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잘 지내고 있을게.
어느 날 외할머니 댁을 방문하고 우리가 돌아갈 때 할머니는 나를 보며 말씀하셨었다.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난 뒤로도 이 말이 왜 이렇게 기억에 남는 건지. 왠지 모르게 이 말속에 다시 혼자 남겨질 그녀의 외로움과 우리를 돌려보내야 하는 아쉬움이 고스란히 느껴져 그녀가 떠난 후에도 많이 아팠다.
강하다고만 생각되었던 그녀가 언제부터인가 한없이 약하고 외로워 보이기 시작했다. 몸이 안 좋아지셔서 우리 집에 살게 되신 후에는 매일 투닥거리고 싸우는 우리 가족을 보며 너희 사는 게 참 재밌어 보인다며 부럽다고 했다. 마루에서 티브이를 볼 때도 우리가 옆에 앉아있으면 보시고 우리가 각자 방으로 들어가면 그녀도 티브이를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생각 없다며 밥을 조금씩만 드시다가도 초밥을 사서 들어갈 때면 저녁을 괜히 먹었다며 아쉬워하시며 이내 맛있게 드시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질 때도 있었다.
사실 그녀는 그렇게 투닥거리며 사는 가족이 필요했던 거겠지. 하지만 애정표현에는 서툴렀던 그녀의 표현법은 화를 내는 것이었고. 가족들을 지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엄마도 나도 많이 닮은 것 같아 그녀를 보면 마음이 아팠다. 역시나 표현에 서툰 나는 집으로 돌아오던 날 잘 지내고 있겠다던 그녀의 말에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저 눈물을 참고 돌아설 뿐이었다.
그날 아침 부엌에서는 엄마와 할머니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조금만 참아보자. 약이 처음에 적응하느라 그렇대. 주말 아침 늦잠 후 화장실을 가기 위해 지나치던 부엌에서 그녀를 보았지만 여느 때처럼 또 엄마와 냉전 중이던 나는 그만 그녀에게까지 차가워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가 우리에게서 떠났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기억될 나의 모습이 차디찬 모습이어서 그 사실이 견딜 수 없게 괴로웠고 그날 아침으로 기억 속에서 몇 번이나 시간을 되돌려 돌아갔다. 그날 하늘은 어두웠고 비도 추적추적 내렸다. 1년 전 오늘 우리는 모두 후회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을 흘려야 했다. 어제 뉴스를 보니 오늘 전국적으로 비가 올 예정이란다. 이렇게 며칠 흐르면 또 그때처럼 분홍 벚꽃이 피겠지. 언제 그랬냐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