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같이 전시를 보고 파닭을 먹었다. 예전에 파닭이 유행하던 시절 파닭을 참 좋아했던 나였기에 오랜만에 마주한 파닭이 참 반가웠고 그만 파닭을 흡입해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파향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내게 냉정한 처방을 내려주는 그녀
자기 전에 이를 꼼꼼히 닦고 잤음에도 불구하고 내 입안은 여전히 파향으로 가득했다. 일어나자마자 다시 이를 닦고 밥을 먹은 후 또 닦았지만 파향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나의 증상에 대해 A에게 설명하며 해결방법을 요구하자 그녀는 방법이 전혀 없다며 오늘 하루 동안 어쩔 수 없이 파향 인간으로 살아갈 것을 처방했다.
파향에 고통스러워하는 중에 떠오른 건 좋아하는 작가 피천득의 책 '인연' 중 한 구절.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어제 약 한 시간 반 정도 마주했던 파닭치킨은 오늘 나를 하루 종일 괴롭혔다. 소설 속 아사코와의 세 번의 만남은 그를 오랜 시간 지독히 앓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일을 이유로 또는 우연한 계기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모든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는 누군가의 짧았던 마주침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기도 한다.
중학생 때 비 오는 날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내게 "우산 같이 쓸래?"라고 천진난만하게 반말로 물어보던 귀여운 꼬마 아이를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던 중 퇴근길 비를 맞는 여자를 발견하여 "우산 씌워드릴까요?"라고 말을 건넨 내 물음에 "아니요. 비 맞는 거 좋아해서 맞는 거라서요!"라고 답했던 그녀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주말의 여유를 만끽하며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유튜브를 보던 중 흥미로운 제목의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에 나는 50분 남짓되는 그 영상을 클릭했다. 지금은 헤어진 연예계 커플이지만 그들의 첫 만남이라고 하는 그 순간을 목격하니 결국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결말을 알아서 인지 왠지 조금은 수줍은 듯 하지만 내내 웃음꽃이 만발한 그날의 분위기를 보며 괜히 몽글몽글한 감정이 들었다.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저리 기류가 달라지는구나. (실제로 아이유는 자주 오던 곳인데 오늘은 이 공간의 분위기가 너무 낯설다는 표현을 한다.) 라디오가 진행되는 50분간의 만남 이후 둘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의 생각으로 가득했겠지. 잠깐 봤는데 왜 자꾸 떠오르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