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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oudie Jun 01. 2019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지하철 타기

가까운 사람이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을 겪게 되었다는 소식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그녀에게 제대로 마음 쓰지 못한 내 책임도 있는 것 같아서. 평소 만나자는 말을 먼저는 잘 꺼내지 않는 이지만 이번에는 내가 먼저 유난히도 해가 쨍쨍하던 5월 어느 날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같이 밥을 먹고 공원을 산책하고 쇼핑을 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고 많이 웃었지만 중간중간 그녀는 힘들어했고 나는 그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아무 얘기나 이어나갔다. 그녀는 다음 일정이 있었는데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 불안하다며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하지만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야만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는 지하철을 한번 타보겠다고 말했다.


한 번의 쇼크 이후 처음으로 도전해보는 지하철 타기. 나는 그녀와 최대한 같이 이동할 수 있는 노선으로 알아보았고 그렇게 같이 지하철에 올랐다. 평일 낮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차 안에는 사람이 많았다. 혹시나 그녀가 힘들어질까 봐 나는 연신 이것저것 다른 주제의 말을 이어나갔고, 우리는 같이 낄낄거렸다. 몇 정거장 이동하자 자리가 생겼고 운 좋게도 우리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때였다. 그녀는 왜 고속터미널을 가는 열차 안에 사람이 이렇게 없는지 궁금해했다. 그제야 우리는 우리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에 올랐다는 걸 알게 되었고 또 한 번 낄낄대며 웃었다. '나는 널 따라가고 있었는데?', '나는 언니 따라왔지.' 하고 서로를 탓하며 서로의 멍청함을 비웃으며 다음 역에서 내렸다. 그렇게 30분 거리면 도착할 약속 장소에서 15분 정도 멀어져 토털 1시간을 소요하게 돼버린 셈이다.


이럴 바엔 택시 타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며 우리는 그 열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열차를 갈아탔다. 또 몇 정거장 이동하다 보니 운이 좋게 자리가 났고 맘씨 좋은 아저씨는 우리 둘이 나란히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이동해 주셨다. 그래도 앉아갈 수 있으니 우리는 또 신이 났고 또 수다를 떨며 이동했다. 그렇게 몇 정거장을 이동하고 있으니 아무리 가도 아는 정거장이 나오질 않았다. 그제야 이번엔 내가 물었다. '우리 설마 또 잘못 탄 거 아니지?' 나는 정말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하고 장난으로 웃으며 물었는데.. 그녀가 지하철 앱을 켜서 확인해보니.. 이거 뭔가 잘못됐다. 또 반대로 가버리고 있는 야속한 전철..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알고 보니 처음에 탔던 열차는 급행선이었고 반대편에서 생각 없이 올라탔던 우리는 완행선으로 바꿔서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열차를 탄 것이었다. 이제는 30분 거리를 2시간을 걸려 가게 생겼다. 재빨리 열차에서 내려서 우리는 또 한참을 웃어댔다. 짜증이 날 법도 한 이 어이없는 상황에서 자꾸만 웃음이 났다. 자리를 양보해준 아저씨 얼굴이 생각나서 웃었고, 거기에 연신 감사해한 우리 모습이 생각나서 웃었고, 지하철 타는 게 무섭다는 그녀가 갑자기 2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게 된 이 상황이 발생해버린 것에 웃었고, 제일 웃긴 건 우리가 열차 관련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겨우겨우 맞는 열차를 갈아타고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 되자 그녀가 말했다. '언니 나 이제 지하철 잘 탈 수 있을 거 같아.' 그리고 우리는 또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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