데 오늘은 이 공간의 분위기가 너무 낯설다는 표현을 한다.) 라디오가 진행되는 50분간의 만남 이후 둘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의 생각으로 가득했겠지. 잠깐 봤는데 왜 자꾸 떠오르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이제 나는 다시 양치를 하러 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온전한 나를 다듬어 가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