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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oudie Mar 23. 2019

병원에서

할머니의 이야기


간 밤에 놀란 듯 한 아빠의 통화하는 목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심장이 쿵 떨어졌지만 잠결에 뒤척이다가 금세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동생이 말한다.


"어제 새벽에 할아버지가 위독하셔서 엄마랑 아빠랑 갔다가 방금 들어왔어."


얼마 전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져서 중환자실에 며칠 계시다가 조금 나아져 다시 일반 병실로 옮겼는데, 지난 새벽 다시 중환자실로 옮기셨다고 한다. 이제는 정말 때가 온 걸까. 몸이 안 좋아지신 건 일 년이 조금 넘었지만 그래도 정말 마지막인 건가 생각을 하면 아직은 준비가 안된 것 같다.


중환자실은 면회 가능한 시간이 하루에 두 번 정해져 있다. 13:30-14:00까지 면회가 가능하다고 하여 오전에 운동을 하고는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찾아갔다. 찾아가 보니 아무도 와있지 않아 할머니께 전화를 했다. 지금 병원에 도착했는데 어디로 찾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할머니가 있는 곳을 찾아가 다시 모시고는 시간 맞춰 병실로 들어갔다. 편히 돌아가셨으면 하신다는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내내 서럽다.


"여보 나 왔어. 할머니 왔어. 눈 좀 떠봐. 내 말 안 들려?"


밤새 많이 힘드셨을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깊은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짧은 면회시간을 마치고 할머니와 점심을 먹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들어주는 것. 혼자 놀라셨을 마음과 서러움, 속상함이 뒤섞인 그녀의 한풀이와도 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옆에 있어드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난밤 할머니 홀로 할아버지 곁을 지키며 겨우 잠이 들었는가 싶은 시점 할아버지 몸 아래쪽에  피가 흥건히 있는 걸 발견하셨다고 한다. 혈변인 건지 그저 피인지 모를 그것들을 몸집도 작고 나이 든 할머니 혼자 마주하며 겪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 시간 대기 중이던 의사는 이쪽저쪽 쳐다보고 처치하더니 '돌아가시겠네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얄궂다. 어떻게 의사라는 사람이 이미 놀란 보호자의 마음에 불을 지를 수 있는 걸까. 다른 표현은 없었을까. 다른 보호자가 왔을 때 말해줄 수는 없었나. 나는 애꿎은 의사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린다. 그래서 지난밤 병원엔 부랴부랴 우리 아빠, 엄마 그리고 큰아빠, 큰엄마도 모였다. 다행히 진짜로 돌아가시진 않고 중환자실에 옮겨졌지만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겠지.


점심을 먹고 할머니 집으로 와서 침대 위에 전기장판을 켜놓고는 할머니 옆에 가만히 누웠다. 피곤하실 것 같아 눈 좀 붙이시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알겠다고 하시며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피난길에 만나서 할아버지와 결혼한 이야기. 그래서 북에 두고 온 부모의 정, 형제의 정, 남편의 정을 모두 다 할아버지에게 쏟았다는 말. 아이 낳는 법도 모를 만큼 어린 나이에 아무도 없이 그저 둘만 의지하며 큰아빠와 아빠를 낳은 이야기. 할아버지께  처음으로 받은 선물 이야기. 애틋했던 이야기. 힘들었던 이야기. 그 세월들을 어찌 2시간 안에 담을 수 있었겠느냐만 옆에서 조용히 울기도 웃기도 하며 듣다 보니 할머니도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신 것 같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 소리. 할머니 친구분의 전화를 받고는 또 한참 재잘거리시더니 다시 울먹이시는 할머니.


예전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를 보며  내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 속 할아버지가 떠나고 혼자 남은 할머니를 보며 많이 외롭고 슬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오히려 할아버지가 불쌍하다며 이제 누가 기억해주냐며 우셨다. 나는 지금도 혼자 남겨지게 되실 할머니가 걱정이지만 할머니는 애쓰고 있는 할아버지가 안쓰럽다 하신다.


집에 가려고 일어서니 할머니는 이것 좀 보라며 열심히 키운 화분을 보여주신다. 내내 꽃이 피지 않던 화분에 주황색 꽃이 예쁘게 피었다. 어릴 때부터 항상 화분 가꾸길 좋아하시고 꽃을 좋아하셔 할머니가 돌보면 죽은 화분도 다 살아났다. 화분이 할머니께 보내주는 자그마한 위로에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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